내 젊음의 성장통
군 생활 중 가장 큰 소리. 그건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다.
온몸이 놀라고, 바닥이 흔들린다. 흡사 지진처럼, 대지 자체가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날의 나는, 내가 뭘 던지는지도 잘 모르고 그냥 핀을 뽑고 팔을 뻗었다.
수류탄은 내 앞의 물웅덩이에 퐁당— 다행히 내 발밑은 아니었다.
“147번 훈련병 xx야!!”
“우측 열외!!”
담담한 척했지만, 속은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다.
‘만약 이게 진짜 전투였다면, 난 죽었겠지.’
논산의 시간은 그렇게 무뎌지고 있었다. 처음엔 눈치 보며 버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훈련이 몸에 붙었다. PT체조를 할 때도, 총검술을 할 때도,
‘아, 내가 진짜 군인이 돼가는구나.’
그건 자부심이라기보다 낯선 체념에 가까웠다.
하루는 완전군장을 메고 땀으로 속옷까지 젖도록 달렸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이걸 왜 하지?’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그런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주말 예배는 숨구멍 같은 시간이었다. 외부 선교 단체가 와서 찬양을 하던 날, 여자 찬양사역자가 등장하자 모두가 동시에 무너졌다.
“와… 진짜 천사다.”
그땐 미모 때문이 아니라, 단지, ‘성별이 다르고 사람다운 눈빛을 가진 누군가가 왔다’는 사실 하나로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밀치며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려 했다.
군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단순함은 때로 참담할 만큼 일관적이다.
나에게 오는 편지는 여전히 없었다. 누구는 10통, 누구는 7통. 나는 늘 ‘무통’.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동기들은 내 사회성을 의심했지만, 그보다 더 아픈 건 ‘정말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현실’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쓸쓸함 안에서 버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도망가지 말자. 조금만 더 해보자. 최선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주. 우리는 가상의 적을 상대로 각개전투를 했다.
“부대, 약진 앞으로!”
호령과 함께 소총을 들고 달렸다. 낮은 포복, 높은 포복, 응용 포복. 온몸이 흙탕물에 젖고 입 안엔 모래가 씹혔다.
너무 힘들어 입에서 초콜릿색 침이 나와도 다 내려놓은 얼굴로 웃었다. 서로의 까만 치아를 보며, 그냥 웃었다. 배고픔과 졸림, 어지러움이 뒤섞인 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밤은 뿌듯했다. 나는 그걸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정체불명의 성장통.”
그리고 마침내 수료식. 한 달 전만 해도 이름조차 몰랐던 동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지막 구보를 돌았다.
누구는 웃었고, 누구는 울었다. 나는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힘들었다. 그런데도, 잘 버텼다.”
기차가 출발했다. 다음 행선지는 ‘자대 배치’. 모두의 얼굴엔 긴장과 설렘이 섞여 있었다.
용산역에 도착하자 몇몇이 내렸다. 이제 끝인가 싶던 그때—
열차가, 방향을 틀었다. 논산 쪽으로.
모두가 동시에 소리쳤다.
“얏호!!”
그때까지,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다.
(다음 편 : 10화 낯선 곳에, 나)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