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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눈을 밀며, 마음도 밀다.

편안함

by 마음을 잇는 오쌤



집합 지시에 헐래 벌떡 막사 문을 열었다.

순간, 하얗고 밝은 섬광에 눈이 부셨다.


점차 시야가 또렷해졌다.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이렇게 많은 눈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눈은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연병장으로 뛰어가기에도 버거운 상황.

그때 고참이 내 등을 두두리며 말했다.


“오늘 제설작전이야.”


그 한마디로 하루가 시작됐다.




당시 기온, 영하 20도.

하늘은 하얗게 무표정했다.


삽을 들고

연병장부터 부식차 진입로까지

하루 종일, 눈.

눈.

또 눈.


눈을 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마음인지, 눈인지 헷갈린다.

화도 났고,

눈치도 봤고,

그러다 또 금방 웃게 됐다.

사병 식당 뒷문으로 돌아 나와

처음 몰아본 5톤 트럭.

핸들은 무거웠고

(젠장... 구형 트럭인가 보다... 파워 핸들이 아니었다.)

브레이크는 고참의 말보다 느렸고

하늘은 아직 눈을 뿌리고 있었다.


“기어 넣어! 넣으라고!”


뒤에서 고참이 소리쳤지만

나는 2단에서 4단으로 건너뛰었다.

엔진이 울부짖듯 울어대고

트럭은 출렁 거리며 멈칫했다.


그날 내 귀는 종일 얼어 있었다.

그게 바람 때문인지, 혼난 소리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오전에는 제설 작전

오후엔 유류 수령 업무.

군용 유류통을 들어 올리고 뛰며

나는 생각했다.


‘아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디자인을 배우던 나.

그림을 그리고, 사람을 그리고,

마음을 그리던 나.


지금은 기름을 퍼다 나르며

군용 트럭에 붓고 있다.

그런데 이상했다.

밤이 되니

그날 하루가 조금 뿌듯했다.

왜지?? 눈 치우고 기름 좀 넣은 게 왜?? 뿌듯하지...

나도 모르게 나는 군에 적응하고


점점 내 집보다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 땅의 군복을 입은 수많은 청춘처럼

나도 그렇게,

하루를 견디며

내일을 미뤄가고 있었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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