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보다 어른이 되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그만큼 기억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지금보다 젊을 땐 미처 몰랐던 허기 혹은 방전으로 어떤 일이건 내적 외적으로 에너지가 부족하다. 이전에 익숙했던 사소한 많은 것들을 해내는데 일에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두뇌 회전을 요하는 이해력은 물론 하다못해 볼링을 친 후에 오는 온몸의 근육통조차 이틀 후쯤부터 아파지는 일처럼...
아이적에는 어른이 되면 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건 뭐지 왜 왜?라고 끊임없이 묻는 아이에게 무엇이든 대답해 줄 수 있었던 엄마는 어른이었으니까.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어느 날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철이 안 들지?" "응, 엄마도 마음은 아직 그래." 엄마의 대답이다. 뜻밖의 대답에 놀라기도 했고 엄마를 엄마나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순간이다. 어쩌면 우리 안에는 영원히 크지 않는 아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사진을 뒤적이다가 네팔 여행 중에 찍었던 불 앞에 앉은 나이 든 노인의 사진 앞에 눈길이 멈춰졌다. 노인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에 어떤 삶의 책이 쓰여 있는 걸까 그때는 무심히 지났던 노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나는 어느새 내가 보던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의 나이를 지나, 수많은 시간의 터널을 지나왔다. 어른이 되고 또 노인이 된다는 것은 책 제일 앞의 목차처럼 일목요연하게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무질서하게 닥쳐오는 삶의 순간들을 겪어내는 과정일 것이다. 그 과정의 모든 시행착오들이 모여 결국 나를 이루는 것.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라고 한다. 도서관은 아니더라도 내 인생이라는 책 한 권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지는 돌아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