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벚꽃이 엔딩을 고하고 라일락의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꽃소식에 책상 위 노트북에서 라일락 향이 나는 듯하다. 몇 년 전 1층 화단에 달랑 한 그루 있던 라일락 나무를 사정상 없애야 했는데 이맘때가 되면 그 라일락 꽃 향에 대한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휴일 오후 느긋한 점심을 먹으며 TV를 켜니 마침 김창옥 쇼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찌나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지 점심 메뉴였던 칼국수 면발이 퉁퉁 불었다. 그중 특별히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의 표현에 의하면 해녀와 상담 강사의 공통점은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를 따내야 한다는 것이다. 해녀는 바닷속 깊숙한 곳에서 해산물을, 강사는 누군가의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진심을...
또한 누구든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숨을 잘 참아야 하고 숨을 잘 참기 위해서는 숨을 잘 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인간이숨을 잘 쉬는 것이란 집중할 수 있는 것,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나를 온전히 집중하는 그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패널들에게 묻었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숨 쉬는 것이냐고. 육아 중이지만 개그를 사랑하고 현장으로 복귀하고 싶어 하던 개그우먼의 눈물에, 나도 나에게 묻는다 무엇으로 숨을 쉬는지. 나는 당연히 여행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왜 여행이 나에게 숨쉬기가 되었는가를 생각해본다.
2013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였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건. 진단을 받고 그날 모임이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모임에 참석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인식한 순간 머릿속은 백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크게 두 가지 타입이 있는듯하다. 그 병에 대해 스스로도 많이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마주하는 사람과 그 사실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이 두렵고 인정하기도 싫어하는 타입. 나는 후자였다. 나는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고 또 주변에 알려서 요란스러운(못된 표현이지만) 위로를 받고 싶지도 않아서 병원 입원 전까지는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다. 진단을 받은 그때쯤 마침 서울에서 청주로 이사를 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병에 대해 말을 하지 않고도 이사에 대한 인사로 대신할 수 있었다.
수술과 8번의 항암 치료를 받았다. 아프다는 것의 가장 힘든 점은 외롭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곁에 있어도 내가 느끼는 그 상태를 온전히 경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초기라는 것인데, 암이라는 말이 주는 그 어마어마한 무게란... 치료를 마친 후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았다. 그래서 그 시기를 6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표현을 쓴다. 검진 결과가 나오는 날의 결과에 따라 인생은 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때 삶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물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지만 내 경우는 그보다는 좀 더 명확한 위험인자가 있는 것이니까. 나에게는 여행이 익숙하고 나는 그 준비 과정이 행복한 사람인데,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도저히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항암 치료가 끝나고 떠난 첫 여행은 치료의 영향으로 빠진 머리카락이 미쳐 다 자라지 못해 가발을 쓰고 갔다.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는 결과를 받고 출발하는 여행은 나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김창옥 강사의 표현대로라면 숨을 참아야 하는 시간을 위한 숨쉬기가 되었던 것이다.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도 나는 어디에 좋은 음식,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하지 않고, TV의 건강 프로그램이 나오면 황급히 채널을 돌린다. 단지 음식은 골고루, 야채는 많이 먹고, 기분은 밝게, 기회가 되면 언제든 출발하는 것으로 만족해왔다. 자세히 알려고 하면 그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여전히 가슴이 떨리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이웃분들 중에는 건강에 관해 꾸준히 올려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이전 같으면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 이제 내 마음에도 면역력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집착 같은 여행의 이유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제는 나의 숨쉬기라고 불러야겠다.
ps. 이 글을 쓰는데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기억을 흘려보내야 할 때가 왔음이 느껴진다. 더 가볍게 더 부드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