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교토에서 오사카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교토에서 오사카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교토역에서 버스를 한 번만 타면 오사카 난바에 예약된 우리 숙소 근처에 도착하기 때문에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전날은 종일토록 거센 비가 쏟아져서 예정했던 교토 외곽 여행을 취소하고 빗속에 교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이게 바로 오래된 도시 교토의 운치라며 신나 했다. 우연히 발견한 한국 음식점에서 막걸리와 파전까지 먹으니 제대로 비 오는 날을 즐긴 것이다, 그것도 일본에서.
전날 밤 심상치 않게 퍼붓는 빗줄기와 휴대폰에는 위험 지역은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가 계속 들어왔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프런트에 문의하니, 호텔 직원들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전혀 문제없다고 안심하라고 한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던 외국인 여행자인 우리는 잠을 설치고 이른 버스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불과 5분 거리. 아침까지 퍼붓는 빗속에서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비닐을 덮은 여행 캐리어를 끌고 가는 5분이 어찌나 길던지. 또한 이런 상황은 혼자 오지 않는 법, 함께 간 한 친구의 캐리어 바퀴가 빠진 것이다, 이 빗속에.
5분 정도 늦게 도착한 버스에 짐을 싣고 올라타니 승객이 많지 않아서 편안하게 갈 수 있겠다며 금방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유를 찾고 버스에서 바라보는, 교토에 흐르고 있는 가모가와 강의 수위는 위험해 보였다. 이들에게는 이런 비가 익숙한 것일까 생각을 하며 한없이 느릿느릿 오사카를 향해 가는 버스라 할지라도 너무나 고마웠다. 느리기만 버스 속도와는 달리 빠른 말투의 운전기사님은 뭔가 자주 방송을 한다. 뭐라는 걸까, 하차 역을 안내하고 있겠지...
40~50분쯤 갔을까, 버스는 어느 작은 기차역에 섰고 모든 사람들에게 내리라고 하는듯하다. 기사분의 더듬 더듬한 영어와 마음 급한 우리의 감으로 이해한 바로는 폭우로 인해 오사카로 가는 고속도로가 통제되어서 버스가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내려서 기차로 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여인은 짐을 끌고 비를 맞으며 어딘지도 모르는 작은 기차역 내로 들어갔다. 역무원이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다 보니 호출 버튼이 있다. 호출을 해서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이 기차역은 오사카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종점에 가서 무슨 라인으로 갈아타고 다시 무슨 역에서 내려서 또 다른 라인을 갈아타면 오사카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는 무슨 역인지조차도 기억에 없는 그 역들을 꼼꼼히 적고 외우며 바퀴 빠진 캐리어를 들고 수없이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오사카에 도착했다. 물에 빠진 생쥐(보다는 많이 크지만) 꼴로 오사카 숙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느낀 것은 극심한 허기였다.
호텔 주변의 음식점을 찾아보니 '코코이쯔방야'가 보이는 것이다. 아, 이건 이미 익숙한 맛이잖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거지 싶었다. 작은 규모에 혼자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하는 주인은 각자 다른 종류의 카레를 주문한 우리에게 다소 시간이 걸린 정성스러운 음식을 내주었다. 음식에서 받는 위로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코코이쯔방야는 일본어로 '여기가 최고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실 함께 여행한 친구 중 한 명은 자유여행이 처음이었고 우리 셋이서 여행을 한 것 또한 그때가 처음이어서-지금은 그 친구 역시 자유여행을 아주 많이 애정하고 있다-아마도 좀 긴장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긴장과 다소 험난했던 그날 여정의 피로를 한순간 보상하듯 매콤한 카레라이스는 우리의 위장을 편안하게 해 주었고 마음도 함께 행복해졌다. 비 오는 오사카 성은 또 어떤 분위기일까 기대하면서 오사카성으로 향했다. 이제는 우리 동네 지하철을 타듯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온 며칠 후 태풍으로 인해 오사카 간사이 공항은 잠시 폐쇄되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고립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