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글방(2023.4.3. 월 덕질)
<오락실>의 충격적인 흥겨움을 아직도 기억한다. 시험을 망쳐서 열받아서 오락실에 갔더니 아빠가 있더라는 흥미진진한 가사. 노래를 부른 가수인 <한스밴드> 멤버들의 아빠는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는데도 매일 ‘아빠’가 들어간 가사를 불러야 하는 자매가 가여워 마음이 아팠다. 때는 초등학생, 내 최초의 <대중가요>였다.
한스밴드를 시작으로 내 눈에는 ‘가수’와 ‘가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친척 언니 오빠 방에 붙은 HOT, SES의 브로마이드며 아빠 사무실에 매일 아침 놓이는 스포츠 신문에 실리는 각종 연예기사까지.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사춘기의 초입에서 덕질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덕질의 대상은 자연스럽게도(?) 가수 신화였다. 또래보다 살짝 이르게 덕질을 시작한 관계로 내가 할 수 있는 정보 수집은 신문과 잡지가 다였다. 미스터케이며 스포츠신문 따위에서 신화가 나오는 면을 조심스레 오려 모았다. 열심히 오려 모은 손톱만 한 사진들을 파일에 모아두었는데 덜렁이의 팬심이 대견했던지 엄마는 아직까지 그 파일을 남겨두었다. 지금 와서 보니 아이고, 뭘 이런 것까지? 싶지만 그때의 내겐 얼마나 소중한 보물이었던가. 지금처럼 핸드폰만 키면, 유튜브만 틀면, SNS 검색만 하면 내 가수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네이버 카페 등에서 팬들의 소통은 활발했지만!)
음반 테이프를 사고, 음악사에서 신곡의 악보를 사며 덕질을 이어갔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도 계속 신화를 좋아했던 나에게 엄마는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엄청난 선물을 해주었는데 바로 <콘서트> 되시겠다. (그 보답으로 요즘 아주 열심히 영웅이 콘서트 티켓팅에 참전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군-면-리 단위로 콘서트에 가는 것은 당시 내게 실현불가능하게 느껴지던 일이었다. 콘서트장에 내렸을 때 펼쳐진 새로운 세상! 모두가 신화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같은 대상을 같은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라니. 진부하지만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모두가 서로에게 친절했고, 나 네 마음 알아 하는 눈빛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며 덕질과 팬심은 희미해졌지만 순수하게 좋아했던 마음만은 아직도 또렷하다.
최근에는 신화의 멤버 중 한 명이 어학연수시절 만났던 친구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릴 적 좋아하던 가수였을 때는 아예 닿을 수 없는 존재로 느껴졌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마음이 예쁜 친구와 결혼을 한다니 역시 우리 오빠(?) 보는 눈이 있네! 하는 맘도 들었다. 덕질의 대상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를 모르는 그들의 영원한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
신화 이후로 가끔 배우나 가수, 예술가를 좋아는 해봤지만 이렇다 할 덕질의 대상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아이를 낳으며 수천수백(사실은 만장이 넘지만) 장의 사진과 영상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우래기 덕질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나의 덕질 메이트는 남편, 어므니, 엄마. 심지어 어므니는 나에게 신형 아이폰까지 선물하셨다! 아마도 끝나지 않을 진정한 덕질의 시작이겠지. 새로운 덕질의 시대를 환영하며 덕후는 이만 잠자리에 든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