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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Aug 06. 2024

J의 여행, 20대 때와 확연히 달라진 점 몇 가지

잠시 머물다 가는 방법

나의 20대, 라떼의 여행


파일을 열어 꼼히 확인해 보는 일정표. 꼭 가보고 싶은 곳을 우선으로 동선을 짠 후, 근처 맛집까지 리뷰를 체크해 가며 일정표에 추가한다. 날씨 등 변수가 있을 것에 대비해 플랜 B를 세우는 것도 있지 않아야 한다. 참, 좀 더 의미 있는 여행을 위해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 공부도 슬쩍 더해보자.  미리 싸놓은 여행가방 확인하고 여행 일주일 전부터는 그 지역 날씨에 온 신경이 곤두서있기도 하다.


나의 전형적인 20대 시절 여행 준비 모습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이렇게 철저한 J형 인간이었으니  인생이 다소 피곤할 만도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런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넘치는 체력과 시간에 온 에너지를 여행준비에 쏟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정작 여행을 하면서는 예기치 못한 새로움을 찾는 묘미보다는 계획 하에 움직여야만 하는 강박(?)이 있기도 했다. 나의 여행메이트는 얼마나 인내심이 많이 필요했을까 때늦은 반성을 해다.


요즘에는 온라인으로 각종 리뷰까지 더욱 꼼꼼하게 살필 수 있고, 지도앱도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표시되며, 스마트폰을 이용한 꽤 괜찮은 번역 기능도 더해져 얼마나 '스마트하게' 여행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아마 지금 내가 20대였다면 J스타일을 그대로 녹여 마니아층을 형성한 여행 블로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그녀의 여행이, 아니 인생이 바뀌다


결혼을 하고, 더 정확히는 아이들이 생기고는 20대 때의 스타일로는 더 이상 여행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속속들이(?)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만 3세 이하의 아이와 하는 여행은 마치 극기훈련과 같았고, 내 욕심이 점철된 보여주기식은 아닌지 여행 후에 자책이 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좋은 것을 보고 느끼고 그만큼 아이의 오감은 발달했을 테니까, 나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괜찮아 라는 자기 위안 가끔은 필요했다.


이제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니 목욕, 밥 먹기 등 엄마가 일일이 챙겨야 하는 부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기저귀와 젖병, 그리고 유모차만 챙기지 않아도 한결 가벼운 느낌이다. 더하여, 이제야 아이들도 더욱 인지가 발달하고 취향이 생겨서 함께 여행할 맛(?)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J의 여행은 어떤가요?


본격적휴가철이다.

이번 여름은 강원도로 떠나는 일주일 살기로 정했다. 극 J였던 나는 어느새 여행의 변수를 덤덤하게 웃으며 받아들이는 10년 차 주부이자 엄마가 되어 있다. 다행인 것은 노는데 일가견 있는 내 동생이 여행에서만큼은 나보다 더 철저한 J의 성향을 여실히 보여주며 특기를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네이버와 구글 지도에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즐겨찾기에 표시하고, 동선을 고려해 큼지막한 일정을 짜놓는다. 그러면 주변  맛집 어트랙션 찾기 고수인 내가 리뷰를 통찰하는 썰미로 리스트업을 하는 식이다.


우리 아이 둘과 조카들 둘, 총 4명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하는 대가족 여행이기에 숙소도, 일정도 더욱 신경이 쓰이기에 몇 달 전부터 검색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해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게 여행의 굉장한 매력이란 걸 깨닫는데 이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중 한 명이 열이 올라서 설악산 케이블카와 공들여 찾아놓은 산채정식집을 포기해야 했고 그날은 숙소 근처에서 쉬엄쉬엄 시간을 보냈다.  앞만 보고 달리다 잠시 브레이크가 걸리니, 숙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객이 아니라 마치 현지인처럼 골목을 거닐고 수시로 산책도 나갔다. 시골 장터에서 미숫가루를 마시며 저녁거리를 저렴하게 구입해서 식사를 준비했다. 이런 게 일주일살기의 매력인가 보다. 최대한 현지인처럼 살아보기.


양양과 강릉에 각각 숙소를 잡아 옮기니 또 다른 분위기에 어른도 아이도 리프레쉬가 되어 새로웠다. 같은 강원지역이지만 지역마다 특색이 다르다. 바풍경도 맛있는 음식도 말이다. 아이들을 동반해서 매운 음식은 피했지만 그 덕분에  인생 갈비탕과 끝내주게 시원한 미역국을 맛볼 수 있었다.

 

어른들만 갔다면 관심밖에 있었을 박물관 체험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했다.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릴 듯 시원한 실내에서 꽤 괜찮은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니 똑똑한 엄마가 되는 느낌이다.


아이들과의 물놀이는 또 어떤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아이들을 상대하려니 한낮은 땡볕을 제대로 맞았지만 덕분에 청량한 동해 바다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해변 물놀이 중, 갑자기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위해 계획 없이 주문한 프라이드치킨은 최근 맛본 치킨 중 단연 으뜸이기도.


이렇듯 나의 철저한 계획을 말 그대로 철저히 내려놓고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이와 함께 하며 내가 배운 여행법이다. 리스트업을 완료해 나가는 기쁨보다 더 신나는 일들이 속속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도 짜릿한 경험이다. 이제는 여행에서만큼은 J가 아니라 느슨해지는 놀랍고도 재미난 경험,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벌써 1년 후 여름여행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여행에서만큼은 J형인 동생이 있어 왠지 든든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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