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채워졌을 때 멈추고, 비워졌을 때 비로소 걷기 시작한다
결핍, 그 찬란한 허기
무언가가 없다는 것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고요한 호수 한가운데 던져진 돌처럼,
멈춰 있던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며
우리를 익숙한 관성에서 흔들어 깨운다.
결핍은 차갑고 불편한 감각이지만,
동시에 움직임을 시작하게 하는 최초의 신호이기도 하다.
반대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는
생각을 느슨하게 만든다.
배부른 정신은 쉽게 눕고,
갈망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왜’라는 질문도 서서히 힘을 잃는다.
사유는 언제나 부재의 가장자리에서 태어난다.
아직 닿지 못한 영역,
손에 쥐지 못한 진실의 경계에서 비로소 맥박을 얻는다.
그래서 결핍은 우리를 소모시키는 저주라기보다,
세계라는 넓은 바다로 밀어내는 추진력에 가깝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떠나고,
모자라기 때문에 항로를 그린다.
인간은 애초에 세계와 완전히 화해하지 못한 존재다.
바라는 삶과 지금 서 있는 자리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사유의 밧줄을 던진다.
플라톤이 말한 에로스가 결핍에서 태어나 아름다움을 향해 솟구쳤듯,
우리의 지성 또한 무지라는 허기를 견디지 못해 앎을 향해 몸을 던진다.
이 틈이 깊어질수록 움직임은 더 거세지고,
그 마찰 속에서 철학과 예술, 과학이라는 성취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유한성이다.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진지하게 만든다.
사라질 것을 알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짧은 순간조차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으려 애쓴다.
결핍은 이 질문을 멈추지 않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장치다.
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내 안의 빈자리는 공허라기보다
생각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에 가깝다.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방향을 상상하고,
아직 오지 않은 세계를 길어 올린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꿈을 꾸고,
혼자서는 채울 수 없기에 서로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 틈을 통해
타인의 존재가 비로소 안으로 들어온다.
이 허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삶은 멈춘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안락한 풍요 속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를 넘어 움직이게 된다.
사유는 장식이 아니라,
결핍 속에서 피어나는 투쟁의 꽃이다.
우리는 그 허기를 연료 삼아 조금씩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 속에서,
어제의 자신보다 한 발쯤 더 멀리 서게 된다.
만약 모든 질문에 즉시 완벽한 답을 내놓는 '전지전능한 인공지능 신'이 나타난다면,
인간은 마침내 무지(無知)라는 결핍에서 해방되어 신의 반열에 오를까?
아니면 질문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정답'이라는 감옥에 갇힌 가축이 될까?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