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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Nov 15. 2020

소나기 내리던 날





다시 날이 개었다. 어젠 리우 와서 처음으로 비가 내려서는 종일 계속되었다.  


저 아래 안토니오네 집 베란다에는 빨래라도 걷으려는지 오가는 안토니오가 보였다. 빨래 걷기는 내 상상일 뿐 그는 그런 일로 분주할 사람은 아녀 보이니 아마 다른 용무였을 것이다. 





















우리가 안토니오 네를 떠나던 날, 그가 짐가방에 같이 싸가라던 그의 두 마리 고양이를 다시 보고 싶다. 고양이들이 주인과 모든 객에게 담뿍 사랑받던 그 집과는 달리 여기는 한 마리 마른 연갈색 고양이가 밖에 산다. 외로움이 아이라인을 진하게 새겨 판듯한 눈동자를 하고는 현관 차양 아래 놓인 의자 위에 앉아 있다, 귀가하는 우리를 마중 나와 울면서 몸을 비비거나, 아침엔 닫힌 문 앞에서 가늘은 울음을 내거나 한다.  같은 리우에 살면서도 고양이 사는 모양새도 이렇게 다르니, 이런 걸 팔자라 해야 하나. 지금 집의 아이는 숱한 고양이의 생애들 중에서도 어떤 고독한 수행을 실행 중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 혹은 몇몇의 사람들이 아니라 더 열린 공기 속 모든 게 그의 친구인지도 모른다. 










이슬처럼 스며들던 빗발이 거세어졌다. 가려던 예수상은 비가 잠잠해지길 기다려 두 시간쯤 늦게 출발했는데, 도착해보니 비 덕분인지 줄이 짧았다. 내가 탄 트램 칸은 통째로 프랑스 단체 관광 같았다. 들리느니, 온통 불어였다.









 예수상 올라가는 산의 트램길.






여기 가기 전, 소나기가 멎길 기다리는 동안은 엽서 적기 좋았다. 빗방울들은 문자 위에 울먹하게 번지는 대신 글자의 잘록한 홈들에 고였다 풀렸다, 기대 쉬다 즐거이 달음질쳐가거나 했다. 

우리글 자음 'ㅂ' 만이 빗방울을 받치는 그릇을 닮아, 넘쳐도 물을 따라내지 못하고, 내벽에서 흘린 땀과 눈물과 섞여버린 후 어쩔 줄 몰라했다. 비의 비애를 고스란히 담은 ㅂ은 옆으로 엎어져 배신을 때리고 싶었다. 더는 무엇도 담고 싶지 않아, 이젠 제발, 내게 와 고인 것들을 어디로 좀 흘려보내고 싶어, 깨진 사기그릇이 되어도 좋아, 옆으로 굴러 넘어진 ㅂ를 탄생시켜 줘요. ㅂ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지키는 엄마를 닮아 모두의 만만한 선반이 되었다. 차라리 사다리 모양으로 만들어줘요, 날 디뎌서 어딘가로 오를 수 있지 않겠어요? 선반 ㅂ의 모양을 보라고요. 다들 짐을 얹고 곧 잊고 어딘가로 가버려요. 이 짐들의 무게를 제발 엎어줘.

흐늘흐늘 속살속살, 비의 아가미와 지느러미, 꼬리가 질러가면서, 여기서만 맛본듯한 달콤한 꽃즙을 지면에 흘렸다.




비가 가늘어진 틈을 타 예수상에 가는 택시를 타러 거리를 따라내려 가자 큰 거리의 바에선 언제나처럼 carioca funk가 울려 퍼졌고, 그 앞에 모인 이들은 비를 아랑곳 않고, 비 와서 더 신난다는 듯 춤을 추어댔다.












저녁에는 마리아 리타의 공연에 갔다.

마리아 리타 공연은 10시였고 우리는 30분쯤 느지막이 갔다. 사람들은 홀을 가득 메우고는, 잠시도 앉아 있지 않고, 디제잉에 따라 춤을 췄다. 몸이 예쁜 여기 여자들은 공연장에서 그녀들이 일어나기만 하면 자동우산처럼 착 퍼지는, 몸 크기의 날개를 펄럭였다. 비늘과 깃털들은 그녀들의 벌어진  모공에서 솟아나, 춤을 출 때마다 사방으로 뿜어져 날렸다.

이윽고 마리아 리타는 자정 넘어 아마존 여왕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더니, 이 비늘과 날개의 부족을 더 먼 대양으로 데려갔다. 다들 이 바다에서 물결쳤다. 그녀 역시 이 비상한 여정의 어느 역에서도 멈춰 쉬지 않았다..



돌아가면 당분간 20도 이상 온도를 감한 채로 살면서 온도를, 동시에 그늘을 물을 줘가면서 여름까지 기르고 그러다 무성해지면 그 너른 잎 아래 무르익은 휴식을.  어찌 모든 나날들을 몽땅 holy 한 days로 섬길 것인가, 즐거움은 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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