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데자네이루의 산타 테레자 동네의 안토니오 씨 집.
붉은 창문 아랫방에 내가 머물렀었다.
자기의 소유격들에게 보다 정중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자기를 더욱 사랑하세요라는 권고는 줄어들 텐데.
NUNCA EATRGUE ALGO BONITO
눈까 에스트라기 알구 보니뚜
어떠한 아름다운 것도 해가 되지 않는다.
제대로 해석한 것인지나 모르겠다.
안토니오의 거실 벽면에 쓰여있는 저 말은 어쩌면 사용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저 공간의 주인 안토니오라면 어떤 아름다운 것도 해로 만들지 않을 것만 같다.
그가 리우에 태어나 살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런 자질이 닦여진 혼이라 리우에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반면, 나 스스로는 검은 나비인 것만 같다.
자기를 혐오하는 사람은 실제의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들이 덧씌운 혹은 본래의 자신과 바꿔치기해 씌운 엉뚱한 가면을, 미운 오리로 자기를 여겼던 백조처럼 착각하고 사는 게 틀림없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는 이러한 인식이 적용되지 않아서, 이 혐오의 실상이 착각일 뿐일 거라 해도, 이 인지 질병의 독이 스스로에게 바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만다.
이 끈질긴 흑마법은 중간에 걸렸다기보다, 이미 시원조차 짚어지지 않을 만큼 첩첩이 얽혀 있어, 이 흑마법의 그물로부터 나를 건져내는 게 일생의 과정인 것만 같다.
저 시계는 이제 보니 찍을 당시에도 맞았는지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하루에 한 번 아니 정확히는 두 번, 저 시분 초침이 멈춘 8시 29분 39초 마다라도 한 번씩은 저 말을 되뇌고 싶다.
NUNCA EATRGUE ALGO BONITO 눈까 에스트라기 알구 보니뚜.
외롭지 않으면 어색하고, 편한 것이 불편하며, 따스함이 닿는 순간 드라이아이스에 덴 듯 깜짝 놀라는 병이 도지는 순간 마다도 한 번씩 더.
안토니오네 옆집 벽면.
안토니오 집 화장실 벽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