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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Dec 01. 2020

리우는 사랑

마지막 회






리우는 사랑.

리우에 가면 저절로 뇌리에 새겨지는 이 구절. 

동명의 영화 제목이 있음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리우에 다녀와 일 년 후에 쓴 일기.



1.27. 15:15

하루 풀려나가면 그다음 날 혹은 며칠 또 가슴엔 매듭이 진다. 내일은 맺힐 거야 이틀 후면 풀릴 거야, 이젠 점을 칠 수도 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한 가지를 마친 토요일의 나머지 시간을 어찌 보낼지, 우선순위도 정하지 못하는 채로 있다. 

매운 한기 속 졸업식이라는 통과의례로 부산함과 스산함이 감도는, 한 해 중 제일 짧은 달이거나 말거나 그런 만큼 더 짜릿한 맛을 보여주마 하듯한 칼바람으로만 각인되던 그 종래의 2월을 처음 벗어나 본, 그 카니발의 한 복판인 2월로 가기 위해 짤막한 인사말 정도를 배우러 다니던 작년 1월의 강, 리우 데자이네루. 





여기 가기 몇 달 전 11월, 삼바 워크샵이 끝나는 순간, 삼바 선생님 까두는 우리 모두를 둥글게 원을 지어 서로의 어깨를 감싸게 하고서 말했다.

"이 가득한 사랑의 에너지를 바깥에도 전하세요."

그날 그 지하의 스튜디오는 내가 체험해보지 못한 에너지로 꽉 차 있었다. 가상으로 지어내다시피 하여 임시로 맛보는 충만하고는 다른, 토양과 기후 자체로부터 생성된 세포와 영혼으로부터 뻗어나가 확장된 반경을 가지는. 잠시지만 천국을 맛본 기분이었다. 



그러다 해를 넘겨서는 이윽고, 도시 전체가 사랑의 에너지로 지어진 것만 같은 곳에 나를 놓아두게 되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가득함이 있을 수가 있는 거지?

어떻게 세상에 행복이라던가 사랑이 진짜로 살아 펄떡이는 나머지 기뻐 춤추고 노래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장소가 있을 수가 있는 거지? 

상파울루행 비행기에서부터가 실은 충격이었다. 승무원들의 표정이, 비즈니스성 영업 미소가 아님이 너무 표가 났던 것이다. 지축까지 스며들어갔던 햇빛이 그들의 세포를 투과하여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승무원들은 그들끼리 장난을 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빙을 하곤 했다.



이 느낌은 김화영 선생님이 남프랑스에 내리자마자 처음 느꼈었다는 '행복의 충격'과 비슷한 듯 달랐다. 

바로 그 다른 점은, 이 행복의 모든 숨결을 이 도시와 사람들이 리듬과 멜로디로 바꾸어 들려주었다는 점이다. 행복이 나를 마구 폭격하였지만 그것은, 하염없이 나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나뭇잎들과, 원하는 어딘가로 늘 카풀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바람의 양식을 빌었다. 그냥 가로수 아래를 걸어갈 뿐인데도, 어김없이 호의적으로 살아온 바람이 훑어 들려주는 나뭇잎들의 곡선 진행이, 추락이나 하락이 아닌 춤으로서만 주변을 돌았던 것이다.



작년 딱 이맘쯤이었다.

리우 덕에 칼바람의 2월은 훈풍으로 바뀌었고, 이 기억은 앞으로 올 모든 2월 내내 온풍을 돌릴 거다. 






잘 보면 저 멀리 

예수상이 보인다.




왼쪽의 성당은 스타워즈에나 나올법하게 생겼다.









리우의 남대문 시장통의 복판에 있는, 나의 삼바 선생님들인 까두와 비비 커플의 댄스 스튜디오. 11월에 익힌 삼바를 복습하러 갔다. 교습비는 한 시간에 만 원 꼴이나 될까 정도로 싸다. 

여기서 삼바 지 가피에라, 포호 댄스 그리고 삼바 누뻬 세 가지를 복습했다. 삼바 누 뻬는 삼바 솔로 스텝이고 나머지는 커플 댄스다. 커플 댄스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제일 통달하고 싶었던 건 삼바 누 빼. 

빼는 '발'이라는 뜻이다. 발은 불어로는 '삐에'니까, 브라질 어를 듣고 있자면 가끔 불어 비슷해서 절로 알아들을 듯한 어휘들이 더러 섞여 있다.


삼바 지 가피에라는 서민적 느낌의 탱고라고 할 법하다. 좀 더 가진 층의 춤이 되어버린 탱고에 꿀리지 않으려 더 우아하게 추려했었다는 초창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런가 하면 포호는 일종의 브라질 뽕짝이랄 수 있다.









높고 널찍하고 바람이 잘 드는 스튜디오. 











      이 삼바 선생님들의 각종 트로피.




레슨을 두 개쯤 연달아 듣고는 시장을 빠져나오다 자주 들르던 뷔페식 음식점.

간단한 초밥과 과일 등을 담아 맥주 한 잔과 딱 먹으면 좋았다. 가운데 뭔지 모를 하얀 것은 단무지 비슷한데 맛나서 초밥이랑 먹기 좋았다.








디저트도 할 겸 서점으로 가면, 음악의 나라답게 뮤지션 관련 책이 많았다. 마리아 베타니아에 대한 책은 볼륨이 두꺼웠다.

이 접시들 가져다주신 분이, 한국 아이돌 그룹이 상파울루에 온다며, 조카가 몹시 좋아한다고 했다.








이 북실북실 거품. 이런 크리미 한 음료는 일 년에 한 번 마실까 말까 한데 이런 탐스러운 거는 한 번 먹어줘야지.

라임즙이 들어간 차가운 마테차는 브라질의 넥타르라고나 할 수 있을 거다. 






서점 공간.




     카페 공간.




은행 셔터가 이런 핑크.







걷고 또 걸으면 역 앞에 다다라 제일 좋아하던 음료를 마시곤 했다. 리우에서도 여기밖에 파는 데를 못 본 꾸뿌아쑤. '쑤'에 강세가 들어가던 아저씨 발음이, 얼굴 그리고 그 주름에 고인 햇빛과 더불어 선명하다. 






지나다 본 상점 안 고양이.






그다음 날도 선생님들의 스튜디오로 출퇴근.

네 번인가는 가서 배웠지만, 이렇게 복습해도 스텝이 익어 자유롭게 펼쳐지지는 않았다.

삼바 솔로 스텝은 리듬을 타며 이걸 가지고 놀면서 즉흥적으로 동작이 나와 주어야 하는데, 브라질 가서 재 복습을 하고도 기본 발 옮기기 정도밖에 익히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안의 흥을 끌어내어 발걸음에 실을 수 있게 되는지, 궁금하듯 약간 애타는 선망은 귀국을 해서도 지속되다가 어느 날 바람결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어쩌다 무심코 실현되었다. 어, 그냥 되잖아? 하는 순간이 오긴 왔다.




며칠 전 꿈에 하루는 살사 스텝을 연습하더니 그로부터 이틀 후 꿈엔 삼바를 밟고 있었다. 제 자리에서 추는 식이 아니라 추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의 스텝이었다.  



  

리우의 에너지는, 웃음을 띠고 저절로 앞으로 걸어보고 싶게 만드는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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