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에 앉아 사방의 장미를 본다. 여왕님의 꾸지람을 받은 병정들이 칠하다 만 얼룩덜룩한 장미도 여기 어딘가에 있을 터이다. 이곳은 벚꽃으로 유명한 동네지만, 이 천변은 벚꽃보다 장미가 더 알뜰하다. 장미는 향기를 제법 오래 방전시킨다.
이곳에 오기 위해 아주 잘 차려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요새 심신이 아주 엉망이어서, 이곳에 올 만큼의 삶의 리듬을 여간해서는 만들기 힘들었다. 머리와 온몸이 뿌연 안개로 감싸인 듯한 날들이 며칠 계속되었다. 독서나 작업을 하려 들면 심각한 시력장애가 일어났으며, 정신은 때때로 우주의 흑암 지대를 서성이다 실종되었다. 이런 나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지러웠다.
휴일인 어제와 오늘, 최대한 잘 차려 먹으려 노력하였다. 나는 종종 혼자서 파티를 누린다. 반드시 누군가를 초대해야만 파티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호스트인 나, 먹으러 걸어오는 나, 그리고 보이지조차 않는 another 나, 그리고 오후 고개를 넘어가기 전 충분히 지상을 어루만지는 햇빛.
오늘처럼 볕 좋은 날을 맞아 이불빨래 돌리는 세탁기 소리, 고양이가 간식 달라고 보채는 소리. 그렇게 심신을 겨우 달랜 다음, 천변을 향해 걸으며 나는 거리에 가득한 소리를 쓸어 담았다. 평온해진 마음 위를 지나는 자동차들 소리는 더는 소음이 아니다. 소음이 아니라, 자명한 책처럼 잘 읽히는, 결 담은 활자들이다. 바퀴들은 붕붕, 말을 한다. 개개의 바퀴 소리는 그것을 모는 자의 심성 번역기가 된다.
천변을 빙 둘러 분홍빛 연등들이 펄럭인다. 내 신발 속에 또 어김없이 기어들어간 한 알의 모래가 신경 쓰인다. 신는 순간엔 모르다가, 걸어가면서야 문득 묘하게 걸리적거리는 한 알의 모래, 언젠가부터 이 현상을 삶의 추동력의 은유로 여긴다. 나는 발걸음을 부단히 옮길 것이다. 발바닥의 모래 한 일이 영 석연치 않으므로, 탐구된 바 없는, 여백에 속하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눈에 띄지 않는 것들 앞에 발을 멈출 것이다. 그것들은 항상 보석을 품은 태胎의 모양을 하고, 나는 까마귀 같은 본능으로 이를 발견한다. 여백의, 넝마의 콜라주를 완성하리라.
재즈처럼 길어지는 낮, 오늘의 여백 찬미 끝.
Au revoir. A de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