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태백산맥>

by Henry




<태백산맥>은 한 시대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시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인간이 어떻게 역사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갔는지를 끝까지 묻는다.


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심층을 따라 내려가는 긴 체험에 가깝다.


조정래는 한국 문학에서 드물게 ‘역사 전체를 서사로 감당하려 한 작가’다.

그의 문학은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하지만 개인에 머무르지 않는다.


분단, 이념, 계급, 폭력 그리고 침묵이라는 거대한 구조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휘어버리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조정래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한 문장, 한 장면마다 축적된 취재와 사유의 밀도가 깊다.

그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기록자이며 윤리적 증인이다.

<태백산맥>의 배경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격동기다.


전라남도 벌교와 지리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서사는 좌와 우, 빨치산과 토벌대, 지주와 소작농, 지식인과 민중이 복잡하게 얽힌 삶의 현장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인물도, 완전히 악한 인물도 없다.

이념은 신념이 되기도 하지만 생존의 언어로 전락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지 못한 채 그러나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를 통과한다.


조정래가 그려내는 비극은 전쟁 자체보다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균열에 있다.

가족은 찢기고 마을은 서로를 감시하며 말 한마디가 생사를 가른다.

누군가는 이념 때문에 죽고 누군가는 이념과 무관하게 죽는다.


이 작품이 무서운 이유는 폭력이 아니라 폭력이 일상이 되는 과정을 너무도 담담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태백산맥>은 묻는다.

이념은 인간을 구원했는가, 아니면 인간을 소모했는가.

역사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록되는가.

그리고 침묵한 다수는 과연 무죄인가.


이 소설의 중심 키워드를 하나로 압축한다면 분단의 비극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분단이 아니다.

언어의 분단, 관계의 분단, 기억의 분단이다.


같은 하늘 아래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해야 했던 사람들의 내면에는, 끝내 봉합되지 않는 균열이 남는다.

조정래는 그 균열을 미화하지도 봉합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그것이 문학의 역할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오늘의 독자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역사는 과거에 끝나지 않는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되고, 이해하지 않은 분단은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돌아온다.


<태백산맥>을 읽는 일은 특정 이념에 동의하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결심에 가깝다.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편을 가른다.

의견이 다르면 배척하고, 이해하기보다 판단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말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을 뿐이라고.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사회에 가까워진다.


<태백산맥>은 한국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질문 중 하나를 품고 있다.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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