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헤르만 헤세 <데미안>

나를 깨우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by Henry




헤세, 자기 탄생의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기록한 사람이다. 싱클레어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자랐다.

그를 구원한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깨어나라”라는 목소리였다.


헤세는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이 타인의 기준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임을 말한다.


'나’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너는 너만의 길이 있다”라고 말해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옳고 그름, 선과 악이라는 틀 속에서 성장한다.

그러나 헤세는 묻는다.

기준은 과연 ‘나’의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에게 씌운 외투인가?


자기 발견은

새로운 길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진실을

다시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나를 깨우는 힘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끌린 이유는

그가 특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스스로 알고 있었으나

두려워서 바라보지 못했던 진실을

조용히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우리를 깨우는 힘은

누군가의 충고나 위로가 아니라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는 내면의 떨림이다.


작은 떨림이

한 사람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끈다.


에바 부인 앞에서 싱클레어가 배운 것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이다. 에바 부인은 말한다.

“네 안에는 이미 답이 있다.”


이 말은 위로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향한 내적 지침이 있다.

목소리는 작고 흔들리지만

삶의 전환점마다

가장 정확한 방향을 가리킨다.


우리는 종종 외부에서 답을 찾느라

자신이라는 나침반을 잃는다.

싱클레어가 다시 일어선 이유는

나침반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자기를 깨우는 것은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다. 성장은 기쁨이 아니라

대부분 고통으로 찾아온다.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잃는 일이며

때로는 기존의 세계를 떠나는 과정을 포함한다.


헤세는 말한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인간도 자신의 껍질을 깨는 고통을

통과해야만 진짜 ‘나’로 태어난다.


지금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타인의 기대를 따를 것인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작고 고요한 목소리를 따를 것인가.


나를 깨우는 힘은 멀리 있지 않다.

그 힘은

고요한 순간에만 들리는 내면의 진실,

그리고 진실을 따르려는

아주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싱클레어의 여정은

누군가가 우리를 바꿔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안의 무엇인가가

스스로 깨어나는 순간에 관한 기록이다.


Henry



keyword
이전 02화알베르 카뮈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