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

정당성의 근원이 이동한 해 / 국민이 등장한 순간

by Henry




1789는 한 나라의 정치 변동이 아니라
세계가 권력을 이해하는 방식이 바뀐 해다.
왕이 쓰러진 사건이 아니라
정당성의 근원이 이동한 순간이다.
이 해 이후 권력은 더 이상 혈통만으로 설명될 수 없었다.

1789년 이전의 유럽에서
권력은 신의 질서와 전통의 연장선에 있었다.
왕은 통치자가 아니라 존재 이유였다.
그러나 파리에서 민중이 바스티유를 습격한 그날,
무너진 것은 감옥의 벽이 아니라
“권력은 위에서 내려온다”는 신화였다.

프랑스혁명은
폭발이 아니라 전복이었다.
사람들이 바꾼 것은 정권이 아니라
질서의 전제였다.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공표된다.
이 문서에서 가장 급진적인 단어는
‘자유’나 ‘평등’이 아니라
국민이었다.

권력은 개인의 덕목이나 신의 은총이 아니라 숫자로 표현되는 다수의 의지에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이 개념은 이후 모든 정치 질서를 흔들어 놓는다.

에마뉘엘 시에예스는 말했다.
“제3신분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1789는
숫자가 정치 주체가 된 해다.

1789의 언어는 고결했다.
자유, 평등, 박애
그러나 혁명의 시간은
언제나 그 언어를 시험한다.
왕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고
혁명은 공포정치로 변질된다.

이상은 살아 있었지만
현실은 피를 요구했다.
1789는
혁명은 순수할 수 있으나
권력은 언제나 불순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프랑스혁명은 국경을 멈추지 않았다.
이념은 군대보다 빨리 이동했다.
왕조들은 불안해졌고
민중은 질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권력은 왜 그들에게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가

1789 이후
혁명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가능성이 된다.
이 해는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현실이 된 최초의 증거였다.

철학적으로 1789는
인간이 자신을 객체에서 주체로 옮겨놓은 해다.
법은 더 이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 되었다.

칸트는 이 시대를 두고
“인류의 성년식”이라 불렀다.

1789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한 해다.

1789는 자유를 외쳤지만
곧 새로운 권력을 낳았다.
혁명은 왕을 제거했지만
권력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후의 세계에서
권력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설명해야 했고
정당화해야 했으며
비판받아야 했다.
이 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

1789는 완성된 답이 아니다.
끝난 사건도 아니다.
그 해는 하나의 질문을
세계에 던졌다.


“누가 다스릴 권리가 있는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서 1789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연도다.
혁명은 끝났지만
혁명이 남긴 질문은
아직 세계를 흔들고 있다.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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