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그는 이상(理想)을 사랑했고 진리를 그리워했고 영혼의 본질을 끝없이 물었던 사람이다.
아테네의 햇살 아래 그는 자랐고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의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
눈앞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았고
너머의 ‘이데아’를 향해
침묵과 사유의 배를 띄웠다.
그는 철학을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
삶을 철학의 언어로 풀어냈다.
그의 글에서는 사유가 춤추고 질문이 노래한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한 노인이 법정에 섰다.
이름은 소크라테스. 죄목은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것.
플라톤은 법정에 있었다.
사람들은 논리를 잣대로 정의를 재단하고 있었지만
노철학자는 맨몸의 진실로 세상과 맞섰다.
그리고 그는 죽었다. 독배를 들고.
플라톤은 세상의 껍데기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물음은 그날부터 평생을 따라다녔다.
그는 나라를 세우기로 했다.
힘이 아닌 지혜로 다스려지는 나라.
욕망이 아닌 진리가 중심이 되는 나라.
<국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스승에게 보내는 철학적 유서처럼
<국가>는 정치철학의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인간의 영혼, 교육, 예술, 사랑, 그리고 국가의 이상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철학의 대서사시이다.
플라톤은 말한다.
“정의로운 사람은 자신 안에 질서를 세운 사람이다.”
혼돈스러운 세상 속에서 그가 말하는 국가는 곧 자신이다.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가 가장 정의롭다.”
“동굴 속에 갇힌 사람들은 그림자를 진실이라 믿는다.”
동굴의 비유는 지금도 우리 현실을 꿰뚫는다.
우리는 모두 동굴 속에 살고 있다.
빛이 아닌 그림자를 보며
그것이 전부라 믿고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플라톤은 말했다.
그림자 너머, 눈부신 진실이 있다.
진실은 누군가의 권력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서 깨어나는 '질서'이며 '조화'다.
그는 정의를 말했지만
결국 인간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고귀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한 나라의 이상은 곧 한 사람의 완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가 <국가>를 읽는 이유는
더 나은 나라를 상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정의는
높은 언덕 위의 성이 아니다.
그건 내 안의 소란을 가만히 가라앉힌
한 줄기 고요다.
진실은 빛이 아니다.
그건 어둠에 익숙한 눈을 서서히 적시는
작은 불빛이다.
국가는 어떤 제도도, 헌법도 아니다.
그건 한 사람이 자신을 다스리는
깊고 단단한 마음이다.
플라톤은 말한다.
나라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당신의 영혼부터 정리하라고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