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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Sep 04. 2018

육아휴직 첫날 아이에게 일어난 일

나의 육아휴직 첫날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기분 좋은 시작이어서가 아니라 첫날부터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휴직을 시작했을 당시,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것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사실 '자신'보다는 '까짓것 하면 되지~' 뭐 이런 생각이었달까. 휴직 전에도 아내가 주말에 외출을 하면 아이를 혼자 보기도 했다. 때맞춰 먹여주고 재워주고 놀아주니, 하루 정도는 별문제 없이 아이와 지낼 수 있었다.


#1. '아빠의 육아'는 기대치가 낮다


아빠가 본격 육아를 한다고 하면, 주변 반응도 좋다. 잠깐 다른 얘기로 빠져보자면,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안타까운 지점이기도 하다.


남자는 육아휴직을 쓰게 되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 주변 사람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게 된다. 육아를 한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도 "좋은 아빠네요~", "아기 정말 잘 보시나 봐요~", "남자가 아기 돌보기 힘든데 대단하시다~"라면서 칭찬 일색. 하지만 그 말들을 바꿔 생각해보면, 그만큼 '아빠 육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낮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아빠의 육아'는,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한편, '엄마의 육아'는 어떤가.


엄마들은 '엄마'라는 타이틀에 너무 많은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 조금만 실수하거나 서툰 모습을 보였다간 "엄마가 뭘 잘 모르네." "저렇게 하면 안 되지."라는 부정적 시선, 질책에 시달리게 된다. 오죽했으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라는 제목의 책까지 나왔을까.


'엄마의 육아'도 처음엔 다 낯설고 서툴기 마련이다. 게다가 엄마의 첫 육아 휴직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빠보다 훨씬 힘든 시기이다. '아빠의 육아'보다 더 많은 응원과 격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2. 육아휴직 첫날, 놀이터 앞에서 벌어진 일


육아휴직 첫날, '우리 딸, 아빠가 신나게 놀아줘야지!'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트 앞 놀이터로 갔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초입의 완벽한 날씨였다. 첫째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놀이터를 코 앞에 두고 첫째가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놀이터 입구에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길이 있었는데 바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뛰어가던 아이가 발을 헛디뎠던 것이다. 나는 딸이 안정적으로 걷고 뛸 수 있을 줄 알고 손을 잡지 않고 뒤에서 따라가고만 있었다.


두 돌이 지난 아이도 뛰다가 넘어지는 일이 많은데, 나는 어쩌자고 16개월 아이가 뛰어가는데 보고만 있었던 건지,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나 보다.

놀라서 달려가 아이 무릎을 보니 심하게 긁혀 피가 나고 있었다. 꽤 상처가 깊어 흉터가 남을 것 같았다. 아이는 놀라기도 하고 많이 아팠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참을 울었다. 집에 다시 들어와서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 주려는데, 그 모습을 보고 또 울면서 손을 벌벌 떨기까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3. 언제나, 방심은 금물


그날 이후, 쌀쌀해져 긴바지를 입기 전까지 외출할 때에는 꼭 무릎 보호대를 챙겼다.

이런 게 집에 있었는데 왜 쓰질 못하니...

나는 당시에, 아이가 돌이 되기 전 이미 걸음마를 뗐고 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이젠 걷고 뛰는 건 문제 없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놀이터 사건' 이후로 나는 지금도 아기가 뛸 때면 조마조마한 마음에 뒤를 빠짝 쫓아간다. 내 손을 뿌리치며 뛰어갈 때에도 어떻게든 손을 잡거나 아이에게 주의를 주려고 하고 있다.


의욕만 앞섰던 아빠는, 육아직 초반부터 엄청난 반성을 해야 했다. 언제나 방심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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