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육아휴직을 하면 쉴 수 있다?
첫 육아휴직 신청서를 제출하던 날, 나는 '출근하지 않는 삶'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했었다.
'아... 드디어 나도 좀 쉴 수 있겠구나...'
결혼을 하기 전, 아내와 연애할 당시만 해도 나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하던 PD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매일같이 방송을 했지만 어느 정도 규칙적인 생활이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코 앞에 두고 갑자기 사전 제작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서 일이 부쩍 많아졌던 나는, 결혼을 하고 출산한 이후에도 고강도 업무를 피할 수 없었다. 야근은 당연한 것이었고 주말에도 편히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방송 일이라는 게 다 그런 줄 알면서도 이 업계에 뛰어들었다.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고 보니, 내 직업이 마냥 좋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걸 이루겠다고...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가족들이랑 보낼 시간도 없는데... 뭘 위해서...'
괜히 이 길로 들어섰다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복직하는 아내에 이어 신청하게 된 첫 육아휴직.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는 몰라도 잠시라도 일에서 벗어난다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도 '저 곧 육아휴직해요.'라고 하면 '우와~ 좋으시겠어요. 잘 쉬다 와요~'와 같은 말을 건네곤 했다. 그렇게 나는 부푼 꿈을 안고, 그리고 많은 이들이 부러움을 받으며 첫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히 했던 육아는 물론이고 갖은 집안일, 복직한 아내 뒷바라지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남는 시간에는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좀 보고, 드라마 정주행이나 하면서 빈둥거릴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육아휴직을, '긴 휴가' 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2. 육아는 노동이다
하지만 '육아휴직'은 '휴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이를 두세 시간에 한 번씩, 낮이건 밤이건 수유해야 했던 아내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아이와 단 둘이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노동'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선 아침에 눈을 떠 밥을 먹이는 것부터 힘이 들었다.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 아이 앞에서 온갖 재롱을 떨며 밥을 먹이게 되는데, 그러면 4, 50분은 그냥 흘러갔다. 그렇게 한바탕 진을 빼고 아이와 1~2시간 놀아주다 보면 금세 또 다가오는 점심시간.
육아휴직 초기, 의욕 넘칠 때 만들었던 부추밥전다시 한번 힘겹게 밥을 먹인 뒤 아이가 낮잠을 자면 잠시 한 숨 돌릴 수가 있다. 그런데 이때, 마냥 쉬기만 하면 집안일이 밀리기 시작한다. 청소, 설거지, 빨래를 한다. 일을 마무리하고 잠시 쉬려는데 방에서 들려오는 아이 울음소리. 달콤한 휴식은 그렇게 짧게, 끝이 난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간식을 먹이고, 또 놀아주고 저녁을 먹이고, 씻겨주고 재워준다. 그러면 어느덧 시간은 9~10시. 다음날 아침을 깔끔하게 맞이하려면 집안일을 또 안 할 수 없다. 아이가 먹을 이유식도 미리 만들어 놔야 한다.
육아휴직 후의 일상이 매일 이렇게 똑같을 순 없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아이들은 잘 때가 제일 예쁘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물론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다. 언제 또 가족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주면서, 또 주말마다 마음 편히 가족끼리 나들이 가면서 행복한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다. 육아가 익숙해져서 요령이 생기면, 짬을 내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육아를 포함, 가족들을 위해 '노동'을 하게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3. 그러니까, 육아휴직에 대해 더 이상 오해하지 말자
'육아휴직'이라는 말의 방점은 '육아'에 찍혀 있다. 단순히 쉬러 가는 것이 아닌 만큼, 더군다나 가족을 위한 휴직인 만큼, 회사에 죄책감 느끼지 않고 떳떳하게 말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육아휴직 쓰겠습니다'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내가 없으면 업무 공백이 생길 텐데 괜히 여러 사람에게 민폐 끼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눈치를 보게 되니까. 특히 남자 직원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 특히 '윗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족을 위해 힘쓰러 가는 직원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줘야 조금이라도 더 편한 마음으로 휴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한 가지 더. 휴직 당사자들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건 본인 때문에 발생하는 업무 공백에 대한 부담감이다. 이건 반드시 회사 차원에서 해소해줘야 한다. 부하 직원들이 본인 업무에 대한 책임감으로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모습을 본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
'뒷 일은 회사에서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 휴직 신청서 제출해.'
#4. 아직 갈 길은 멀다. 모두가 연습이 필요하다. 직원도, 회사도, 사회 전체도.
이미지 출처 - 세계일보2018년 1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전체 육아 휴직자의 수뿐만 아니라 그중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남성의 평균 육아휴직 기간은 약 6개월로 여성(약 10개월)에 비해 짧고, 3개월 이하 사용 비율도 41%로 여성(9.5%) 보다 높다고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소기업의 경우는 남성 육아휴직자의 수가 특히 더 적다고 한다. 아무래도 기존 인력도 부족하고, 그때그때 대체 인력을 구하는 것도 대기업보다 어려워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처음엔 어렵더라도 의지를 가지고 서서히 남자 직원들의 육아휴직 사례를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면 기업에서도 '남자 직원이 잠시 빠지더라도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있구나.'라는 걸 학습하게 되고, 결국 보다 많은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