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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Jul 02. 2023

우리집에 찾아온 불청객

하마글방 수강생 온의 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수술 대기실 천장에 적혀 있는 성경 구절을 보면서 내가 남겨두고 온 기도들을 떠올린다. 어제 아빠의 기도도 뿌리쳤고 오늘 여기 올라오기 직전에 엄마 휴대폰으로 걸려온 목사님의 전화도 거절했다. 누운 채로 실려가는 건 왠지 지는 것 같고 호락호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비스듬히 기대 앉을 수 있도록 침대를 조절한 탓에 찔끔찔끔 우는 걸 숨길 수도 없다. 정형외과 수술실에서는 공사장에서 날 법한 소리가 들린다던데 진짜 그럴까? 푹 수그린 목이 아파온다. 우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너무 초연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애원하고 싶다. “저만 이렇게 유난 떠는 거 아니죠? 사실 다 외롭고 서럽고 무서운데 참고 있는 거죠, 그렇죠? 그냥 우리 다 같이 울면 안돼요?” 하려다가 꾹 참는다. 우리가 울고 소리치면 거기에서 튀어나온 눈물과 가지각색의 이야기들이 수술실 입구를 메워버릴 거다. 그리고 희망과 기대감이 더 큰 사람도 있겠지. 그러니까 이건 오만하고 이기적인 생각이다. 엊그제 저녁에 아빠가 한 식전기도를 떠올린다.

“수술이 잘 끝날 수 있게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셔서 우리 OO이가 꼭 두 발로 걸을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아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감고 있던 눈을 뜬다. ‘기적’이라는 말에 목구멍이 막힌다. 내 앞에는 아빠가 입원 전에 맛있는 걸 먹이고 싶다며 사온 딸기가 한그릇 가득 담겨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무리 설명해도 “그럼 넌 안 걷고 싶냐는 얘기냐”는 말만 돌아온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한번도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을 상상해본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아빠 앞에 앉아 부끄러움과 수치심 없이 사람들 사이를 기어 다니고 휠체어 바퀴를 굴릴 때 내가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이야기한다. 수술을 하는 건 그런 기회가 찾아왔을 때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잡고 싶기 때문이지 지금의 내 몸이 싫거나 불행해서가 아니라고, 내가 나를 설득하고 변호하기 위해 찾았던 말들을 다시 꺼내 놓는다. 그리고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해도 장애는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아빠는 자꾸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 안 걷고 싶어?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그리고 이건 내 기도야. 너한테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고. 내가 내 자식 위해서 기도도 못하나?” 아빠 뒤에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앉아 있다. 아빠와의 대화에는 항상 하나님이 끼어든다. 불청객이다.

엄마 말대로라면 이 불청객은 내가 데리고 왔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아빠는 엄마가 나와 두살터울인 오빠를 임신했을 때만 해도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고 친한 지인이 교회 가자고 해도 할머니가 불교를 믿기 때문에 한 집안에 두 종교가 있어서는 안된다며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내가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니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불청객은 내 등에 업혀 우리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밥 먹기 전에 불필요하게 길고 휘황찬란한 기도를 할 때도, 가끔씩 “넌 대체 언제 교회 갈 거냐”고 물어도, 가기 싫다고 이미 몇번이나 말했음에도 끈질기게 권유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도 어느 정도는 참고 인내해야 한다. 아빠가 내 몫의 무게를 나눠 가졌으니 나 역시 아빠의 몫을 나눠 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짜증나고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아빠가 치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제일 짜증나는 건 아직도 아빠의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다.

어제는 자꾸만 엉겨 붙는 아빠의 기도를 뿌리치고 왔으면서도 지금은 그 기도를 조각내고 덧붙여서 웅얼거린다.

'수술이 잘 끝날 수 있게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고 회복과 재활 과정에서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혹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까지 제 힘으로 삼을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작가

차곡차곡 쌓아온 화를 단단한 모양으로 만들어서 손에 쥐고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 온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삐걱거리는 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thdud0513-@naver.com

블로그: https://m.blog.naver.com/thdud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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