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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유 Aug 26. 2022

혼자 콘서트를 보러 갔다

혼자 콘서트를 보러가는 카프카적 상황에 대하여

외동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고 살아왔다 자부하는 나지만, 의외로 혼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 특히 공공장소에서의 문화생활에 있어 그렇다. 혼자 영화관을 가는 일은 거의 없고, 콘서트도 남자친구가 없을 때 오케스트라 공연을 딱 한번 보러 간 것을 제외하면 이제껏 항상 누군가와 함께 였다. 나에게 공공장소에서의 문화생활이란 당연히 누군가와 함께 예술작품을 즐기고 그 소회를 나누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최근 대중가수의 콘서트를  1장만 구매한 것은 내겐 역사적인 일이었다. 처음부터 혼자 보러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평소 좋아했던 가수 장기하의 단독공연 소식을 접하고 남자친구에게 예매 오픈 일정까지 보내뒀으나 허무하게도 서로 예매 오픈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어쩔  없이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아쉬워하던 차에 나는 간간히 취소표가 풀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곧장 예매 사이트를 들어가보니 정말  좌석이 몇 개 남아있는  아닌가. 다만  자리 연석은 없고   자리씩만 남아있었다. 게다가 예매가 가능한 날에 남자친구가 해외 출장으로 관람을   없는 날이기도 했다.


그 순간 내 사고의 회로는 평소와 다르게 흘러갔다. 그래, 혼자 보면 어때. 어차피 내가 먼저 보고 싶었던 공연이고, 만약 두 자리가 비었다고 해도 그 누구에게 이 공연을 추천할 수 있을까. 슬프지만 내 주위에 장기하를 콘서트를 갈 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보이니까 (...) 이참에 혼자 가보는 거야. 여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표를 사는 일은 쉬워졌다. [예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와, 나도 드디어 콘서트를 혼자 보러가는 힙쟁이다!






티켓을 예매하고  , 기다리는 초반   동안은 그저 설레기만 했다. 주변에 자랑도 했다. 그런데 막상 공연 일정이 점차 다가오자 이상한 긴장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행도 없는데 주변 눈치 보지 않고 공연을 즐길  있을까? 혹시라도 소외감을 느끼면 어떡하지?'같은 지극히 한국인스러운 고민이랄까. 나이 서른 넘게 먹고 이런 소심한 고민을 하고 있다니  스스로도 부끄럽고 찌질하게 느껴지긴 했으나 (...) 진짜 그랬다. 이따금씩 예매 현황을 열어보기도 했다. 워낙 덜렁거리는 성격이라 혹시 내가 일정을 착각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역시나 콘서트 당일 신분증을 빠뜨리고 나와서 집에 다시 돌아가는 실수를 범하기는 했지만, 콘서트 시간에는 맞출  있을  같았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한강진역으로 향하는 . 갑자기  해괴한 생각이 들었다. ' 콘서트가 정말 하는  맞겠지?'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나는 콘서트를 보러갈  일행과 함께 어떤 공연이 펼쳐질지 기대하며 열심히 떠드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혼자 장기하의 노래를 습하면서 앉아있는 지하철 안에서, '정말  콘서트는 그곳에서 열리는  맞을까?'하는 터무니없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해괴한 망상병은 사실 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영화 <기생충>  대사처럼 평소 치밀한 계획을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 한달 간의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다. 비행기표, 기차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입장권을 사는 많은 것들을 오롯이  혼자 해내야 했는데  모든 과정들이 나에게는 허상처럼 느껴졌다. 의문은 '정말  비행기가 그때 떠날까? 나를 받아줄까?'부터 시작되었다. 예약한 모든 곳에서 컨펌 메일도 받고, 스프레드 시트에 계획을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있었지만 ' 낯선 곳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어이없는 불확실성도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났다. 이게 바로 책에서만 보던 '카프카적 상황'인가. 모든 것이 현실적인데 비현실적이고, 불안하지만 벗어날  없는 악몽을 꾸는  같은.


해외여행은 그렇다쳐도, 콘서트를 보러가는 지금 이곳은 내가 평생 살아온 한국이었다. 그런데도 공연장을 가는 내내 편안하지가 않았다. 한강진역에서 내려 공연장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나랑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보여야 하는데,  없지?'라고 생각하면서 종종걸음을 쳤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그건 역시나 한낱 기우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공연장은 이미 관객들로   있었다.  자리  옆에 앉은 관객들도 일행없이 혼자  사람 같았다.   관객들 속에서 나는 일순간 편안함을 되찾았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베이스 비트만 규칙적으로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한 30초 정도 지났을까, 무대 옆에서 장기하가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그는 배우 같기도 하고, 라디오 DJ 같기도 하고, 댄서 같기도 하고, 때론 종교단체 교주 같았다. 관객을 완전히 압도하면서 한 명의 댄서와 함께 콘서트를 한편의 훌륭한 연극으로 완성시켰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그래, 그 콘서트는 거기에 있었어!



장기하의 단독공연은 나의 망상병만큼이나 기괴했다 (물론 칭찬이다)



혼자 콘서트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같이  사람의 반응을 신경  필요가 없었고 완전히 공연에만 집중할  있었다. 공연장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관객들과 오히려 일행이  느낌마저 들었다. (장기하의 행위예술에 마치 약속된 듯한 우리들의 단체 행동과 웃음 소리가 소속감을 더욱  증폭시켰겠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공연이 끝나고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공감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그 역시 나의 이기적인 생각인지도 몰랐다. 같은 장소에 앉아 같은 것을 봐도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느끼니까. 공감이나 견해 차이를 나누면서 감상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도 좋지만, 나 혼자만의 즐거운 비밀을 간직하는 것도 한번쯤은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콘서트가 그곳에 있었고, 또 한번 혼자서 뭔가를 해냈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꼈다. 혼자 떠나는 유럽여행도 왠지 더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지는 거기에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곳에 갈 거야. 눈 앞에서 목격될 나의 여행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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