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버린 Auntie
홍콩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말하는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안티!" 처음에는 그 말이 'Anti', 즉 반대나 거부를 의미하는 부정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를 싫어한다는 뜻일까 싶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가정부를 지칭하는 "Auntie"라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낯설고 신선한 호칭이었지만, 그 말속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정부라는 개념은 흔치 않다. 특히 주거 공간에 함께 살며 일하는 가정부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안티'가 일상적이다. 집집마다 가정부를 고용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며, 그들이 없으면 집안 살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여겨질 정도다. 대부분의 안티는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여성들이다.
이들의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두고 타국으로 떠나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돌본다. 매달 받는 월급은 홍콩 달러로 약 4,000달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00만 원 남짓이다. 자신의 땀과 시간을 바쳐도 그 대가가 이 정도뿐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몇 해 전, 필리핀 출신 가정부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집단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홍콩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가정부를 더 데려오겠다"는 선언으로 대응했고, 시위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이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이 받는 대우의 한계를 절감했다.
홍콩에서 가정부를 고용할 때 가장 꺼려지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바로 미혼과 미인이다. 특히 미혼이면서 미모까지 겸비한 여성은 가정부로 채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외모가 빼어난 여성을 가정부로 두는 것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다. 간혹 이런 조건을 넘어 채용되더라도 이들이 오래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낮은 임금 때문인지, 혹은 다른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짧은 기간 내에 자리를 떠난다고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형성된 배경에는 사건 사고의 영향도 있다. 가정부가 집안의 양념이나 물건을 몰래 가지고 나가 팔거나, 심지어는 돈을 훔치는 사례도 들려온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아내가 잠시 출장 중일 때 남편과 가정부 사이에 벌어진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고용주들은 자연스럽게 젊고 매력적인 여성을 기피하게 된 듯하다.
안티들은 주 7일 중 6일을 고용주의 집에서 숙식하며 일하고, 일요일 하루를 휴식일로 보낸다. 그 하루 동안 도시 곳곳에서는 다른 안티들이 모여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자신의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애처롭다.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은 매일 곁에서 웃음을 나누는데, 정작 자신의 아이들과는 화면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현실이 마음을 찡하게 한다.
주말마다 빅토리아 공원 같은 공공장소에서 지역별로 모여 행사를 여는 안티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강한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고향에서 느꼈을 법한 따스함을 타국에서 조금이라도 되찾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육아는 본래 부모의 몫이라고들 한다. 아이를 낳았다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홍콩의 많은 가정은 맞벌이를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만큼,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는 부모가 많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가정부, 즉 안티들의 몫이다.
그들은 단순히 집안일만 돕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숙제를 봐주고, 필요하면 병원에도 함께 간다. 아이가 부모보다 가정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어떤 이들은 안티들이 사실상 '엄마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안티들이 고용주의 가정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크지만, 그들이 받는 대우는 마치 하인과 같을 때가 많다. 노동 시간이 길고, 개인 공간은 협소하며, 고된 노동에도 감사의 말 한마디 듣기 어렵다. 그들을 그저 '일하는 기계'처럼 대하는 태도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안티의 삶을 지켜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가? 그들의 희생 위에 쌓아 올린 우리 삶의 편안함은 과연 정당한가?
길거리에서 아이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안티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의 미소 뒤에 감춰진 수많은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