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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이 불러온 파국

PB의 욕심

전문가를 믿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검증도 필요합니다. 큰돈을 잃은 지인의 이야기를 각색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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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내리는 빗소리가 마치 시간이 흐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서울 평창동의 한 고급 주택 거실, 김 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 한쪽이 조이는 듯한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의사는 분명히 스트레스를 피하라고 했지만, 평생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잃은 충격은 그의 심장을 병들게 했다. 그의 눈에는 북한산 전경이 아니라 10년간의 배신과 거짓이 투영되어 있었다. 그가 평생 쌓아온 재산, 그리고 가족의 자산까지 송두리째 날아간 순간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회장님, 올해도 10% 수익률 달성했습니다. 이 비과세 펀드는 안정적이니 걱정 마세요."


윤 PB의 말을 믿었던 그날들이 이제는 악몽처럼 느껴졌다. 10년간 가족의 자산 500억 원을 맡겼고, 결국 1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상처는 신뢰의 배신이었다. 평생을 바쳐 일궈온 그룹과 재산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충격은 그의 심장을 공격했다. 두 달 전 갑작스러운 흉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의사는 스트레스성 심장병이라고 진단했다.


"아버지, 저는 윤 PB를 믿었어요. 대학 동창이었고, 대형 증권사 임원이었잖아요. 아버지 건강이 이렇게 나빠질 줄 알았으면..."


큰아들의 말에 김 회장은 고개를 떨궜다. 자신뿐만 아니라 친인척 10명이 피해를 입었다. 30년간 피땀 흘려 일군 그룹을 일궜지만, 정작 가족의 재산은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룹 경영에 집중하느라 자산관리는 전문가에게 맡겼던 것이 화근이었다. 윤 PB는 그들의 신뢰를 악용해 허위 서류를 작성하고, 실제 손실을 감추기 위해 가짜 잔고 현황을 보내왔다. 실제 잔고는 있지도 않은 메일 주소로 보내 고객들이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고령의 가족들이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젊은 자녀들이 PB인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이메일 주소와 집 주소까지 허위로 등록해서 증권사의 진짜 잔고 현황이 우리에게 오지 않게 했다니..."


둘째 딸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가족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때 자산가의 위용을 자랑하던 이들의 얼굴에는 이제 상실감과 배신감이 가득했다.


"평창동 주택을 팔아야겠어. 세금이라도 내야지."


김 회장의 말에 가족들은 침묵했다. 10년 전 수십억에 구입한 평창동 고급 주택. 한때는 그들의 자부심이었던 공간이 이제는 세금 납부를 위해 처분해야 할 자산으로 전락했다. 100억 원의 손실과 수십억 원의 수수료 손해, 추가로 납부해야 할 세금까지, 그들의 자산은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법원에서 윤 PB에게 징역 8년, 추징금 5억 원을 선고했대."


막내아들이 스마트폰 뉴스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소식이 가족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5억 원의 추징금은 그들이 입은 피해에 비하면 미미한 금액이었다.


"재판부가 뭐라 했대? '피고인이 가족들의 신뢰를 이용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능적이고 대담한 범행을 지속해 왔고, 피해자들은 손해액이 100억이 넘는다'라고."


김 회장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그의 눈물 같았다. 평생 일궈온 그룹, 그리고 가족의 재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그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평창동 주택 매각은 그들에게 단순한 재산 처분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신분의 하락,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의미했다. 부동산 중개사가 말했듯이 "평창동은 서울의 최상위층이 사는 곳"이었고,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 상실이었다.


평창동 주택 매각으로 세금은 낼 수 있겠지만, 우리 가족의 신뢰는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김 회장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10년간의 거짓은 단순히 금전적 손실을 넘어 가족 간의 신뢰마저 흔들어 놓았다. 약봉지를 만지작거리며 김 회장은 자신의 건강이 이렇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20대부터 시작해 평생을 바쳐 쌓아 온 재산, 밤낮없이 일하며 모은 것들이 한순간에 흔들리는 배신감은 그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었다. 누구를 탓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버지, 윤 PB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손실을 만회하려고 했다'라고. 그게 무슨 변명이 될까요?"


큰아들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묻어났다. 재판부조차 "범행 수법이 매우 불량하다"라고 지적했지만, 윤 PB는 여전히 일부 혐의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치며 다투고 있었다.


빗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김 회장은 천천히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평창동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전경이 빗물에 번져 보였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마치 이 빗방울처럼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한때 단단했던 것들이 이제는 물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내일은 부동산 중개사를 만나러 가야겠다."


김 회장의 말에 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창동 주택의 매각은 그들에게 깊은 상처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신호이기도 했다. 세금을 납부하고, 새 주택으로 옮기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결정이었다.


"우리가 배운 게 있다면, 돈보다 중요한 건 신뢰라는 거야. 앞으로는 내가 직접 자산을 관리할 거야."


김 회장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10년간의 배신과 거짓으로 얼룩진 과거를 뒤로하고, 그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창동 주택을 떠나 새로운 주택으로 이사하는 것은 단순한 주거 이전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장을 여는 의미였다.


창밖의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김 회장의 마음속에는 작은 희망의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지만, 가장 중요한 가족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었다. 그들은 함께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이다. 금전적 손실은 크지만,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어떤 돈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돈은 잃었지만, 우리 가족은 잃지 않았어. 함께 다시 시작하자."


김 회장의 말에 가족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거짓된 수익률과 허위 서류로 가득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그들은 진실만을 마주하며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김 회장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병은 그에게 배신의 고통이 육체적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평생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고통을 마음과 몸이 동시에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면으로 마주할 시간이었다. 평창동을 떠나 이사하는 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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