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명 여성사업가의 의문의 죽음
그녀의 삶을 증언하는 27명의 완전히 엇갈린 평가들
젊은 나이에 막대한 부와 명성을 거머쥔 여성 사업가 도미노코지 기미코. 누군가는 그녀를 천사처럼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또 다른 이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어떤 이는 치밀한 거짓말쟁이로 회상한다. 흥미로운 점은 증언이 축적될수록 그녀의 실체가 선명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흐려진다는 사실. 독자는 저마다 다른 기억의 파편을 이어 붙이며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과연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소설은 마지막까지도 그 질문에 단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책을 덮고 나면,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이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서로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촘촘히 얽혀 있음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물론 그들이 직접 겪은 경험 자체는 모두 사실일 것이다. 다만 그녀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시선은 언제나 기억하는 사람의 욕망과 감정에 의해 변형된다. 결국 이 작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의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
타인의 기억 속에서 수십 개의 얼굴로 분열된다.
덕분에 독자는 책장을 덮은 뒤에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왜 그녀는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
그녀의 아이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인가
그녀는 계산적인 거짓말쟁이였는가 혹은 어쩔 수 없이 시대를 이용한 생존자였는가
이처럼 풍부한 해석의 여백이야말로 작품을 오래 살아남게 만드는 힘이다.
“참 알수록 양파 같은 사람이네요.”
예전에 회사 동료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오래도록 인상에 남았다. 어쩌면 꽤 기분 좋은 평가이기도 했다. 다양한 면을 입체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나 여러 겹의 외피를 두른 채 살아간다. 인격은 하나인 듯 보이지만, 상황과 관계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결을 드러낸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의 나, 친구와 있을 때의 나, 직장에서 동료를 대하는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완전히 동일한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타인이 기억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부분적일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첫인상만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누군가는 질투와 애정, 경쟁과 패배의 감정 속에서 타인을 왜곡된 시선으로 기억한다.
소설 속 27명의 증인들 역시 마찬가지. 누군가는 질투 때문에 과장하고,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미화하며,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책임을 감추기 위해 기억을 비틀어 놓았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증언도 객관적 사실 그 자체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심리 스릴러와 미스터리의 외피를 두르고 출발하지만, 읽을수록 오히려 인간의 기억과 인식 구조를 탐구하는 심리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인간을 어떤 근거로 평가하고 재단하는가.
그리고 그 판단은 과연 그 사람의 본질에 얼마나 가까운가.
가끔 뉴스에서 흉악범죄가 벌어진 뒤 피의자의 주변인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어요. 조용하고 친절한 이웃이었죠.”
너무도 익숙한 장면이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묘한 아이러니가 남는다. 과연 그들은 그 사람을 얼마나 깊이 알았기에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얼마나 가까운 관계였기에 마치 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한 것처럼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한 인물을 이해한다는 일은 본질적으로 입체적인 시선을 요구한다. 관계의 층위, 맥락의 차이, 감정의 거리까지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쉽게 타인을 단면으로만 평가해 버린다. 앞서 말한 저런 인터뷰 장면은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자극적인 서사와 즉각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미디어의 속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한 인간을 몇 마디 인상과 짧은 관계의 기억으로 환원해 버리는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위험하다.
우리는 누구도 타인을 온전히 알 수 없다. 보는 위치가 다르고, 관계의 거리도 다르며, 기억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빌려 인간 심리를 해부하는 다큐멘터리처럼 읽히는 이야기.
타인을 이해한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을 조용히 비웃는 작품이라고 할까.
기억과 욕망이 어떻게 교차하며 사실을 비틀어 놓는지, 그 과정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서사 방식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