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사운드캣 이준동 국장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는 1989년 명지대에서 열린 ‘제2회 백마가요제’를 계기로 만들어진 그룹이다. 여러 악기의 합주가 아닌, 우리에게 친숙한 통기타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계곡의 물소리와 빗소리 등 자연의 효과음이 담겨 화제가 된 여행스케치 1집 앨범의 타이틀 곡 ‘별이 진다네’는 대학가와 방송가에서 신선한 메시지를 던지며 등장했다.
'남녀 혼성 포크팀'으로 다양하면서도 소박한 색깔의 가사와 멜로디를 노래하는 것으로 그 입지를 굳혔다. 팀의 리더로 작사, 작곡과 보컬을 맡은 '조병석'과 여행스케치의 대표적인 보컬 '남준봉'을 중심으로 멤버들이 뭉쳐 크고 작은 라이브 무대에서 활약하며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했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조병석과 남준봉 듀엣으로 ‘여행스케치’의 명성을 이어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물원과 함께 하는 ‘동물원에 여행 가자’라는 콘서트로 전국을 순회하며 많은 팬들의 감성을 사로잡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혼성 포크 그룹 ‘여행스케치’의 중심에서 30여 년간 그룹을 이끌어 온 남중봉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행스케치의 지난 이야기, 그리고 남준봉의 음악과 함께 한 인생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봤다.
[남준봉, 여행스케치]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여행스케치와 함께 30년을 함께 해온 여행스케치의 보컬 남준봉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인사를 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너무나 기쁜 마음입니다.
오랫동안 저와 저희 여행스케치를 아끼고 사랑해주신 여러분 덕분에 여행스케치가 내년이면 3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순간에 저희 소개와 지난 이야기를 들려 드릴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인터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저희 여행스케치의 최근 근황을 소개드리면서 인터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여러분께서 너무나 사랑해주시는 ‘동물원’이라는 그룹과 함께 ‘동물원에 여행 가자’라는 이름으로 수년 전부터 전국에 계신 많은 분들과 함께 호흡하고 즐기는 콘서트를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이 공연을 통해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 지방에 계신 너무나 많은 분들께서 저희를 반겨주시고 아직까지 저희 노래를 아끼고 사랑해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세대를 똑같이 겪었던 분들이 이제는 결혼해서 아이들을 동반해 함께 해주시는 것을 보고 감회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저희도 대중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다 보면 예전 저희 여행스케치가 처음 음악을 하던 그때가 많이 생각난다는 것도 저희에게는 행복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초는 말 그대로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기였습니다. 유명한 대중 가수들은 100만 장, 200만 장 앨범 판매 기록을 세우던 시절이었죠. 저희 여행스케치가 아이돌 그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1집 앨범이 100만 장을 기록할 정도였으니 그 시대는 정말 뮤지션과 대중들이 함께 성장해 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조금씩 세월이 흘러가면서 당시 음악을 즐기던 팬분들은 이제 가족을 꾸리고 생활 전선에서 사활을 걸고 살아가는 경제산업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문화 활동을 즐길 여유가 없어지게 되면서 아티스트와 팬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런 상황이지만 저희 아티스트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공연을 아직까지 함께 해주시는 팬 분들이 바로 저희가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뒤를 이어 갈 수 있는 친구들이 성장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이 아쉬움으로 많이 남습니다. 우리가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의 힘이 되어주었던 선배들이 내밀어준 손길이 지금의 후배들에게까지 전달되지 않는 것 역시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음악으로 향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조차 잡을 기회가 없는 요즘 친구들은 유튜브 등 온라인이나 SNS에서 그 해결 방안을 찾으려 합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저는 실용음악과 학생들에게 음악을 하더라도 꼭 안전장치는 마련해 놓고 음악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현재 실용음악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교수의 길을 가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이뉴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외 진정한 뮤지션이 되고자 하는 친구들에게는 뮤지션으로 성공을 못했을 경우에 대비한 대책을 꼭 마련해 놓고 꿈을 쫓아가라고 강조합니다. 학생들에게 이런 이갸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또한 그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조언도 아끼지 않습니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예술가의 삶을 꿈꾸는 학생들은 쫓고 있는 꿈과 현실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본인의 실력을 냉철히 파악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 가장 올바른 길을 함께 찾아주는 것 역시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조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한국의 음악 시장은 그 반대입니다. 한국에서 1등을 하면 세계 1등이 되는 시대입니다. BTS가 그것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랜 연습 기간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표현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탄탄한 실력을 갖췄습니다.
현시대 연예인을 꿈꾸는 수많은 예비 음악인들이 동경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표본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더불어 그들이 표현해내는 음악적인 감성은 때로는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예전 다른 가수들처럼 R&B나 힙합을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라 그 장르에 딱 맞는 음성과 실력을 갖췄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BTS가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상황을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하는 대중도 상당히 많습니다. BTS를 포함한 10대 팬을 확보한 아이돌 그룹 말고는 서울 시내의 무대에 선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우리 시대의 가수들은 점점 설 수 있는 무대가 좁아져가고 있습니다.
물론 전국에는 수많은 지역 문화예술회관과 예술의 전당이 있습니다. 이런 지역 무대를 활성화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그 역시 저희 의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지역 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은 공무원이 관리하는 정부 산하 기관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연장을 관리하는 인원이나 공연에 직접 투입되는 조명, 음향 엔지니어 등 기술자들도 공무원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공무원들은 자기 시간을 내어 공연 리허설을 해야 하고 공연에 투입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공연에 보수 없이 투입되는 인력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양상은 그들이 공연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게 되고 갖추고 있는 시설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공연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자기의 시간을 투자하고 입장료를 구입해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은 만족스럽지 못한 공연에 실망하게 되고 당연히 다시 공연장을 찾는 횟수는 줄어들게 되죠.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은 지방 문화예술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역시 그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공무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열정을 쏟아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방안을 마련한다면 더 고급스럽고 멋진 공연을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질 것이고 지방의 문화예술도 더욱 활성화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우리 뮤지션들도 많은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여행스케치가 동물원과 힘을 합쳐 ‘동물원에 여행 가자’를 만들었던 것처럼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안한다면 행사장을 운영하는 공무원들에게도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예를 들면 최백호 선생님은 젊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1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관객층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최백호 선생님은 1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팬 층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고, 젊은 뮤지션들에게는 최백호라는 큰 힘이 뒤에서 받쳐주며 더 큰 무대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게 됩니다. 최백호 선배님의 이런 시스템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가장 이상적인 협업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정말 실력을 갖춘 젊은 뮤지션들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틀이 되기 때문입니다. 뮤지션을 꿈꾸는 학생들이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마저도 안되면 좋지 못한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는 학생 자신의 선택이 아닌 이런 학생을 이용하려 하는 일부 몰지각한 영세 기획사 때문입니다. 이들은 연예인을 동경하는 학생들을 속여 금전적인 이익을 만들 생각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학생들의 순수한 꿈은 중요치 않습니다.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가 먼저 자신이 뮤지션의 꿈을 이루기 충분한 재능이 있는지,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큰 노력을 하지 않고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거나 어느 회사에 소고만 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먼저 버려야 진정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백호 선배님처럼 진정한 실력을 갖춘 뮤지션들이 안전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틀을 우리 선배 가수들이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실력 있는 가수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며 음악에만 몰두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음악을 후배 가수들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져야 대한민국 음악은 그 정체성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한국의 음악 시장에 부정적이거나 심하게 말하면 포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누렸던 ‘한류’라는 특권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을 가진 진정한 뮤지션들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들은 연습생 생활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대에서 어떻게 웃고 어떻게 손짓하고 어떻게 반응하라는 교육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그런 교육조차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은 음악이었고 그들이 해야 하는 것 역시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음악으로 자신을 인정받았습니다. TV에 나와 밥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여행지에서 셀프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아도 됐습니다. 뮤지션은 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을 잘해야 합니다. 운전면허 없는 자동차 정비사는 말 그대로 사기입니다.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하고 인정을 받고 싶으면 그에 합당한 노력과 경험, 그리고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렇게 가다듬어진 뮤지션들이 무대에 서면 대한민국 음악 콘텐츠의 질도 높아질 것입니다.
음악은 예술이며 예술은 그 예술가의 인생이 녹아들어야 합니다. 우리 여행스케치조차 언제나 젊은 포크 그룹일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행스케치가 처음 시작했던 그때 우리 역시 그랬습니다.
어느 한 여중생이 그때 우리의 팬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학생은 중학교를 졸업해 고등학생이 되었고 우리의 공연을 즐기며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여행스케치는 끊임없이 공연을 하는 동안 그 학생은 애인이 생겨 결혼을 하고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죠.
나중에 그 학생이 남평과 아이와 함께 우리 공연장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여행스케치에 고스란히 묻어있다는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너무나 큰 힘이자 축복이었습니다. 여행 스케치는 ‘가수이기 전에 가족입니다’. 30년을 맞이하는 지금 마음가짐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다가올 30주년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동네 아주머니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성악을 하기로 마음먹고 고등학교 때는 아카펠라 중창단을 만들었었죠. 대학에 진학해 교내 가요제에 참가하면서 이를 계기로 여행스케치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별이 진다네’라는 명곡을 선사해줬던 조병석 형님, 그리고 우리 여행스케치 멤버들과 함께 웃고 웃으며 음악으로 하나 되어 살아왔던 지난 세월.
‘여행스케치’란 한 단어는 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되돌아볼 수 있는 제 인생을 대신하는 단어입니다. 남녀 혼성그룹으로 활동하다가 중간에 한계가 왔고 멤버 모두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행스케치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놓으면 언제 다시 잡을 수 있을지 모르는 두려움, 그리고 여행스케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만 있었습니다.
가수의 입을 통해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그 노래는 대중의 노래가 됩니다. 우리가 늘 먹던 한식 중에서도 유난히 맛있는 밥. 그런 평범하지만 맛있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다가오는 2019년은 수 년째 준비 중이던 10번째 정규앨범의 발매를 꼭 이루려 합니다.
주변에서는 ‘앨범 내면 뭐하냐’라고 현시대의 음악 시장에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계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께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대한민국 음악 시장은 진정한 ‘그들만의 리그’가 될 것입니다. 우리 뮤지션들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했고 우리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려왔습니다. 세월의 변화에 지쳐 포기하지 말고 우리가 지난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왔듯이 힘을 뭉쳐 다시 관객들에게 우리의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대중들이 우리를 기억해주길 바라지 말고 우리가 대중들의 기억 속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에 우리 시대를 함께 해온 많은 가수분들이 동참해 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가오는 2019년은 이 세상 모든 분들이 지금까지 소망해오던 꿈이 하나하나 결실을 맺는 희망으로 가득 찬 한 해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