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MAN을 그리며
고등학생 시절, 무척 절친했던 친구 J가 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당시의 많은 고민을 함께 하고,
대중예술의 교류... 이를테면 노래방도 참 자주 갔었다.
부산대 근처의 노래방은 노래 부르다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무제한으로 서비스 시간을 넣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었고,
실제로도 다른 손님만 없으면 계속해서 시간을 넣어줬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이 친구와 함께한 잊을 수 없는 흑역사가 하나 있다.
고2 수학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수학여행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장기자랑 시간일 것이다.
우리 반에서는 이런 자리에 나갈만한 사람이라곤 K, 딱 한 명 있었다.
K는 춤을 즐겨 췄고, 주로 웨이브와 이어지는
각기 ㄴ-_-ㄱ 기술을 구사한다.
대망의 수학여행 당일....!
흥을 돋우는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는데,
우리 반의 차례가 오기 바로 직전 엄청난 무대가 모두를 열광시켰다.
그 레전드 무대는 바로 최근에 가수 앨범까지 냈다는 어느 복학생 형이 부른 조용필의 '모나리자'였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격차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들은 그냥 일반인 학생이지 않는가.
무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성량부터가
다음 장기자랑 차례인 우리 반을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댄서 K가 걱정된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우리 반 차례네.
와, 저 형 진짜 잘하긴 하지만.... 우리 반도 꿇리지 않잖아.
파이팅이야!!"
".......... 하.........."
나의 응원에도 이미 주눅 들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K.
장기자랑이라고 특별히 더 준비한 것도 없이
평소 하던 대로 할 생각이었는데, 이번엔 영 자신감이 안 생긴다고 한다.
".... 영 자신이 없어?
음, 그럼 네가 춤을 출 때
내가 J랑 (노래방 같이 다니던 친구) 같이 뒤에서 노래라도 불러줄까?"
친구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모한 선택을 난 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그렇게 모나리자에 대항하여 함께 무대를 하기로 순식간에 결정하고,
이윽고 우리 반 차례가 되었을 때 '에라~모르겠다' 하고, 무대 앞으로 뛰쳐나갔다.
평소 장기자랑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나와 내 친구가 무대에 오르니, 반 친구들마저 당황하여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회자 : "네~이번엔 듀엣인가 보군요!!
무슨 노래를 부르실 건가요?"
나 :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하겠습니다.
친구와 노래방 18번이었던 신해철 보컬의 대학가요제 대상곡,
그대에게의 비장한 반주가 흘러나오는데.....
웬일인지 춤을 추기로 했던 친구가 앉은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난 댄서 K에게 빨리 앞으로 튀어나오라고 큰 손짓으로 불렀다.
친구는 요지부동으로 나올 생각을 않았고 관중 호응을 유도한다고 착각한 우리 반은
'오오~~' 하며, 호응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친구를 도와주러 나갔던 우리들은 졸지에 메인이 되었고
당황하여 제대로 노래도 부르지 못한 채,
1절만 부르고 끊어달라고 요청해서 겨우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600명 가까운 전교생 앞에서 느껴지는 수치심에 몸이 떨려왔고,
이후 댄서 K는 사과하며 말했다.
"..... 정말 미안하다.
그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출 자신이.....
도저히 안 생기더라."
시간이 한참 지나서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었다.
그 이후로 한참 시간이 지나 우리들은 어른이 되었고,
친구와 즐겨 부르던 넥스트의 음악도 점점 뜸하게 들을 무렵
신해철이 사망했다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된다.
그러고도 한참 더 시간이 지난 후.......
즐겨보고 있던 놀면 뭐 하니에서 고 신해철의 미공개곡을 소개해주며
이승환, 하현우가 의기투합하여 유재석의 드럼 연주와 함께 완성된 곡을 선 보였을 때
옛 추억과 함께 큰 전율을 느꼈다.
STARMAN은 신해철 기존 앨범에 있던 '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part에 해당되는 미공개곡이다.
내겐 이제 아버지마저 떠나고 계시지 않는데 이 곡을 들으니
내 마음이 그대로 담긴듯해 가슴을 울린다.
아버지와 신해철 모두 내겐 히어로이며
그리운 존재 'STARMAN'이었다.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