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시대, 인간의 일』, 구본권
*유튜브 해설: https://www.youtube.com/watch?v=j22ERl1qQ8I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수많은 시도들 중에 ‘호모 라보란스’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쉽게 말해 ‘노동하는 인간’을 뜻하는 것으로, 즉 노동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자 삶의 원동력이며,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이룬다는 이야기이죠. 예컨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는 신들의 분노를 산 대가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에 처했으며, 또한 성경 속 최초의 인간으로 등장하는 아담은 신의 명령을 어긴 대가로 평생 노동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됩니다(“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 3:17). 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의 사상가 묵자는 스스로 일하지 않는 인간을 비판하며 노동이야말로 삶의 근원이라 이야기한 바 있죠(“자기 노동에 의지하는 자는 살고 자기 노동에 의지하지 않는 자는 살 수 없다”). 이처럼 노동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실존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사유되어 왔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실존적 지위는 노동하는 존재라는 이야기이죠. 하지만 인간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오늘날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지적했던 대로 오늘날 인간의 노동 중 상당 부분이 점차 기계로 대체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로서의 실존을 로봇에게 완전히 빼앗기고 말까요? 최첨단 기술을 위시한 로봇 시대 속에서 오직 사람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인간적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오늘의 책, 구본권의 『로봇시대, 인간의 일』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세계 각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대략 125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중 약 90%의 사고가 운전자의 단순 실수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무척이나 허무하고 안타까운 희생이 아닐 수 없죠. 그런 의미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는 다가올 미래 사회에 훌륭한 대안이 될 지도 모릅니다. 맥킨지가 발표한 보고서(2015년)에 따르면 자율주행차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미국 내 교통사고는 90%가 감소할 것이며 해마다 약 230조의 경제적 효과를 얻을 것이라 예측된 바 있죠. 또한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2015년 3월 미국 새너제이 기술 콘퍼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앞으로 사람이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은 불법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율주행차는 때때로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 운전자와는 달리 탁월한 안전성과 경제적 효과가 예상되는 첨단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난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예컨대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던 중에 앞서 달리던 트럭의 적재물이 쏟아진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만약 자율주행차가 이를 감지하여 반대편 차선으로 방향을 튼다면 자율주행차는 위험을 피하는 대신 무고한 사람이 죽을 것이고, 또한 차선을 변경하지 않는다면 자율주행차에 탑승한 사람이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과연 이때 자율주행차는 어떤 선택을 하도록 설계되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자율주행차의 판단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율주행차가 트럭을 피하건 피하지 않건 그것은 모두 인간이 입력한 알고리즘의 결과일 뿐이라는 이야기이죠. 다시 말해 오직 인간만이 윤리적 판단의 주체이며 자율주행차는 그저 인간이 입력한 알고리즘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비록 자율주행차에게 운전을 맡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윤리적 판단마저 위임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만약 미래 사회가 오직 알고리즘에 따른 자동화 세계라 할 지라도 ‘어떤 알고리즘이 옳은 것이냐’ 하는 윤리적 판단만큼은 여전히 인간의 역할일 것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을 탁월하게 배합한 그림으로 당대 까다로운 유럽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렘브란트는 당시 미술계의 엄격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화풍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죠. 그런데 2016년 4월, 렘브란트의 화풍과 쏙 빼닮은 그림 한 점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림은 마치 렘브란트가 그렸다고 해도 믿을 만큼 특유의 명암 구도와 질감 표현까지 렘브란트의 화풍과 닮아 있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논란의 그림을 그린 것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었습니다.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이름의 이 인공지능은 렘브란트의 그림 346점을 분석한 후 렘브란트 화풍의 그림을 3D 프린터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죠. 그렇다면 과연 ‘넥스트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당당히 인정 받을 수 있을까요? 또한 미래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예술 활동 마저 대체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저자 구본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인공지능은 삶의 애환이 없으며, 충동과 방황을 겪지 않고, 욕망과 좌절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은 삶의 흔적이 담기지 않은 기술적 모방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죠. 이에 반해 인간은 요동치는 삶의 굴곡 속에서 생생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서사적 존재입니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그 서사 속에서 창조되는 것이며, 또한 그들의 서사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수록 불멸의 가치를 지니기 마련이죠. 그러므로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서사를 간직한 인간의 예술을 대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일본 국립산업기술종합연구소에서 개발한 로봇 파로는 심리 치료 목적으로 만들어진 교감형 로봇입니다. 예컨대 파로는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고개를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기도 하고, 혹은 눈을 깜빡이거나 애교를 부리기도 하죠. 파로를 개발한 연구진에 따르면 소아 정신질환을 앓고 난 후 입을 열지 않던 한 아이가 파로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시 말문을 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적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감형 로봇의 임상 효과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 그렇다면 미래의 로봇들은 정말 인간과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을까요? 나아가 인간은 기꺼이 로봇과 사랑을 나누기를 욕망하게 될까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제쳐두고 하필 로봇과의 교감을 원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배경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쾌함을 가급적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보통의 대인관계라면 타인은 나에게 때로는 기쁨을 줄 수도, 혹은 슬픔도 줄 수도 있는 자유로운 주체이지만 로봇은 그렇지 않습니다. 로봇은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공감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인간을 만족시키는 것이 존재 목적입니다. 즉 로봇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이해 받는 경험이라 할 수 있죠.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로봇은 인간에게 상처를 주거나 인간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로봇과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상실과 좌절도 경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좌절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는 진정한 소통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인 이유는 나를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가진 타인이 기꺼이 나를 사랑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비록 로봇과 달리 때때로 우리에게 우울과 좌절, 불안과 고통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그러한 가능성으로부터 인간은 풍성한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관계에서 중요한 건 자유롭고 충동적인 감정의 교환이며 따라서 로봇은 감성적 주체라는 인간의 지위를 대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로써 오늘의 책 『로봇시대, 인간의 일』을 아주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근거로 동물과 구별되어 왔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능에만 충실하고 충동적인 동물과는 달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유 주체로서 특별한 지위를 주장해왔던 거죠.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판단 기능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훨씬 탁월한 사고 기능을 수행하고 있죠. 그렇다면 이처럼 더 이상 사고와 판단 기능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주장할 수 없게 된 인간은 무엇을 근거로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존재임을 입증할 수 있을까요? 바로 이 대목에서 동물적 본능이 재조명됩니다. 입력된 알고리즘에 따라 규칙적으로 작동해야만 하는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은 필요에 따라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본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이죠. 물론 그러한 인간의 본능은 때로는 겉잡을 수 없이 폭발하여 끔찍한 일을 드리우기도 합니다. 이성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광기가 인간의 마음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은 자신의 본능을 절제하고 경계할 줄 아는 윤리적 주체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감정과 윤리 사이에서 분투를 벌이며 한 편의 삶이라는 서사를 그려낼 수 있는 거죠. 아무쪼록 감정과 윤리, 서사라는 인간의 특질을 마음껏 발휘하여 결코 로봇으로 대체될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대해 나가길 응원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재미있으셨다면, 심심하실 때 유튜브도 가끔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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