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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밤이 Jan 26. 2023

기혼주의의 미혼자 고독하구만

30대 중반의 미혼, 나머지 숙제반 같은 기분

 30대 중반, 나의 오랜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거나 비혼을 선언했다. 비혼 선언을 한 두 명의 친구를 제외하면 10년 이상 진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들은 모두 결혼과 육아로 새로운 생활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미혼인 나는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적어지고 함께하고 싶은 것들을 행하기 어려워졌다. 나는 주로 일과 관련된 진로문제와 사회적 관계를 고민하고 있으며 친구들과는 다양한 추억을 쌓고 싶은 욕구와 시간이 있는 반면 결혼한 친구들은 주거문제와 임신, 육아가 주된 고민이며 자신의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함께 공유하던 공통 관심사는 적어지고 마음만 맞으면 떠났던 여행, 퇴근 후 갑작스러운 모임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넓고 많은 관계보다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는 편이라 친구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10년 이상된 오래된 친구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중 80%는 결혼을 했고 나머지 20% 중 10%는 비혼 주의자를 선언했으며 나머지 10%는 애인이나 결혼 상대가 있기에 친한 친구들 사이 30대 중반 결혼을 바라는 미혼 여성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런 변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 친구들이 결혼 생활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개인의 삶만을 중요시했다면 오히려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내 친구들 대부분 가정을 중시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기에 친구로서 가정생활이 평온하길 응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는데 친구들은 달라진 모습으로 저만치 앞서가고 있음에 내 삶의 옆자락에 함께 걸어가는 친구들이 없어지는 아쉬움과 그들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엮으며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할 사람이 있음에 나만 혼자인 것 같은 고독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혼한 친구들 대부분 혼자일 때가 자유롭다는 말로 위로를 해 주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함께 할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들도 모르게 풍기는 이 안도감은 나에게 '어딘가에 있을 내 편'을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더욱 체감하게 만든다. 결혼이라는 중대한 인생과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기에 이를 해결한 사람들과 곁에서 함께하는 것 자체가 비혼주의자가 아닌 나에게 친구들의 공통 관심사에서 동떨어진 느낌과 너무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주는 요소가 된다.


 한 때 주변에 비혼을 표명하기도 했다. 나의 삶에선 일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일에 대한 역할과 책임은 프리랜서로 일하던 나의 일급(M/D)이 올라갈수록 더욱 커졌기에 프로젝트마다 달라지는 일의 범위와, 넓어진 역할과 책임을 감내해 내는 것만 해도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거기에 매 주말마다 동호회 활동을 하다 보니 삶이 권태로울 시간도 없었다. 일과 취미를 잘하기 위해서 연애에 대한 관심은 적어졌고 무엇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게 되면 내가 이렇게 중요시 여기는 일과 취미들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과 취미가 주는 의미는 차차 적어지고 공허한 감정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계에서 제일 오래된 최초의 신화인 영웅 길가메시의 삶과 모험에 관한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도 역시 의미 있는 일, 친구들과의 즐거움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사랑하라고 얘기한다. 사랑을 하지 않는 삶은 3가지의 구성요소 중 한 축이 빠진 것이기에 이런 공허함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길가메시는 지구 끝 어딘가에 우투나피슈팀이라는 불사신이 산다는 얘기를 듣고 그분을 찾아가서 물어봐요. "어떻게 불사신이 됐습니까" 그러자 불사신이 말하길, 자신이 젊었을 때 신들이 지구인한테 화가 나서 대홍수가 나게 했는데, 자기가 모든 동물 한 쌍씩을 배에다 탑승시켜서 살려냈기 때문에 신들이 불사(不死)의 삶을 선물했다고 해요. 이게 당연히 나중에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스토리가 되겠죠. 길가메시가 부탁을 해요. "나도 죽기 싫다. 약을 달라" 했더니 친절하게 주었어요. 길가메시는 목욕을 해요. 목욕을 하는 동안에 뱀이 나타나서 그 약을 가져갑니다. 약이 없어진 길가메시가 다시 약을 달라고 부탁을 해요. 그랬더니 우투나피슈팀이 "안 된다"고 해요. 길가메시가 "나는 어떻게 살라고" 하며 엉엉 울자, 우투나피슈팀이 말합니다. "네가 그렇게 울고불고한다고 안 죽는 것 아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했더니 이럽니다. "별것 없다. 다시 네 고향에 가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친구들하고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여인하고 사랑을 나눠라."


 물론 나와 비슷한 속도로 가고 있는 또래의 다른 미혼인들과 만나며 이런 불안감을 조금 해소할 순 있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형성하기까지 투입해야 하는 에너지가 과거에 비해 부족해진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나의 성향, 특성, 가족관계, 성장환경 등 나에 대해 알고 있어야 서두없이 깊은 이야기가 가능한데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하는지, 이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되는 수준인 것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고독감과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사적 관계들을 만드는 것은 소모적이라 느껴졌으며 실질적인 해결방법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한 이들에게 혼인의 삶은 자유로움으로 치부되어 혼자라는 불암감과 외로움을 공감받기 어렵다. 차라리 비혼주의자였다면 괜찮았을까? 어디에서도 공감을 얻을만한 대화를 하기에 어려운 것이 비혼 주의자가 아닌 혼인이다. 기혼을 꿈꾸는 비혼인의 삶은 자유로움으로 치장된 고독일 뿐이다.


혼자 사는 삶이 의미 있듯이 같이 사는 삶 또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경험하지 않았기에 경험하고 싶은 것이 결혼인 것 같다. 인생 혼자 왔다 혼자 간다 하지만 혼자 가는 그 시간까지 혼자일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비혼 주의자가 아닌 미혼인으로 괜찮은 척 하지만 그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 채 친구들이 다 떠난 텅 빈 교실에서 나머지 숙제를 하고 있는 듯한 고독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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