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 박석길 대표 인터뷰
Hey Listen은 성수동 체인지메이커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헤이그라운드팀의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Hey Listen 인터뷰는 팟캐스트와 그를 요약한 텍스트로 발행됩니다. 생생한 목소리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분들은 글 아래의 링크를 누르시면 풀버전 청취가 가능합니다.
인류학자 김현경이 쓴 책 [사람 장소 환대]는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대한 저자의 해석으로 시작합니다. 소설의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고 부를 얻는 거래를 하게 되는데요. 슐레밀은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가는 곳마다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도 실패하게 되고요.
저자는 이 소설에서의 그림자가, 당시에 많은 이야기에 비유로 쓰인 '영혼'과는 다른 의미라고 말합니다. 영혼을 파는 것과는 다르게, 그림자를 파는 것은 외적이고 현세적인 것이니까요. 그림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이지, 영혼처럼 구원을 위한 조건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일종의 낙인으로 작용하여, 남들의 시선을 끌고 이어서 외면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저자는 이 소설을 쓴 샤미소가 망명인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번 주 인터뷰에서 석길님은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여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본인은 운 좋게 영국인으로 태어나 종이 한 장만 보여주면 이 나라 저 나라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탈북민들은 그게 없어서 매번 국경을 넘을 때마다 위험을 무릎쓰고, 또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너무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고 해요. 어쩌면 여권도 그림자의 수많은 이름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번 주 Hey Listen에서는 북한 사람들의 자유를 꿈꾸는 LiNK의 박석길님을 만났습니다.
북한 친구가 가장 많은 영국인 LiNK 박석길님
LiNK의 한국 지부장을 맡고 계십니다. LiNK는 어떤 팀입니까?
Liberty in North Korea를 줄여서 LiNK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팀이죠. 무브먼트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겠네요. 2004년에 탈북 난민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그 이야기들을 접한 재미 교포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어요. 한국 지부는 2012년에 생겼습니다.
LiNK 한국지부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크게 세가지인데요. 탈북에 성공하신 분들을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오게 도와주는 일, 그 분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게 돕는 일,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일입니다.
일단 북한을 빠져 나와도 한국까지 오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고요?
중국으로 넘어오면, 그 때부터 꽤 오랜 기간 5,000km에 달하는 여정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저희가 돕는 모든 분들이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지는 못 해요. 이 과정에서 잘 안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일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물론 당사자나 당사자의 가족들의 슬픔에 비할 수는 없지만요.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게 돕는 과정에서는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나요?
정부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한다면, 저희는 사회적인 부분이나 심리적인 부분을 지원하려고 해요. 함께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이벤트들도 많이 있고요. 그 중에서도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봉사활동 가는 것을 가급적 빠르게 진행하는데요. 스스로가 이 사회에서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는 시민이다 라는 건강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목소리로 듣기) 북한을 다루는 많은 이야기들이 안보나 정치라는 관점 안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키워드로 보면 김정은이나 핵이겠죠. 그러데 북한에는 2,500만명이라는,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안보나 정치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북한의 자유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을 모아나가는 것이 저희의 미션을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시죠? ‘윗싸이더'라는 채널 이름이 아주 인싸스럽습니다. (웃음)
네, 제가 지었다고 하면 좋겠지만. (웃음) 팀원들이 브레인스토밍해서 지었습니다. 북에서 온 친구들의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 저 사람들과 친구할 수 있겠다'라는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마당세대라는 다큐도 흥미롭게 봤습니다. 북한의 변화가 특히 흥미로웠어요.
(목소리로 듣기) 북에서 온 친구들이 지금의 북한을 이해하려면 북한의 세대차를 이해하는게 아주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북한의 밀레니얼들은 어려서부터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습니다. 배급만으로는 먹고 살기 절대적으로 부족하죠. 그러다보니 스스로 어려서부터 시장 안에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세대입니다. ‘장마당'이라는 말이 ‘시장’을 의미하는 북한말이에요. 장마당세대는 그들의 부모세대와 완전히 다릅니다. 중국을 통해 한국 드라마나 영화도 어려서부터 접해온 세대이기도 해요.
영국인이십니다. 아버지가 일찍부터 영국 맨체스터에 자리 잡으셨다고요?
네, 맨체스터에 정착한 최초의 한국인일거예요. 1968년에 영국으로 가셨는데요. 당시 한국대사관에 물으니 영국에 있는 한국사람들이 120-130명 정도 될 거라고 했대요. 그 중 대부분은 런던이나 런던 주변에 있었고요.
아버지는 왜 하필 맨체스터로 가셨을까요?
중학교 때 교과서에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맨체스터 사진이 있었대요. 그저 그 사진이 기억나서 런던에서 히치하이킹으로 맨체스터까지 가셨대요. (웃음) 그 때 마지막 차에서 내린 곳 근처에서 지금까지 살고 계시죠.
영어 이름을 따로 두지 않고 ‘박석길'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아버지께서 남들 하는 대로 하시는 스타일은 아니신 것 같아요. (웃음)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생각 못해 봤는데. (웃음)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냥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다' 정도로만 대답하곤 했는데요. 나를 완전히 같은 영국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느낌은 늘 받았어요. 나는 정체성이 조금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북한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갖게 됐나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남북한 관련된 기사나 뉴스는 꼭 보게 하셨어요. 숙제처럼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죠. 북한이라는 나라는 제3국에서 볼 때 더 신기한 존재예요. 남한에서는 워낙 많이 다루기 때문에 오히려 피로감이 큰 것 같아요. 북한만큼 극단적인 사례가 또 없잖아요.
그런 관심으로 시작해 LiNK에서 일하신지도 꽤 오래 되셨습니다.
처음엔 관심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사명감과 열정으로 계속하는 것 같아요. 제가 영국에 태어난 것은 제가 뭘 잘해서가 아니잖아요. 그저 운이 좋았던 거죠. 반대로 북한에서 태어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거기서 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덧 8년이 됐네요.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까?
(목소리로 듣기) 일 시작하고 처음으로 동남아에서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중인 탈북민들을 만나러 갔던 때예요. 인터뷰도 하고 함께 놀기도 했어요. 춤도 같이 췄고요. 그러고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헤어져 짐을 싸는데, 문득 여권에 눈이 갔어요. 이 종이 하나로 저는 여행처럼 나라들을 오가는데, 누군가는 계속해서 조사 받고 불안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겨우 겨우 다른 나라에 들어설 수 있는 거잖아요. 저들도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인데. 너무 말이 안 된다고 느꼈어요. 이건 정말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입니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북에서 온 분들에 대해 언론이나 뉴스에서는 부정적인 기사들을 크게 다루는 것 같아요. 실제로 만나보면 한국사회가 잘 받아준 것이 너무나 고맙고, 지금의 삶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이런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더 많은 분들이 알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Interview 헤이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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