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노을

by 감 있는

외할머니가 소천하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우리는 영상통화로 웃으며 통화했다. 평상시와 다르지 않은 편안한 모습이었다. ‘건강해라, 행복해라’라는 말이 세상에 전부라는 듯 외할머니의 반복적인 말씀은 유언이 되었다. 최근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명은 없지만 어지럽고 밤새 경련으로 몸이 떨린다고 하셨다. 석 달 전, 외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갔었다. 5분도 안 되는 면회였지만 외할머니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외할머니는 평소 말을 아끼시는 분이셔서 ‘힘들다, 아프다’라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으셨다. 눈이 밝고, 기억력도 좋으시고, 병치레도 크게 안 하셔서 외할머니는 정정하다고, 금방 나을 거라고 줄곧 생각했다.


향년 98세. 100세까지 사시기를 바란 건 손녀딸의 바람이었을까. 100세를 채우면 불멸의 삶처럼 영원할 거라고 믿었을까. 외할머니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셨다는 말.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숨이 멈추었다는 말. 믿기지 않던, 믿고 싶지 않았던 말. 질기고 강한 무게의 추가 툭 하고 끊어진 느낌이었다. 철렁했다. 추가 심연을 알 수 없는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떨어지는 추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두드렸다.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던 날, 처음으로 나를 마주한 사람이었다. 일로 바쁘신 아빠를 대신하여 외할머니가 딸의 손을 잡아주셨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한 유일한 가족이었다. 핏덩이를 처음 안아본 사람이 외할머니여서 그럴까. 그날 핏줄로 맺어진 끈끈함은 외할머니가 왜 그렇게 좋은지 설명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가끔 딸네 오면 새우깡을 손에 쥐여주는 외할머니가 좋았다. 잠들 때 외할머니의 품이 내 차지라 좋았다.


외할머니가 가끔 오시면 아빠는 술에 취하셔서 엄마와 언성을 높여 싸우셨다. 외할머니는 사위가 딸에게 화내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아빠는 엄마가 속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장모님이 아셔야 한다는 듯이 하소연을 하셨다. 일그러진 얼굴로 가족이 잠들었다. 친할머니가 오시면 예의를 지키던 아빠가 왜 외할머니 앞에서 그러는지 난 아빠가 야속했다. 외할머니는 아빠 편에서 엄마를 위로하셨다. 난 외할머니의 한숨이 속상했다.


외할머니는 엄하지만 다정한 분이셨다. 어떻게 엄격하면서 다정할 수 있었는지 그의 인생을 헤아리기 어렵다. 1924년에 태어난 외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통치를 받았다. 소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셨다. 외할머니는 얼마나 기억력이 좋으신지 간단한 일본어는 잊지 않고 알려주실 정도였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7남 1녀를 낳으신 외할머니는 마흔세 살에 남편을 잃었다. 55년을 남편 없이 사셨다. 남편을 잃은 다음 해에 사랑했던 큰아들을 월남전에서 잃었다. 10년 뒤에는 막둥이 아들을 잃었다. 외할머니는 모진 풍파를 겪으시면서 자식에게 아빠 노릇을 하셨고 엄마 노릇도 하셨다. 외할머니 한 분만으로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고명딸이다. 아들 틈에서 셋째로 태어난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유일한 딸이었고 친구였다. 엄마는 살뜰하게 외할머니를 챙겼다. 매일 아침 아홉 시면 시시콜콜 안부 전화를 나누었다. 서울에 사시는 엄마가 전라남도 광주에 계시는 외할머니에게 수시로 찾아 들었다.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외할머니를 돌보았는데 임종은 지킬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이 공교롭게도 작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제삿날이었다. 엄마는 제사를 위해 전복, 생선, 사과, 배, 떡을 준비하면서 부고를 들었다. 주저앉아 엉엉 우셨다. 맏며느리인 엄마는 제사를 끝까지 치르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이해할 수 없었다. 친정엄마가 유명을 달리했는데 시어머니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유교 문화가 무척 슬펐다. 엄마는 계속 딸은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내뱉으셨다. 딸인 내가 듣기에 낯선 말이었다.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자주 했던 말, 당신에겐 ‘보기도 아까운 딸’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일곱 아들보다 사랑하셨다. 그런데 달려갈 수 없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기도 했다. 외할머니를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보다 더 마음 아플 엄마의 곁을 지키며 난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저 나의 마음속에 사랑으로 품어주셨던 외할머니가 몹시 그리울 뿐이었다. 외할머니의 말캉말캉 떡시루 같았던 팔에 매달리고 싶었다. 껍질이 까기 쉬워서 귤이 제일 좋다는 외할머니랑 오붓하게 귤을 까먹고 싶었다. 항상 단정하게 머리를 빗으시고 옛날 화장품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던 외할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장지에 땅을 파고 외할머니의 뼛가루가 담긴 유골함이 묻히는 걸 보았다. 그의 기나긴 인생이 막을 내리듯 흙이 덮어졌다. 고단했던 그녀의 인생이 묻혔다. 수없이 흘렸을 눈물과 외로움, 탄식과 환희, 그리움을 같이 묻었다. 자식뿐만 아니라 친손주들을 홀로 키우며 삶을 일구셨던 외할머니는 또 무엇을 길러내기 위해서 땅에 묻히셨을까. 숨소리조차 조용하던 그녀의 침묵이 맴돌았다.


집에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노을을 보았다. 비 온 다음 날이어서 그랬을까. 눈부신 노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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