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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게임(Chicken Game)

니가 죽나 내가 죽나 해보자

by hyyenn



치킨게임(Chicken Game):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 게임이론



2008년, 중국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로 성장한 이후,

2011년,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이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라는 재균형 정책을 선언하고,

2012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꿈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중국은 자칫하면 극한의 갈등으로 치닫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긴장 상태를 지속해 왔다.


양국 간 상존하는 갈등의 씨앗에도 불구하고, 작년 11월 16일 두 정상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중은 공동으로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면서도 글로벌 안보와 번영을 촉진하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특히 현재 각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펜타닐(마약성 진통제)에 대응하기 위한 마약 대응 실무그룹을 설립하고, 국가 간 인적 교류를 확대하며, 인공지능에 관한 양자 대화 개최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도 하였다.




공통의 관심사항에 대한 이해의 일치에도 불구하고,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주제들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대만 문제'이다.


국가를 이루는 주요 3요소는 '영토', '주권', '국민'이다. 즉, 국가들은 영토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대만은 중국의 영토 중 일부이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만은 "반드시 중국과 통일될 것"을 재확인하였다. 게다가 미국과의 대화에서 중국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인 만큼, 넘어서는 안 되는 레드라인"임을 천명하였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강경한 태도에 반해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대만 영토에서 중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대만은 비공식적이지만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은 대만에 무기를 수출함으로써 해당 지역을 무장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지난 1월 13일 치러진 대만의 총통 선거 결과에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중국을 겨냥하듯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것에 환영을 보냈다. 한술 더 떠 미 하원 의원들은 대만에 직접 방문해 대만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확인시켰다.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문제는 '핵무기'다.


미국은 5000개가 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중국은 기껏해야 약 500개 정도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핵탄두의 양은 물론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양국 간 비대칭이 나타나기 때문에 굳이 이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의 중요성은 '핵무기' 그 자체에 있다.


핵무기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던, 핵기술이 얼만큼 많은 발전을 이룩했던지 간에,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인 것이다.

과거 2차 세계대전중에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1개'씩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1개의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에서 약 15만명, 나가사키에서는 약 8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러한 핵무기의 위력을 목격한 중국 역시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게 되는데, 당시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핵무기에 대해 파급력이 대단한만큼 쉽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이 호랑이(Paper Tiger)'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과거 미국과 소련만큼 대규모의 핵전력을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핵공격을 확인한 이후에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선제 핵 불사용 원칙(No First Use)' 정책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지도자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핵 태세는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2012년 집권 초기, 시진핑은 미국에 맞서기 위해 더욱 강력한 핵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으며, 현재까지 그의 집권 기간동안 중국의 핵 무기고 규모는 두 배가 늘어났다. 이에 미 국방부는 지금 추세대로라면 2030년까지 중국의 핵탄두는 1000개를 상회할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지금이야 미국과 중국의 핵 전력이 대략 10배 이상 차이가 나고 있지만, 중국이 끊임없이 핵 증강을 할 경우에는 미·중 간 핵균형이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이런 균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건들면 너도 죽는다'라는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가 전제되면 공포를 통해 전쟁이 억제된다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Balance of Power)' 상태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핵 위험을 인지하기 때문에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지만, 오히려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국지도발이 증대되는 '안정-불안정의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이 발생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즉, 재래식 무기에 의한 전쟁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핵전쟁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중 간 가속화되고 있는 핵경쟁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제시된 '치킨게임'이라는 개념은 무한 경쟁중인 미중관계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치킨게임은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내용을 담은 이론이다. 치킨게임의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가 가능하다.


1) 서로가 양보한다.

2) 한 쪽이 양보한다.

3) 서로 양보하지 않는다.


첫 번째는 서로가 양보를 함으로써 협력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서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한 쪽이 양보를 함으로써 극한의 상황을 면하는 것인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현실성이 없다. 미중관계에서 양보란 결국 '패배'를 의미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마지막 세 번째 시나리오다. 양국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계속해서 경쟁할 시, 두 국가는 모두 파국을 면치 못하게 된다. 믿고 싶지 않지만 가장 현실적이다.


그런데 최근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이 들려왔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재개하는 것에 뜻을 모았으며, 회담 한 달 뒤인 12월에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과 류전리 중국 인민해방군 연합참모부 참모장이 만나 양국 안보 현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한 것이다. 게다가 아직 확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양국 지도자는 드론과 같은 자율 무기와 핵 통제 및 배치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내용을 논의한 것이다. 즉, 양국 간 갈등의 고리를 종식시킬 수 있는 대화의 물꼬가 조금은 트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부드러운 이륙을 시작한 미·중관계지만, 문제는 중간에 한 명의 조종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이기적이고 과격한 조종사로 말이다. 미 공화당 대선 주자로 트럼프가 더욱 확실시 되고 있는 가운데, 그가 당선되면 미중 간 핵경쟁 완화는 커녕 세계 핵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대한민국 역시 자체 핵무장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부디 미국인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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