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며 사는 삶

애쓰는 삶에 지친.

by 하루를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

거울 속에 마주친 얼굴이 어색해서 습관처럼 조용히 눈을 감아.

밤이 되면 서둘러 내일로 가고 싶어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 아이와 나의 바다/ 아이유 >


섬처럼 혼자 있는 밤.

타오르는 노을을 보고 오는 길이다. 노을을 보며 아이유의 노래를 듣다가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라는 구절이 내 마음속을 따끔하게 건드렸다. 남들은 나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잘들 사는 것만 같은데. 나 혼자만 너무 넓고 깊고 민감하다 못해 세밀한 주파수에 맞춰 살아가는 것만 같아 서글퍼졌다. 나는 노래 한곡에, 글 한 줄에, 말 한마디에도 감정이 너울 파도를 타며 울컥해진다.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숨겨둔 마음은 어찌나 허술한지 적어진 내 말수에 물음을 던진 그들을 또 걱정시키고 말았다. 내 걱정을 덜어보려 술술 풀어진 말들은 결국 그들만의 언어로 내 가슴에 콕하고 박혔다. 나를 위한 조언과 그들의 무탈함에서 오는 긍정회로로 덮어내기에는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었기에 오히려 스스로가 더 가엾게 느껴질 뿐이었다. 겨우 겨우 맞춰놓은 마음속 조각들이 타인의 말에 또다시 흩어져버린다. 악의를 가지고 한 이야기가 아닌데... 분명 칭찬과 따스한 말인데도 나는 내 것으로 담아내 지를 못한다. 옹졸한 걸까? 꼬여버린 걸까? 어디서부터 덜어내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중심 없는 내 머릿속에선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신랑과 오래간만에 큰 다툼이 있고 몇 주일이 났다. 이렇게 크게 다툰 건 몇 년 만이었다. 분명 나도 힘들었으면서도 신랑이 좋아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나를 돌보지 않고 합리화를 시켜가며 인간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오로지 신랑의 행복만을 맛보게 하려고 무조건적인 희생만 했던 나 자신에게 불쑥 화가 났다. 결괏값이 고작 이것밖에 안되나 싶어 울분이 터진 나는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 신랑에게 짐승처럼 덤벼 들었다. 다툼을 일으킨 이들은 우리 덕에 금실이 좋아졌다며 추켜세우며 감사해했고 그런 모습이 떠오를 때면 20년이 넘은 우리의 관계는 무엇이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그들로 인해 신랑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참이었다. 1시간의 전쟁 끝에 녹초가 되었지만 꼭 극으로 가야만 자신을 되돌아보는 신랑을 향한 분노는 가시질 않았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전처럼 회복이 될까?' 하는 물음이 떠오르자, 렇게 시끌벅적 한 세상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금세 피곤해져 버렸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던 사람처럼 사는 게 귀찮고 성가셨다. '결핍을 투영한 결과일까. 나를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나보다는 가족이 우선인 행복을 유지하려다 보니 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지쳐버린 것이 아까. 그런 너도 싫고, 이런 나도 싫다.' 나와 너의 결핍을 매우려 가족에게 애를 썼지만 그건 혼자 해서 되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무너지는 지점은 항상 그렇게, 매번 같은 곳이다. 그동안 가정을 위해 나를 참아가며 너무 애만 썼다는 증거였다.




나는 매일 쉬지 않고 뭘 해야만 한다. 매 순간이 그랬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저 얻어지는 것이 없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내 삶은 애를 쓰고 배우고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알량한 자존심에 가난한 부모님과 똑같아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고, 얕보이거나 무시당하는 일도 겪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가 어릴 때 느꼈던 눈빛들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으므로. 그저 나로서 멈추길 바랐다. 내가 만든 가족에겐 그 시절 가 받고 싶었던 따뜻한 시선으로 바꾸어 주고 싶었다. 책임감이 너무 큰 탓이었을까? 가족의 결핍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오력만 하고 살아왔던 내 삶을 되돌아보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만 같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봐 몸에 밴 타인 위주의 습관들이 다시 자연스레 드러나겠지. 아마도 또 들키겠지. 누군가의 이용가치로 활용이 되겠지. 그동안 치사하다 생각한 사람들이 왠지 부러워졌다. 타인보다 스스로가 우선인 그런 사람들이 누구보다 멋져 보인다. 나는 나 그대로 온전히 있으면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그 느낌을 느껴 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를 먼저 다그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를 위한 시간보다 타인을 위한 시간을 먼저 기꺼이 내어 주던 나를 나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유는 '겨우 내가 되는 법'을 찾은 것 같은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 방법을 알기전까지는 늘 쓸모가 있어야 할 것만 같아 벌써부터 속상한 마음이 앞선다.


예전에도,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단지 버티고만 있었던 것일까? 이즈음 해서 또 다른 의문을 던져 본다. 감정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끝장을 봐야 끝이 나는 나에겐 예외가 아닐까 싶다. 가만히 있어도, 애쓰지 않아도, 가끔은 그냥 주어지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 자체로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는 넘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넘친다는 말이 욕심이 아닌 삶을 살아보고만 싶어진다. '이참에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볼까?' 조용히 속삭인다. 1초도 지나지 않아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이야기한다. 아직도 여러모로 겪어내야 할 일이 남았나 보다. 애써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 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삶. 그런 삶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숨 쉬듯 자연스럽고 쉬운 삶이 나에게도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려면 나는 또 노오력을 해야만 하겠지.



'나'로 태어나

내가 되는 일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기를

<료의 생각 없는 생각/ 료 / 열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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