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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 01

1. 대박의 필수요소, 핫버튼을 찾아라.

by 이기원

우리 딸은 일본 축구 만화인 <블루 록>에 빠져 있었다.


축구를 1도 모르는 초등학교 5년생이 왜 그런 만화를 좋아하지? 잠깐 의문을 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그저 딸과 함께 교보 문고에 갈 때마다 새로 나온 그 만화 책을 한 권씩 사주는 것으로 아빠 노릇을 할 뿐이었다.


방학이 되자 <블루 록>이 극장판 영화로 나왔다. '에피소드 나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그 영화는 주인공인 나기가 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연하게도 딸과 함께 극장에 갔다. 하지만 나는 상영관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표를 사서 아이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아빠의 임무를 다했고 대신 나는 카페에서 책을 보았다.


보름 쯤 지나서였을까?


딸은 '에피소드 나기'를 또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다. 영화를 보면 <블루 록> 굿즈를 주는데, 2번째 굿즈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런 제길! 나는 수입사의 이 야비한 상술에 분노했다. 굿즈로 아이들의 n차 관람을 유도하다니!


딸은 다시 티켓을 쥐고 상영관으로 들어갔고, 나는 또 책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그들의 상술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몇 일이 지나고 나는 딸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영화 <블루 록>의 세 번째 굿즈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근데 이번엔 못 보러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돈이 굳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날 학교에 가야 하거든. 대신 아빠가 보러가."


헉, 나는 절망했다.


"표 산 다음 굿즈만 받아오지 말고. 아빠, 꼭 영화 봐. 재밌어."


아, 딸내미는 내가 어떻게 할 지 알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상영관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분명, 딸내미는 몇 개의 킬러 문항으로 내가 영화를 봤는지 테스트할 것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강제 관람을 당할 줄이야.


영화는 주인공 나기가 학교 계단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는 만사가 귀찮은 듯했다. 그냥 자기가 게임을 하는데 방해만 받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우리 딸내미가 좋아할만 했다. 딱 자기 같은 애가 주인공으로 나오니까.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다음 순간, 누군가 나기를 툭 치고 갔고, 나기는 그만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핸드폰이 슬로우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곧 바닥에 충돌을 할 것이고, 그러면 액정이 산산조각 날 것이었다. 내 주변에서 보고 있던 아이들이 비명이 들려왔다. 핸드폰은 그들에게 있어서 1호 보물이 아닌가. 나기에게 매우 고가의 오브제인 핸드폰이 박살나면, 집안이 넉넉치 않은 그에게는 매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을 뿐더러, 지금 당장 게임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 순간. 절대절명의 위기.


그런데 그때 나기의 발이 반사적으로 앞으로 쭉 내밀어지더니 떨어지는 핸드폰을 발등으로 안전하게 받는 게 아닌가. 축구로 치자면 완벽하게 볼을 트래핑한 것이었다. 이른바 '순두부' 트래핑.


"와, 너 축구의 천재구나! 나와 함께 축구로 전국을 제패해 보자!"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레오라는 학생이 나기의 손을 잡고 소리쳤다.


헉! 나는 그 장면에서 자리를 고쳐 앉았다.


이 장면이 우리 딸을 포함한 또래들을 단박에 사로 잡았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레오는 나기에게서 이른 바 '영재적 모먼트'를 발견한 것이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서 뭔지 모를 천재성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들 역시 자신에게서 뭔가 천재성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나기에게서 바로 그 천재성이 드러난 것이었다.


천재로 살아가면 인생을 이지 고잉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욕망. <블루 록>은 나기를 통해 그 지점을 정확하게 공략했던 것이다. 우리 딸(또래 아이들)처럼 아무런 간섭없이 게임이나 실컷하고 싶은 아이에게서 어떤 우연한 계기로 천재성이 발견된다? 이보다 축복 같은 일이 또 있을까.


자신들의 바램이 실현되는 스토리를 앞에 두고 아이들은 그 인물과 스토리에 빠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동일화 또는 동일시하는 인물에게 좋은 일어나게 해서, 마치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이지 않은가.


나는 설정을 정말 잘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직관적인 설정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음 나기가 내뱉은 말 한 마디에 나는 <블루 록> 작가에게 무릎까지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아, 너(레오)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부잣집 아들이잖아."


아이들의 열망을 이렇게 쓰리 콤보로 확실하게 조져주다니.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내가 졌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학교에서 제일 부잣집 아들은 사귀고는 싶지만, 감히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부잣집 아들이 자신의 천재성(영재적 모먼트)을 알아봐주고, 같이 친구를 하자고 제안하다니! 어떻게 아이들이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이 자리를 빌어,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정말 단순하지만 미친 설정이다.


설정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타겟층이 원하는 니즈(욕망)를 정확하게 캐치해서 그것을 스토리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당신이 대중적인 스토리텔러가 되고자 하면 더욱 더.


<선재 업고 튀어>을 봤는가?


솔직히 나는 2부까지만 보고 더 이상 보지 않았다. 왜냐, 2부까지만 보고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드라마를 보는 주 시청층인 여성들치고 왕년에, 또는 현재 아이돌 좋아하지 않은 사람 있을까? 여성 시청자들은 일단 그 지점에서 주인공과 동일시하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다. 나도 그랬었거든.


여주인공은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소녀이다. 그 소녀가 아이돌 공연을 가기 위한 여정은 정말 안습이다. 휠체어를 홀로 끌고 '산 넘고 물 건너' 어찌어찌 공연장으로 향한다. 시청자들은 그 소녀를 연민하면서 그녀가 무사히 아이돌 공연을 보기를 바란다.


하지만 소녀는 눈까지 오는 날에 고군분투했음에도 공연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소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공연장 안에서 들려오는 노래에 홀로 응원봉을 흔들며 해맑게 노래를 따라한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그 소녀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앞날을 응원하게 된다. 시청자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실제로 자기가 경험하듯이 스토리를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어 이야기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그녀가 다리를 다치지 않았던 학창 시절이 펼쳐친다. 그 좋아하는 아이돌(당시 소년)은 그 시절에도 인기가 짱이다. 소녀는 오래 전부터 그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리고 2부 끄트머리에서 중요한 사실이 밝혀진다.


그 시절 그 아이돌 역시 그 소녀를 좋아했다!.


꺄악! 이 역시 미친 설정이다.


보통 백만 명의 소녀가 한 명의 아이돌을 좋아할 것이다. 그 아이돌 입장에서 그 한 명 한 명 소녀는 그저 '원 오브 뎀'이다. 그런데 그 아이돌이 백만 명의 여자 중에서 나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라. 심장이 터질 일 아닌가? 각각의 모니터 앞에 앉은 백만 명의 시청자들이 여주인공과 동일시해서 드라마를 보는데, 남자 주인공인 아이돌이 여주인공(바로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사실 나를 좋아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불가능한 꿈을 대리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선재 업고 튀어>였던 것이다. 그 작품은 수많은 '원 오브 뎀'을 위한 송가(頌歌)였다.


이렇게 시청자의 욕망과 드라마의 설정이 강력하게 결속되면 게임은 끝난다. 그 뒤에 스토리가 무너지고 심지어 산으로 가도, 불평을 조금 할 지언정 하차는 하지 않는다. 시청자의 니즈가 설정으로 머리에 제대로 각인되는 순간 그것은 충성 서약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써야할 지 답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의 특별한 공통분모'를 공략하는 작품을 써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특별한'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남들도 그런 거였어. 즉, 나만의 특별한 욕망이 사실은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마지 않던 그런 욕망이었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욕망의 특별한 공통분모'를 핫버튼이라고 부르겠다.


제임스 홀이 쓴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에 나오는 용어인데, 대중들의 피를 끓게 만드는 마음의 스위치를 말하는 것이다. 심연 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존재를 몰랐던 스위치가 어떤 이야기를 계기로 눌러졌을 때, 우리는 그 이야기에 미친 듯이 반응하는 것이다.


핫버튼 = 대중들이 가지는 욕망의 특별한 공통분모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서 보여주는 욕망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작품은 성공한다. 하지만 히트작을 만들고, 신드롬마저 일으키려면 욕망 안에 구체적인 핫버튼이 들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막 달려들어 쓸게 아니라, 내 아이디어의 어느 지점이 시청층(독자층)의 마음 속의 핫버튼을 누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꼭 그래야 하냐고 따지거나, 그런 거 어떻게 일일이 생각하고 글을 쓰느냐며 볼멘 소리를 하고, 때론 핫버튼인지 뭔지 그런 거 고민하지 않고도 잘 써왔다고 투덜거리는 작가 또는 지망생들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작가는 작가 이전에 좋은 기획자여야 한다. 뛰어난 기획자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과연 지금 어떤 이야기가 필요한가를 고민한다. 작가는 자기가 쓰고 싶은 것보다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써야 한다. 물론,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이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이라면 금상첨화이다.


사실 '욕망의 특별한 공통 분모'가 아니더라도 시청자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욕망만으로도 작품을 잘 쓰고 성공할 수 있다.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서 욕망으로는 생존, 정의(공정), 성공, 사랑, 그리고 복수 등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남길 원하고, 정의를 갈망하며, 성공하길 바라며, 사랑을 꿈꾼다. 그리고 그 욕망들이 좌절되거나 가로 막혀 나락에 떨어졌을 때 복수를 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이런 욕망들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둘이나 셋 또는 모든 욕망들을 다 넣어 잘 버무리면, 기본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나 드라마가 다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더 큰 성공을 거두거나 신드롬을 일으켜 작가로서 이름을 남기거나, 작가로 우뚝 서려면, 욕망에 대한 정밀한 타격이 필요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문화, 환경, 경험 등을 공유하는 대중들에게 강력한 동질감으로 뭉칠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언가인 핫버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보자.


주인공인 형사 마석두가 나쁜 놈들을 혼내주는, 권선징악 즉 정의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권선징악의 주제를 가진 스토리가 쎄고 쎘는데, 왜 하필이면 <범죄도시>만 된 것일까? 물론 마석두 역할을 맡은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힘이 컸다. 하지만 그가 주연으로 출연해 왔던 <범죄도시> 외의 다양한 권선징악물은 왜 거의 다 실패한 것일까? 다른 영화들은 스토리가 엉망이라서? 아니, 솔직한 얘기로, <범죄도시>도 1편 이후로는 스토리적으로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그렇다면 왜?


<범죄도시>는 영화를 보러온 대중들이 원하는 '특별한' 욕망을 제대로 해소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제 현실을 반영한답시고 범인을 잡을 때 절차를 딱딱 지키거나,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해주는 것 따위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건 현실에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단지 거두절미하고 나쁜 놈이라 판명되면, 주먹 한 방으로 제대로 아작을 내주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다.


이것이 <범죄도시>의 핫버튼이다.


대중들은 자신에게 갑질하던 직장 상사나 손님, 빵셔틀을 시키던 일진 등의 면전에서는 참아야 했지만, 영화라는 판타지 속에서는 그런 놈들을 강력한 주먹 한 방으로 넉다운시키고 싶은 '특별한' 욕망이라는 핫버튼이 있었던 것이다. 대중들은 그런 식으로 영화를 통해 대리 경험하고 대리 만족하며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왜? 마석도는 나쁜 놈들을 꼭 내 맘처럼 때려주니까.


뛰어난 작법 이론서인 <숲속으로>에서 저자 존 요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현실에 눈을 뜨기 위해서만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다. 현실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이야기를 듣는다.'고.


이렇게 대중들이 '저게 바로 내가 원한 거야!'하는 핫버튼을 찾아내면, 그 다음엔 그것을 스토리 차원에서 극대화하는 방법도 생각나게 된다.


가령, 이야기 초반에 마석도 앞에 나타나는 악당은 평생 한 번 만날까말까한 잔혹한 연쇄살인범 같은 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만날 법한 양아치, 불량배, 무례한 같은 생활형 악당(?)을 초반에 배치하는 것이다. 동네 식품점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미친 놈이나, 차로 길을 막고 행패를 부리는 조폭 똘마니들처럼 말이다. 그런 악당들을 적당한 유머와 어리숙함이라는 매력을 갖춘 마석도가 원 펀치로 해결하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을 때 대중들은 '와, 저 형사 완전 내꽈인데!'하며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다(여기에 펀치의 타격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악당들이 나가 떨어지는 모습과 타격의 효과음을 과장하는 것은 연출의 덤이다).


이번엔 드라마 <시그널>의 핫버튼은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자.


우선 첫사랑으로 얽힌 차수현(김혜수)와 이재한(조진웅)의 과거 인연이 핫버튼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첫사랑은 아련한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것만 가지고는 신드롬적인 인기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의 초반부에 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은 엄마가 나온다. 그 사건은 미제로 남았고, 그래서 엄마는 경찰서 앞에서 딸의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1인 시위를 한다. 그 시위는 세월이 흘러, 그 엄마가 노년으로 접어들어까지 지속된다.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시위를 했단 말인가!


그런 할머니가 된 엄마에게 차수현이 와서 손을 잡고 말한다.


잊지 않겠다고.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많은 시청자들도 그랬다. 왜? 핫버튼이 눌러졌기 때문이었다.


그 핫버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잊지 않겠다, 반드시 해결하겠다... 뭔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그것은 세월호였다.


<시그날>이 방영되었을 때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2년쯤 지나서였다. 어른으로서, 국민으로서 우리는 바다에 수장되는 생떼같은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잊지 않는 것 뿐이었지만, 국가는 그 문제를 해결해 줬어야 했다. 하지만 국가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시그널>에서 국가 기관의 일원으로 국가를 대신한 여주인공이 '잊지않을 것이며, 반드시 해결하겠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 핫버튼이 눌러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트라우마를 건드렸고, 그 결과 열광적인 반응으로 나온 것이다.


어쩌면 <시그널> 작가는 드라마에 세월호의 메타포를 의도적으로 넣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가에게도 세월호 문제는 깊은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장면을 쓸 때 '자기도 모르게' 작가적 본능으로 그렇게 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작가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쓸 수 있도록 스스로 훈련된 작가라는 사실이다.


간혹, 본능적으로 대중들의 니즈라 할 수 있는 핫버튼을 잘 캐치하는 천재형 작가들이 있다. 그런 작가들의 특강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작품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떠올렸냐는 질문에 대부분이 어느 날 문득 '그분이 오셨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화딱지가 났던 기억들이 있다.


아마 당신도 그런 얘기를 들었거나 인터뷰를 읽었을 것이다. 물론 당신은 나처럼 화를 내진 않았을 것이다. 대신 당신에게도 언젠가는 '그분이 오셔서' 멋진 작품을 써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을 테니까. 하지만 단언컨데, 당신에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 당신은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다(천재라면 절대 보지 않을 이 책을 읽고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증명된다).


그렇다고 당신이 천재 작가를 찾아사 핫버튼의 비법을 알려달라고 한들 그들이 가르쳐 줄 리 만무하다. 자기한테는 저절로 되는 것을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는 당신이 왜 그게 안 되는지 이해를 못하고 답답해 할 게 분명하다. 천재는 남을 가르치지 못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은 천재 작가는 아니다. 그들은 나름의 본능적인 훈련법으로 그 경지에 올라간 것이지, 그들이 다소 '무책임하게' 말해 왔듯이 핫버튼이 어느 날 불현듯이 나타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그래서 이제부터는 천재 작가라는 말보다 성공한 작가라고 부르겠다).


성공한 작가들의 핫버튼을 찾아내는 본능적인 훈련법은 사실 간단하다.


그들은 어떤 작품을 보고 나면, 그것이 왜 재미있고, 왜 감동적인 지를 분석해 본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자문자답을 하며, 때론 스터디에서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하고, 그 작품을 다룬 제각각의 분석 기사를 탐독하며 내공을 쌓기도 한다. 또한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어떤 뉴스에, 사회 현상에, 사건사고에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내가 존경하는 어떤 선배 작가는 그런 질문들만 적어놓은 노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아이디어의 보고'인데,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은 뒤부터 작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선배는 작품을 의뢰받을 때마다 그 노트에 적어놓은 질문(로그라인)으로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들 중에서 상당수는 당연한 얘기지만 핫버튼이 들어 있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대부분 성공을 거두었고, 그 중 핫버튼을 제대로 건드린 작품들은 대박이 났다.


자, 이제 당신은 핫버튼이 무엇인지도, 왜 필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핫버튼'을 내 작품에 장착하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세월에...


당신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당신은 빨리 공식을 배우고, 테크닉을 익혀서 멋진 스토리를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야 말로 '바늘 허리 매어 못 쓰는' 분야이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당신은 작가로서 더 성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시각을 가다듬거나, 생각을 고쳐먹거나, 태도를 바로잡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름길이 없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이 괜히 <당신은 더 잘 쓰게 된다>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당신에게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작품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핫버튼'에 대해서 얘기할 것이다.


그때 당신은 아마도 핫버튼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구조와 세부사항, 그리고 캐릭터와 디테일까지 한 몫에 다 알고 있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더 나은 작가가 된 것이다.



(댓글과 좋아요, 부탁 드립니다. 응원하기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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