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토리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다.
조연이나 조조연, 단역 등에게는 서운한 말일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이 말은 공동 주연에게도 해당이 된다. 말이 공동 주연이지 누군가의 이름이 먼저 타이틀 롤에 소개될 것이고, 그가 바로 진짜 주인공이며, 스토리는 바로 그의 이야기인 것이다.
때문에 공동 주연으로 캐스팅 된 배우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가령, 엔딩 씬(주로 주인공이 장식한다)을 진짜 주인공과 번갈아 장식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심지어 타이틀 롤에도 주인공과 교대로 나오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 봤자 1회에 먼저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름을 겹쳐 쓰면 모를까.
왜 그렇게 주인공에 목을 매는 것일까?
금전, 명예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결국 이유는 하나이다.
모든 스토리는 바로 주인공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공식을 보자.
캐릭터(주인공) = 테마(주제) = 스토리
즉, 주인공의 캐릭터에서 테마가 발생하고, 그것은 바로 스토리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결국 같은 것이라는 얘기다.
<들장미 소녀 캔디>를 예로 들어보자.
주인공 캔디의 캐릭터는 주제곡 가사에도 나와 있듯이 ‘괴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인물이다. 때문에 스토리는 캔디를 울게 만들기 위해서 괴롭고 슬픈 상황에 계속적으로 처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전개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울지 않는 캔디라는 캐릭터를 통해 ‘어렵고 힘든 일을 꿋꿋하게 견디면 행복이 찾아온다’는 주제가 구현되는 것이다.
이렇듯 스토리에서 주인공은 모든 것이며 전부인 것이다.
자, 이제 주인공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를 해보자.
제임스 홀이 쓴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it Lit)>이라는 책이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시작해서 <대부>, <죠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다빈치 코드>까지, 출판계를 강타한 전대미문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12권을 선정해서 그 책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12가지 특징을 찾아내 분석한 책이다.
그 특징들 중에서 주인공에 대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주인공에 관한 공식으로 간직할만하다.
주인공은 이단아(매버릭)이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즉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이단아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에 이단아를 지칭하는 매버릭(Maverick)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 초대형 베스트셀러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매버릭이라고 한다.
미국 서부시대에 섀뮤얼 매버릭이란 농장주가 있었다. 당시 농장주들은 모두 자기가 키우는 가축에 낙인을 찍어서 소유주를 표시했는데, 유독 매버릭만이 자신이 키우는 소에 낙인을 안 찍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남들 다 하는데 혼자 하지 않는 사람, 아무도 하지 않는데 혼자만 하는 사람 등을 매버릭이라고 지칭했다고 한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매버릭에 속하는 캐릭터는 다음과 같다.
반역자, 보헤미안, 개척자, 반항아, 외톨이, 불복 주의자, 극단주의자, 불평분자, 독립투사, 반란군, 괴짜, 자유로운 영혼, 아웃사이더, 은둔자, 이방인, 왕따, 유배자, 말괄량이 등등
매버릭은 보통 그가 속한 사회의 가치체계를 거부하거나, 가치체계에서 거부당하는 인물이며, 자기 나름의 저항방식으로 사회, 제도, 관습 등과 싸워 나가는 캐릭터이다. 이들이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이유는, 이들이 우리들을 대신해서 불공정, 불합리, 불만족 등과 싸워주기 때문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귀족인 어머니와 소작인 아버지에게서 영민한 머리와 거친 성격을 물려 받았는데, 조신한 상류층 여자로 보이고 싶어 하는 한편, 말괄량이로도 보이고 싶어 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대부>에서 마이클 코를레오네는 마약 조직원들인 형제들과는 달리 대학을 졸업하고, 전쟁에도 참전한 인물로 마피아 입장에서 봤을 때 철저한 이단아이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로버트 킨케이드는 소설 속에서 자신을 도덕성에 지배받지 않는 사람이라 말한다.
물론 모든 주인공이 매버릭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매버릭에 가까울수록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쉽고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일단, 매버릭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면, 그다음 주인공이 갖춰야 할 것을 생각해 보자.
주인공에게는 결함이 있어야 한다.
간혹 주인공을 무결점의 완벽남이라 시놉시스에 소개해 놓은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그런 설정한 작가에게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사람은 매력이 없을뿐더러 개연성도 없고, 인간으로서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설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주인공이 자신을 무결점 인간이라 생각하는 것인데, 이럴 경우 그의 결함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된다.
불세출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렇게 말했다. 한 인간을 제대로 전달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그 사람의 결함을 기술하는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시학>에서 인간의 결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야기는 비극과 희극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비극은 결함을 극복하지 못해서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지는 이야기이고, 희극은 결함을 극복해서 행복해지는 이야기라고.
결함에는 신체적 결함과 정신적 결함 등이 있다. 여기서 신체적 결함은 종종 정신적 결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드 <하우스>에서 닥터 하우스는 천재 의사지만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리며, 다리까지 절고 있다. 이로 인해 그는 아주 괴팍한 성격을 결함으로 가진 캐릭터로 표현된다.
정신적 결함만을 볼 때 역시 천재인 <굿 닥터>의 박시온은 자폐증이란 캐릭터적 결함을 갖고 있다. 또 한 명의 천재인 <하얀 거탑>의 장준혁은 오만함이란 결함을 갖고 있다.
슈퍼 히어로에게는 치명적인 결점이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슈퍼맨을 예로 들면, 그는 크립톤 운석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신체적 결함이 있으며,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정신적 결함(?)이 있다. 크립톤 운석은 그가 지구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할 때 종종 장애가 된다. 그의 수줍은 성격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인 그를 인간답게 보이게 한다.
여담으로, 슈퍼맨의 청소년기를 그린 <스몰빌>이란 시리즈에서 이 내성적인 슈퍼맨은 좋아하는 여자와 천신만고 끝에 데이트를 하게 될 때 반드시 지구를 지켜야 할 일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악당과 싸워 세상을 지키고 돌아오면,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슈퍼맨을 원망하거나 아쉬움을 표한다. 이런 슈퍼맨의 비애는, 즉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여 보는 이들에게 연민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들은 슈퍼맨의 연애가 잘 되길 바라면서 <스몰빌>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스몰빌>의 스토리 알고리즘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도 발견된다. 비밀 특수부대원인 유시진 대위는 여주인공과 사랑이 이루어지려고만 하면 국가를 위한 특수임무를 부여받는다.
다시 주인공의 결함으로 돌아와서.
질 체임벌린의 <시나리오 넛셸 테크닉>을 보면 주인공의 결함을 통해 어떻게 스토리를 만드는지에 대한 예를 명작 영화 <사랑의 블랙홀>로 들고 있다.
<사랑의 블랙홀>은 매일 같은 날이 반복되는 타임 루프 구조를 갖고 있다. 주인공인 필은 매우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정신적 결함으로 갖고 있다. 그에게 반복되는 매일은 반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남들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변하면서 그 반복되는 매일은 새로운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전혀 치지 못했던 그는 매일매일 조금씩 연습을 해서 끝내는 멋진 피아노곡을 연주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결국 한 여자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반복되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음은 주인공에 대해 지극히 당연한 공식이지만, 신인들은 자주 망각하는 공식을 말해 보겠다.
주인공은 능동적이어서 항상 선택하고 행동한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즉, 우리는 주인공의 어려운 선택에 감정이입을 하고, 어려운 행동에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그가 능동적인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작가 지망생 시절 동료들 중에는 고집스럽게 수동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데뷔를 하지 못했다. 즉, 수동적인 인물을 내세워서는 이야기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동적인 인물은 선택하지도 않고 행동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주인공으로 쓸 수 없겠네요?"
한 번은 내 수강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히키코모리들은 거의 99%가 수동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주인공으로 쓰기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선택과 행동을 하는 1% 능동적인 히키코모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히키코모리를 찾아내거나 창조해 내면 그 캐릭터는 주인공의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다른 히키코모리처럼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지만, 방 안에서 일과표를 정교하게 짜 놓고 치열하게 하루를 선택과 행동으로 사는, 그런 유니크한 히키코모리 캐릭터라면 주인공 자격이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한 번은 어느 스릴러 드라마를 보는데, 선택과 행동을 하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주도하던 주인공이 어느 회차에서 그만 커다란 부상을 입어서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스토리는 주인공이 입원한 상태로 다음 회차까지 이어졌다. 나름 선수 입장에서 나는 시청률이 폭락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 예언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시청률이 떨어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주인공이 그 회차 내내 선택하고 행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드의 스토리텔링을 보면, 가끔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는 게 바로 선택과 행동의 적절한 사용 때문이다. 미드를 만드는 스튜디오라면, 병원이라는 선택과 입원이라는 행동을 한 뒤 다음 선택과 행동을 빨리 앞 당겨서 스토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가령, 주인공이 입원한 상태에서 탈출이라는 선택과 행동을 하거나, 이야기를 퇴원이라는 선택과 행동으로 점프시켜서 전개한 뒤 입원 중에 있었던 일은 플래시 백이나 회상으로 살짝 보여줬을 것이다.
주인공이 이야기 전개 중에 일시적으로 선택과 행동을 남에게 떠넘길 수 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는 반드시 주인공이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 선택과 행동에서 보통 주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해보자.
주인공은 이단아(매버릭)이며, 그에게는 결함이 있다. 또한 그는 능동적이어서 항상 선택하고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