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레나 루밸라: 정서복원소』
감정도망 / 침묵의 의미 / 자기회복 / 물결 유리판 / 감정충전 / 루미
며칠 전, 나는 친구들의 무심한 말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날은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죄책감이 밀려왔다.
정서복원소의 문을 열자,
루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도망치고 싶어요.
그리고 그게, 죄책감으로 느껴져요.”
루미는 얇지만 긴,
반투명한 유리판을 꺼냈다.
표면에는 잔잔한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가 유리판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살짝 두드리자,
빛이 스며들며 파문이 일었다.
물결은 천천히 번져가다,
마치 호수 위에 내려앉는 빛처럼 사라졌다.
그 파문 속에서,
내 안에 갇혀 있던 장면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함께 일할 동료가 생긴 첫날이었다.
나는 정말 기뻤다.
오랫동안 혼자 버텨온 끝에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그날 나는 평소보다 10배쯤 많은 에너지를 썼다.
웃고, 다가가고, 농담을 하고..
내가 가진 거의 모든 말을 꺼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말했다.
“제가 좀 불편하신가 봐요.
요즘 피하시는 것 같아서...”
그게 아니었다.
정말, 그게 아니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진심이었고,
너무 진심이었던 나머지
다 써버린 거였다.
“이해받기 위해 말했는데,
말이 줄어들자 오해가 시작됐어요.”
루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들은 ‘조용해졌네?’라고 하지만,
사실은 진심을 다 쓴 당신이
충전 중인 거예요.”
모든 침묵이 거리감은 아니다.
어떤 침묵은,
당신이 거짓 없이 다녀갔다는 증거다.
나는 울지 않으려 애쓰다가,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침묵은 당신이 거짓 없이 다녀갔다는 증거예요.
조용해진 나를, 내가 먼저 믿어주세요.
빛이 스치면 잔물결이 번지는 유리판.
잠잠해지는 파문 속에서,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부드럽게 풀려나갑니다.
사실은 가장 나다운 방향이었을지도 몰라요.
정서복원소 / 루미 / 감정기록 / 물결유리판 / 침묵의의미 / 작가H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