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연 Dec 03. 2019

안녕 상수동. 팝업식당 오늘의 정규영업을 마치며.

11월 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일주일에 두번 여는 팝업식당,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오늘’의 마지막 정규영업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예약리스트를 다시 확인해보니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 인원을 감당하려면 오늘은 얼마나 만들어야 할까. 나의 준비가 부족해 식사를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이 없게끔, 밑작업 스케줄을 꼼꼼히 짜 본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우선 배를 채우고 일을 시작하기로. 스탭이라고는 나뿐이지만 차려보는 스탭밀. 배추와 무말랭이로 현미 리조또를 만들고 딜을 올렸다. 딜은 오이, 훈제연어와 잘 어울린다고 알려진 허브이지만, 조리 방법에 따라 무, 배추와도 잘 어울려 요즘 즐겨 사용한다. 무말랭이와 배추를 아삭하면서도 달콤하게 익히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생각한대로 잘 나왔다. 이렇게 생각한 레시피가 만족스럽게 나오면 조만간 식당에서도 낼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문득 당황스럽다. 하지만, 아쉬워 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앞으로는 식당이 아니라 클래스에서 알리며, 직접 만들어 드실 수 있게끔 서포트 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정규영업의 날이 밝았다. 

 나의 팝업식당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오늘’의 11월 마지막 주의 마크로플레이트.

현미밥

돼지감자포타주

딜을 올린 순무와 유부조림

우엉 샐러리조림

기장 단감샐러드

순무청 톳나물

연근 함바그

다시 돼지감자의 철이 돌아왔다. 다시 이 돼지감자 맛을 보기 위해 몇달 전에 자연농을 고집하는 풀풀농장 농부님께 몇번이고 문의를 드렸었다. 그리고 다행히 마지막 영업 전에 돼지감자를 얻을 수 있었다. 돼지감자는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채소라 활용한 레시피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특유의 흙향만 잡아주면 무척 매력적인 재료이다. 특히 스프에 무척 잘 어울린다. 이 돼지감자의 매력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작년부터 계절에 맞춰서 돼지감자 스프만 해도 레시피를 세종류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에 열기를 더해줄 레시피로 개량했다.

 배추리조또에도 사용한 딜은 순무와 유부조림에 다시 한번 등장시켰다. 무보다는 음의 성질을 갖는 순무는 우리나라 보다는 일본에서 즐겨 먹는 채소이다. 내가 느끼기에 일본의 순무보다 우리나라의 순무는 조금 더 알싸한 매콤한 맛이 있어, 처음 다룰 때에는 애를 먹기도 했다. 매콤한 맛의 음의 성질을 덜어내기 위해 필요한 전처리를 하고, 그을리듯 구운 뒤 졸여본다. 사용한 기름은 유부에 남아있던 기름 정도. 때문에도 유부는 양질의 기름을 사용한 유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는 마크로비오틱의 기본에 충실한 식단으로 구성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순무의 무청도 버리지 않고 나물을 한가지 만들고, 곡식이 식단의 60% 이상을 채우게끔 샐러드와 함바그에도 곡식을 사용했다. 

(마크로비오틱의 기본 이론에 대해서는 이곳을 참고)

샐러드에 사용한 래디쉬 역시 마크로비오틱의 ‘일물전체’를 실천하기 좋은 채소이다. 래디쉬는 고운 빛깔 때문에 주로 뿌리 부분만을 사용하지만 잎부분은 샐러드 재료로도 훌륭하다. 뿌리부분은 얇게 슬라이스하고 잎과 줄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쑥갓과 함께 샐러드 재료로 사용했다. 이렇게 준비한 래디쉬와 쑥갓은 단감, 잣을 곁들이고 기름없이 상큼하게 즐기는 기장 드레싱으로 마무리 했다.

 준비한 재료와 밑작업한 음식을 차에 싣기 위해 몇번이고 작업실과 주차장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준비한 재료와 음식만큼, 이틀동안 ‘오늘’을 처음 만나는 손님부터 헤비유저 손님까지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찾아와준 손님, 올해 초에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 그리고 12월의 수업에서 만나기로 한 수강생...그리고 감사하게도 모든 분들이 노쇼 없이 예약하신 대로 방문해주었다. 간혹 취소 연락을 주신 분들도 계셨지만, 충분히 여유를 갖고 미리 연락을 주신 덕분에 영업에 지장이 생기지도 않았다.


 식당을 처음 열었던 세달 동안은 나를 응원하기 위해 친구들이 식당을 찾아주기도 했지만 나의 커리어 체인지에도 익숙해졌는지 5월부터는 친구들의 방문이 뜸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감 발(?)인지 식당 덕분에 오랜만에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3년간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던, 하지만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드물어진 친구가 불쑥 꽃과 함께 식당을 찾아준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유행에 민감한 업계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젊은 여성들이 당혹스러워할 만한 고봉밥을 퍼주었지만, 덕분에 천천히 고봉밥을 먹어가며 그동안의 근황과 궁금했던 점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누구든 방문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인 만큼 이렇게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다. 새삼, 식당이라는 공간의 매력에 대해 생각해본다.  

 토요일 저녁. 나의 식당을 여러번 찾아주신 손님들로 예약이 찼다. 목요일부터 정신없이 영업준비를 하느라 마지막이라는 감상에 젖을 틈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을 자주 찾아주시던 손님들이 하나 둘 씩 아쉽다는 말과 함께 식사 후 자리를 뜨니, 비로소 이분들과 다시 만날 기약이 없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저녁 8시 반. 마지막 손님과 나만이 식당에 남았다. 여러번 식당을 찾아주었던 손님인데, 내가 유난히 바쁠 때 식당을 찾아주시거나, 두분이 대화를 즐기시는 일이 많아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어 본적이 거의 없는데, 이제서야 단골 손님과 대화를 나누어 본다.


 ‘저희는 외식을 거의 안하거든요. 

 그런데 이곳은 저희가 외식을 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우리들의 레스토랑이라고 부르며 예약하곤 했어요. 사실 생일 때도 왔어요. 그래서 저희에게는 많은 기억이 있는 곳이예요.

 그래서 식당을 그만하신다는게 참 아쉬워요.’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기에 물티슈와 디저트 포장용기조차 제공되지 않으며, 단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조금은 특이하고 불편한 식당. 사전 정보 없이 들어온 손님은 황당해 하거나, 때로는 불쾌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나의 식당과 음식을 누군가는 소중한 기억으로 생각해 주고 있었다. 여름 쯤부터는 많은 손님들이 식당을 찾아주시며, 때로는 요리하는 기계처럼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이 곳에서 손님들이 어떤 기억을 남기고 갈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주방에서, 시간에 맞춰 요리를 낼 수 있게끔 집중하는데 전념해야 했다. 때문에 이 큰 즐거움을 잠시 잊고 살았다. 마지막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이 큰 기쁨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저녁 9시. 마지막 손님이 자리를 뜨고 마감을 시작했다. 밥솥은 텅 비고, 디저트는 달랑 머핀 두알이 남았다. 내 저녁 식사 정도는 남아 다행이다. 머핀 두알과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돼지감자 스프를 데워 식탁에 올렸다. 창 밖을 바라보니 장미꽃이 피던 상수동의 거리에는 어느덧 크리스마스의 조명이 보였다. 


 혼자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점심시간 마지막 손님이 나에게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그 동안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매주 메뉴를 바꾸며 요리부터 서빙, 마감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체력도 필요했다.  매주 무거운 짐을 싣고 논현동과 상수동을 오갔으며 베이킹 클래스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집 오븐을 출동시켜야 했다. 단열이 잘 되지 않는 공간이기에, 추운 겨울철에는 털부츠를 신었는데도 발가락이 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혼자서 이 공간에서 많은 것을 해온 듯 했지만, 이 기쁨, 때로는 고단함을 함께 나눌 사람이 나에게는 없는 듯 했다.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 함께 회사 욕을 하기도, 출장의 추억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그들을 보았을 때 깨달았다. 때론 불평을 하더라도 함께 불평을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홀로 남은 상수동의 작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있자니 그동안의 손님들의 얼굴, 나누었던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혼자 와서 식사를 한뒤에는 부모님과 함께 찾아주었던 손님들,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찾아주었던 손님들, 임신한 아내를 위해 예약했던 남자분, 한국어를 거의 못할 때 처음 방문했는데 어느 덧 한국어 실력이 꽤나 늘은 외국인 손님… 

 처음 식당을 열었던 작년 12월. 주말 저녁인데도 나의 식당에는 한 사람조차 손님이 없는 날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해두고는 혼자 몇시간이고,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렸다. 하지만, 1년이 지난 11월에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손님들이 찾아주었다.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며 한번도 만날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 나를 믿고 찾아와 식사를 한다. 그리고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다시 찾아주기도 했다. 내가 지칠새라 마친 식사를 직접 정리해주기도 했고, 1인 쉐프의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 치고는 지나치게 과묵하고 무뚝뚝한 나에게 손님들은 선뜻 먼저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맛있다는, 잘먹었다는 인사 한마디에 또 새로운 메뉴를 만들 힘이 생겼다. 돌이켜 생각하니 최근 몇달 고개를 내밀던 외롭다는 감정은 배부른 소리였다. 혼자 일해 온 듯 했지만, 날이 갈수록 공간을 채운 손님들 덕에 나의 음식도, 식당도, 나도 변해 왔다. 만감이 교차하기에, 마지막 영업을 마치고 이 감상을 글로 남기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한가지, 모든 만남과 경험에 대한 감사함이라는 감정이 나에게 남았다. 모든 만남과 경험을 소중히 여길것, 그리고 조바심과 욕심을 내지 말고 한발짝 한발짝 내가 가진 능력치를 발휘하며 움직일 것. 이 두가지 배움을 기억한다면 식당이 아닌 곳에서 일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과 즐겁게 멋진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으며 상수동의 식당에서 마지막 스탭밀을 마쳤다.

 모든 분들을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남겨주고 가셨습니다. 혼자서 많은 양을 짧은 시간에 준비해야 하기에 만반의 준비를 한 음식을 낼 수 없어서 늘 아쉬웠는데도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오늘’의 음식에 관심을 갖고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오늘’ 의 정규적인 식당영업은 지난주가 마지막이었습니다. 12월 부터는 똑같이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오늘’ 이라는 이름으로 쿠킹클래스를 진행합니다. 단발적인 팝업식당 욕심은 있지만, 확정된 계획은 없습니다. 언젠가 다시 많은 분들 앞에 요리를 낼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나처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공지하겠습니다. (브런치에는 글만 포스팅하고 있으며 쿠킹클래스와 식당 영업 등의 정보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만 포스팅 하고 있습니다.)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