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옥의 개화일기 2017
올봄은 유독 힘들었습니다.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좋은 봄가을에는 농담 삼아 꽂아둔 나뭇가지에서도 꽃이 핀다 할 정도로 식물들이 잘 자라거든요? 하지만 올해는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만 아직 여름이 멀었는데도 햇빛이 너무 강해 화상을 입거나, 잎이나 뿌리가 물러 죽거나 하는 일들이 잦아지더라는 겁니다.
이 소란 속에서도 다행히 반가운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 봄, 빨갛고 탐스러운 꽃에 반해 데리고 왔지만 꽃이 진 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던 선인장에서 딱 1년 만에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비화옥 緋花玉 선인장
Gymnocalycium baldianum
'선인장을 키운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저에게 있어 선인장은 여전히 어려운 존재입니다. '과연 잘 키우고 있는걸까?' 하는 의문이 항상 머리 속을 떠돌거든요. 그저 현상 유지만 하고 있다면 괜찮은 건지, 혹시 어디가 안 좋아서 사실은 죽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의 이 고민을 한 순간에 없애주는 건, 바로 꽃이었습니다.
변함없던 선인장 머리에 빨간 점 세 개가 등장한 순간, 길고 긴 기다림이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맞아요, 드디어 꼬박 1년을 기다린 꽃대가 돋아나고 있는 거예요!
4월부터 고개를 내민 작디 작은 꽃대는 한 달을 꽉 채워 천천히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지나친 관심은 독이 될까 싶어, 모른척 못본척 몰래 훔쳐보는 척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보면 어느덧 꽃대는 잘 여물어 모양을 갖추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드디어 준비를 끝낸 꽃대를 만난 순간, 하필 날씨가 흐리네요.
꽃이 필 만큼 햇빛을 받지 못하면 꽃은 딱 그만큼만 피어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수줍게 덜 피어난 꽃도 반갑기만 합니다. 1년을 기다렸는걸요.
다시 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햇빛이 쨍쨍 맑은 날을 맞이했습니다.
갇혀 있기 답답한 듯 사진 밖으로 뚫고 나올 것만 같은 빨간 색의 꽃이 피어납니다.
탐스러운 노란 꽃술과, 반짝이는 꽃잎, 강렬한 색감,
이것이 바로 봄을 마무리하고 여름을 맞이하는 선인장, 비화옥의 꽃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꽃은 3~4일 동안 화려한 얼굴을 뽐낸 후 금새 수명을 다해버렸습니다.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마음은 하루 동안의 영상으로 기록해두었답니다.
내년에도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 비화옥의 개화일기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