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싫어했던 작가 하루키. 이 사람 책을 읽기 시작하다니! 무려 책을 구입하고 줄까지 치면서!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싫어했냐면 소설 자체 읽기를 거부했다. 내용이 너무 지저분하고 더러웠다. 그 당시 나는 굳게 믿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가진 몸,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좀 특별하고 멋질 거라고 나르시시즘에 단단히 빠졌었다. 그 종에 대한 자아도취를 그만둔 건 우여곡절 끝에 아이 셋을 낳고 기르면서 하염없이 망가지는 몸과 먹지 않으면 위로받지 못하는 이 비루한 정신력에 무너지고 나서다. 포유류 중 한 종이라고 설정하고 하루키 작품과 다른 소설책을 읽으니 비로소 작가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또 나는 30대 중반쯤에 점성학을 공부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다 그렇게 얽혀 들어가 공부해 버리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니 하루키는 스스로 염소자리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성격을 갖고 태어났는지 알았을 것이다. 이 사람은 관성을 부정하고 뛰쳐나왔다. 나는 써야 하는 운명을 가졌다면서. 물고기자리였다면 너무 당연한 삶의 선택을 그는 자살하는 심정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염소자리는 이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인정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좋은 대학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생긴 것도 평범하고 몸매도 그다지. 그가 인정받을 방법은 공부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그는 평범한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게 친한 친구의 죽음 때문인지 아니면 관리되지 않는 불뚝불뚝 솟아나는 몸 가운데 존재하는 신체기관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는 그렇다. 인정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데 마지막 그의 염소자리로서의 충족점은 바로 이 책,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를 쓰고 작가로 인정받은 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사명에 충실하게 휘갈겨 쓴다. 염소자리는 코스모스, 즉 질서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는 혼동과 자유를 쓴다. 전혀 염소자리답지 않은 글을 써댄다. 그렇다. 주인공이 좋아했다는 작가, 데릭 하트필드는 글로 싸우고 결국 부모 죽음과 함께 죽는다. 그는 자신의 운명 염소자리로서의 길을 처절하게 죽여버린다. 그럼에도 그의 염소자리 습성은 꾸준히 죽어라 쓰는 모습에서 발현된다. 아, 노래를 좋아한다는 점도! 그래서 이 책 제목이 노래고 소설 속에서 쉼 없이 노래들이 흘러나오듯 쓰여 있다.
재밌는 책이다. 이렇게 하루키 인생을 그의 책을 읽으며 시작해 본다. 운명이라는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기기 시작한 음악을 좋아하는 운명을 가졌으나 정 반대의 내용을 쓰는 그, 하루키와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