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제일 먼저 만들고 싶었던 게 있다.
꿈꾸기를 좋아하는 나는 20살부터 매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왔다. 100개가 넘을 만큼 수두룩 빽빽하게 작성하던 버킷리스트에는 항상 '명함 만들기'가 있었다. 단, 조건이 있었는데, 소속된 회사에서 만들어주는 명함이 아닌 내가 직접 만드는 명함만 인정할 것.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가를 꿈꿨을 때에도, 우리나라에 이름을 날릴 방송작가를 꿈꿨을 때에도 빼놓지 않았던 꿈이었다. 그 꿈을 사업가가 되어서야 이루게 됐다.
02. 명함을 만들면서 보니까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항목 몇 가지가 있었다. 회사명과 이름, 직책, 연락처, 메일 주소 등등이다. 그중에서 나를 한참 동안 고민에 빠지게 한 녀석이 있었다. 바로 '직책'.
혼자만의 힘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거긴 해도, 과연 '대표'라는 직함을 새겨도 되나 싶었다. 아직 1인 기업인 데다가, 어엿한 사무실도 없고, 사업자등록도 못 했는데...라는 힘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표 말고 다른 마땅한 직함이 있는지 고민을 이어갔다. 양심적으로 '대표'보다는 직급을 낮춰야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직원'이라고 하는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나름 내 사업한다고 파는 명함인 만큼 스스로도 권위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직급은 하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해 가면서 합의한 직함은 '부장'이었다.
03. 직접 디자인하고, 직책부터 이메일 주소까지 하나하나 고민해 가면서 만든 명함. 받고 나서 보니 정말 뿌듯했다. 내가 부장이라니...! 부장이라니...!!! 회사생활을 오래 한 친구들 중에 벌써 '팀장'을 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보다 초고속 승진을 한 것 같아서 명함 한 장에 승리를 거머쥔 기분이었다. 그런데 명함 돌릴 일이 많아지고, 나를 소개하는 자리가 많아지면서 '부장'이라는 글자는 점차 부끄러운 직함이 되어가고 있었다.
명함을 볼 때마다 뿌듯했던 감정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명함에는 나 자신을 '대표'라고 소개할 만큼의 자신감 없던 과거의 내가 박혀 있었다. 명함을 다시 파야겠다는 생각이 뾰족해졌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당당하게, '저는 대표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나는 대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