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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 베데딕트 수도원과 에스꼴라니아 소년합창단

신비로운 풍경과 천상의 목소리

by 황현철

이번 여행은 우리 부부의 자유여행으로 준비했지만 오늘은 원데이 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바르셀로나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몬세라트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대중교통만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고, 몬세라트 수도원의 검은 성모상과 에스꼴라니아 소년 합창단의 공연도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가 원하는 코스로 잘 짜인 원데이 상품이 꽤 많이 있었다. 게다가 몬세라트 관람 후 조금 더 떨어진 휴양도시 시체스도 들를 수 있다고 하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독특한 풍경의 몬세라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차로 약 한 시간 반,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하늘과 맞닿을 듯한 기묘한 바위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몬세라트(Montserrat)다. 스페인어로 ‘톱니 모양의 산’을 의미하는 이 이름은, 그 독특한 지형에서 유래한 것으로, 실제로 솟구쳐 오른 바위들의 형상이 마치 거대한 손으로 조각해 놓은 듯 정교하고 웅장하다.

붉은색 외벽을 가진 건물 너머로 기이하게 솟아오른 회색 바위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 작품 같았다. 멀리서 볼 때는 부드럽게 깎인 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올려다보면 압도적인 규모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 아래 자리한 **몬세라트 수도원(Benedictine Abbey of Montserrat)**은 이 신비로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었다. 수도원의 건축물은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으며, 자연에 경외를 표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수도원 내부는 한층 더 장엄하다. 화려한 황금빛 제단과 정교한 조각, 고요한 분위기는 경건함을 자아내며, 천장 높은 돔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낮은 숨결조차도 신성한 기도로 느껴졌다. 이곳에서 나는 잠시 말없이 앉아, 수 세기 동안 이곳을 거쳐간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마음으로 그려보았다.


수도원의 중심에는 라 모레네타(La Moreneta)’로 불리는 검은 성모상(Black Madonna)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성모상은 12세기경 만들어졌으며, 얼굴과 손이 검게 그을린 듯한 색을 지녀 ‘검은 성모’라 불린다. 카탈루냐 사람들에게는 신앙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오랜 세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에스꼴라니아 소년 합창단의 공연

몬세라트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에스꼴라니아(Escalonia de Montserrat) 소년 합창단의 공연이었다. 13세기부터 이어져온 이 합창단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 성가대 중 하나로, 매일 정오에 수도원 성당에서 성가를 부른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수도원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덕분에 스페인의 결혼식도 함께 볼 수 있었다. 하객의 절반이 관광객인 참 신기한 현장이었다. 오늘 이 시간과 장소를 공유한다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저 잚은 부부와 우리가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니, 모르는 이지만 새 출발하는 부부를 마음속으로 축복해 주었다.


합창이 시작되자 성당은 일순 정적에 잠기고, 맑고 순수한 소년들의 목소리가 천장 높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기도이자 축복이었다. 언어를 넘어선 감동이었고, 잠시나마 세속의 시간에서 벗어나 하늘과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마지막 공연이고 다음 주부터는 여름방학에 들어간다고 했다. 합창단 소년들은 기숙하며 교육을 받지만 방학에는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짧은 방학이겠지만 얼마나 기다렸을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공연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괜히 짠했다.

에스콜라니아 소년합창단 기념 뱃지

그렇지만 이 소년 합창단은 본인들과 가족들에게 영광으로 여겨진다니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공연 관람의 증표로 높은 음자리표의 배지를 선물로 받았다. 볼 때마다 오늘을 기억할 수 있으리라.

십자가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도원과 몬세라트 전경

시간이 남아 산책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산책로를 따라 십자가 전망대(Cruz de San Miguel)까지 올라가면, 눈앞에 몬세라트 수도원과 거대한 바위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수도원에서 보는 경관도 장관이지만 또 반대에서 수도원을 바라보는 풍경 또한 장관이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감탄사를 쏟아내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 역시 숨을 고르며 이 장관을 담아두었다. 저 멀리까지 이어지는 카탈루냐 평야와 자연의 거대한 스케일, 그리고 그 위에 우뚝 선 십자가는 ‘인간’과 ‘신성’의 경계를 잇는 상징처럼 보였다.


몬세라트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과 예술, 종교와 역사가 한데 어우러진 살아 있는 곳이다. 웅장한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고, 수도원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이 정화되었으며, 소년들의 성가를 통해 세상의 소리보다 깊은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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