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퓨져를 통해 살펴본 인간관계의 기술
오랜만에 인테리어 매장에 들렀습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면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바꾸시나요? 외풍을 막던 두꺼운 커튼을 떼고, 따뜻한 잠자리를 보장해 주었던 온수 매트를 걷어냅니다. 덕분에 묵은 먼지를 털어내기도 하고 쌓인 짐들을 정리하게 되는 건 덤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니 2% 부족함을 느꼈어요. 무엇이 빠졌을까? 고민하다가 빠진 하나를 찾았습니다. 바로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봄 향기가 빠졌네요.
평균 디퓨져의 수명은 약 3개월. 그것도 최대한이 그 정도이고 대략 2개월을 넘어가면 점차 공간을 차지하던 향기의 기운이 감소합니다. 그건 쉽게 익숙해지는 후각의 이유도 있겠지만 향기스틱이 감당할 수 있는 수명이 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원액을 빨아올려 공기로 내뿜어내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3개월을 주기로 정기적으로 디퓨져를 교체해주어야 하니 어쩌면 사계절이 있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이 변할 때는 디퓨져를 바꾼다. 괜찮은 삶의 루틴 아닌가요? 물론 요즘같이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시대에는 칼로 무 자르듯이 계절을 3개월 단위로 나눌 순 없습니다. 3월에도 춥고, 10월에도 더우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끼리는 그렇게 퉁 치자고요.
수많은 디퓨져의 종류에 먼저 놀랍니다. 이렇게나 많은 제품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하지만 가장 먼저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상품 옆에 자리를 잡은 안내 포스터입니다. “향기에 기대 잠시 쉬어가요” 어떻게 이런 생각이 가능할까 놀라면서 문구를 곰곰 생각해 봅니다. 보통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단단한 물체에 기댄다고 표현합니다. 기댄다는 것은 중력으로부터 전해지는 체중으로부터의 부담을 나누어지는 것이니 듣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말이지요. 그런데 향기에 기댄다니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물리적으로 힘을 나누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심리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름다운 향기가 채워진 공간에서는 마치 편안한 의자에 기댄 것 같은 마음의 평안을 동일하게 누릴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안한 것이 참 휴식 아닐까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디퓨져에서 뿜어 나는 아름다운 향기에 기대 잠시 쉬어가라는 문구는 (심지어 사지 않아도 누릴 수 있다는 점) 참 좋은 말입니다.
마음에 드는 디퓨져를 골랐습니다. 예전에는 향기를 선택할 때는 어떤 향인지 그 원료와 추출물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로즈메리, 코튼, 화이트 머스크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향기로 유명한 한 회사의 블랙체리 향에 매료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또 한 세대가 변화했네요. 이젠 향기를 원료로 부르지 않고 넘버로 부르네요. 물론 이 브랜드에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향수로 유명한 샤 0에서도 넘버 5 이런 제품이 있었습니다. 달콤한 꽃향기를 담은 9번 디퓨져는 현관에 놓기로 했습니다. 들어오고 나갈 때 이 달콤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지도록 말입니다. 12번의 초록 디퓨져는 상쾌한 향을 담아 거실에 둘게요. 거실에서 항상 푸르른 향기가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5번의 파란 디퓨져는 드레스 룸에 놓기로 했습니다. 매력적인 향기가 은은하게 옷에 베어 들기를 기대하면서요.
디퓨져를 가득 사서 나오는 길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세 가지 각기 다른 향기로 채워질 삶의 공간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공간을 향기로 가득 채우고 나서 인간관계에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향기로 채우느냐가 공간의 느낌을 새롭게 디자인하듯이, 우리의 인간관계에는 어떤 향기로 다르게 채울 수 있나요. 저는 그 향기가 바로 아름다운 미소와 반가운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한 카페에서 발견한 레터링 문구가 정답을 이야기하는 것 같네요. 평화를 만드는 것이 대단히 어렵고 거창해 보여도, 그 시작은 바로 미소라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에 만나는 동료에게 은은한 미소를 띠어주는 것. 그리 어렵지도 않지만 왠지 쉽게 하지는 못하는 일입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의 아침인사로 “좋은 아침!”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근 후 처음 만나는 동료교사들에게 미소를 건네고 따뜻한 인사를 전하는 일. 혹 어떤 사람들은 ‘좋은 아침 아님’이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당분간 계속하려고 합니다. 좋은 아침이 캠페인처럼 퍼지면 더욱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