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김밥'... 우리가 모르게 삼키는 언어의 독

by 영감
10406_27408_4139.jpg 사진 출처 : 조선일보


길거리 가게의 진열창에서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따위의 '마약' 돌림 광고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메뉴판에서도 '마약 순대'가 튀어나온다. 대마 커피도 있고, 어디는 아예 식당 이름이 '마약 밥상'이다.


자기네가 파는 음식이 하도 맛이 있어 중독성이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장사꾼을 탓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을 음식에 빗대어 손님을 끄는 풍토는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마약 문제가 아직 덜 심각하다는 반증일 수는 있다. 마약의 무서움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사회이기에 이를 장난 삼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마약이 만연한 나라에서는 감히 이런 식으로 범죄의 대상을 판촉 문구에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도 마약 범죄가 빠르게 늘면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게 되어가고 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마약’ 같은 표현이 흔해지는 것이 행여 우리 사회에서 마약이 널리 번질 조짐은 아닐까 두렵다. 장난처럼 쓰던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 의미의 무거움을 뒤늦게 깨닫게 될지 모른다.


위험한 ‘마약’이 일상적인 '김밥'과 결합될 때 청소년들은 무의식적으로 마약이 '해롭지만 별것 아닌 거, 어딘가 매력적인 거’로 가볍게 인식할 수도 있다. 한편 진짜 마약 중독자는 그걸 보고 입맛을 다실 것이고, 고통받고 있는 그의 가족에겐 잔인한 농담이 된다.


늦었지만 정부나 지자체가 식품명에서 마약류 표현을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교체 비용도 대준다고 한다. 권고가 아니라 명확히 금지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이 온당하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종의 허위·과장 광고로 단속할 수도 있다. 식당 위생 등 다른 규제들과 달리 업주에게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조치다. '마약'을 못 '쓰게' 한다고 김밥의 맛이 떨어지거나 덜 팔릴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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