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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영언니 Jan 15. 2024

자기 확신

 82년생 김지영, 90년대생이 온다, 급기야는 MZ라 불리는 신세대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세대 변화는, 기존의 공동체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사회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MZ는 스스로를 MZ라 부르지 않는다지만, 사회는 MZ를 ‘맑은 눈의 광인’이라 부르며 자기 확신이 넘치고 매사에 독립적인 자들이라고 말한다. 크리에이티브한 자신만의 일을 하며 전통적인 직업을 가지지 않는 것도, 잦은 퇴사를 하는 것도,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을 하지 않는 것도 자기 확신과 자기 주도성이 너무 높기 때문에 사회에 순응하고 공동체와 화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정면에서 본 ‘요즘 세대’의 모습은 마치 자기 확신이 넘치는 것처럼, 정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작은 상담실에서 그들의 뒷면을 본다. ‘요즘 세대’의 뒤편에서는, 우울과 공황과 강박, 그리고 자살사고에 시달리는 아프고 불안한, 확신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다. 돌아서 그들의 뒷면을 본다면, 자기 확신이 넘치는 세대라는 말은, 정말로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연구에서는, 고전적으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해지고, 이전까지는 없었던 ‘성인발현기’라는 단계를 추가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발달단계로서 현대 한국 사회의 청년, 혹은 청소년을 포괄할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세대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세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길을 가야 하는 청년들은 오히려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자기 확신이 없다. 공감받기 어렵기에 털어놓을 곳도 없다. 정보는 너무나 많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확신이 없기에 책임질 자신도 없다. 많은 청년들이 때때로 개인주의적이게 보이는 이유는,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이타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 때문에 타인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적기에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상을 더욱 축소시킨다.


 그래도 작은 자기 확신을 꼭 부여잡고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청년들은 괜찮다. 아니, 훌륭하다. 어떻게든 자신의 세상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며 지나온 발자취 속에서 자기 확신을 더욱 얻는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더 이상 나아가기를 멈추는 청년들은, 넓은 세상 속 좁은 자신의 세상 속에 스스로 갇히고 만다.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들은 감당할 수 없는 과업이 되어 소리소문 없이 이들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이런 이유로 나의 작은 방을 찾아오는 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확신이 없다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확신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다. ‘자기 확신’이란, 스스로를 의심 없이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믿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믿기로 결정하는 나의 선택, 그 자체가 바로 감옥 탈출의 열쇠가 되어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 완벽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 힘든 순간을 다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낙담하고 넘어져도, 어떤 순간이 오든지 그 순간 내가 나를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나아갈 수 있다.


 자유를 향한 열쇠를 찾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모두 자신의 열쇠를 획득하기를 바란다. 헤맨 만큼 자신의 땅이라는 말이 있던가. 스스로를 가둔 감옥에서 벗어나 넓고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헤매며 자유롭게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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