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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월 Jul 29. 2019

중년 일기

 다른 나라들을  순전히 영화로만 이해하다.ㅡ일본 편

  브런치 글쓰기에 합격하고 나니 막상 글 올리기가 두려워진다. 중년의 나이라는 게 남과 대화할 때, 하고자 하는 말도 제대로 표현을 못 하고 내용의 앞, 뒤를 생략하고 본론만 말하는 시기이더라. 무슨 맥락으로 그 말을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한다. 특히나 그럴듯한 내용의 말속에 어느 순간 중요한 단어가 생각 안 나니 그걸 기억해내느라 내가 머뭇거리다 보면 대화의 정적으로 이어지거나 다른 사람들이 단어 알아맞히기 놀이가 되어 버린다.


요즘 뉴스의 화두는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우리나라가 산업적인 측면에서 려움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시작의 단초는 일제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정치적 이슈에서부터였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정이 뼛속까지 안 좋은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국민들은  정작 자신들도 역사 속에 피해자라 생각한다. 

패전 후 1960년대까지 시대 배경을 다룬 일본 영화 보면 우리보다 앞서서 근대화를 이루어 나가고 우리를 억압했던 나쁜 국가의 신민으로 일본을 생각하지만 그들 역시 사회의 희생양인걸 알 수 있다.


첫 번째 소개할 영화는 <제로 포커스>이다.

마츠모토 세이초라는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가의 작품이 원작이다. 그의 탄생 100주년 (1909년 출생) 기념작으로 2009년 영화화하였다.

원래 원작자 마츠모토 세이초는 한국으로 징용되어 패전을 경험했고 그런

개인적, 역사적 성찰 통해 일본 사회의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와 정치, 사회적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 일본 최고의 작가이다. 1960년대가 배경인 <제로 포커스> 갓 결혼한 신부 데이코가  출장 간 남편 겐이치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남편을 찾아 나서며 영화가 시작된다. 겐이치의 실종에 얽힌 사연을 차츰 알아가며 겐이치의 과거, 겐이치의 연인, 사장 부인 등 여러 인물들이 중첩되어 실종 사건이 얽혀있음을 알고 데이코가 충격에 빠진다.

 주인공들 모두가 현재의 삶을 제로로 만들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결말에서 밝혀지며  패전 후 일본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문제가 무엇인지 주인공의 시점에서  애잔하게 나타난다. 


두 번째는 <백야행>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70년대로 전당포 주인 살인사건을 통해 일본의 가정 내 아동 폭력과  시대 싱글 여성의 경제적 어려움이 안타깝고도 슬프게  그려지고 있다. 추리소설계 스타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이 원작으로 일본에서는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지고 우리나라에서는 손예진, 고수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전당포 주인이 살해되면서 이다. 경찰이 살인자를 밝혀내지 못했으나 사실은 아들  료지가 범인이다. 료지는 유키호라는 같은 반 소녀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성 매매당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얼마 후 유키호 어머니도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이후 유키호와 료지는 살인사건의 동지의식 속에 자신들의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차례로 죽이며 어둠 속을 걷는다.



다음은 <박치기>이다. 2004년 일본 감독 이즈츠 카츠유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한, 일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절인만큼  내용면에서 재일동포 이야기임에도 일본 내에서 폭발적 인기와 수상을 기록했다. 50,60년대 일본 사회 내에서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 이슈가 컸던 때이라 일본 관객들은 자신들 나라에 대한 반성과 이해가 섞여 큰 인기를 끌었으나 우리나라에서의 흥행은 초라했다. 영화는 눈물 나게 재밌고 한편으로는 일본에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재일동포들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다.

 1968년 교토 은각사 앞, 수학여행 온 남학생이 한복을 입은 조선 여학생을 희롱하자 어디선가 조선 남학생들이 떼거지로 몰려들며 패싸움이 벌어진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재일 조선학교의 현실에 가슴이 뛰다 못해 눈물이 저절로 나는 영화이다.

1968년 때의 일본은 재일조선인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하고 한국은 그들을 받아줄 여력은 없으나 북한으로 보내는 것도 반대하던 때다. 재일 조선인들은 아웃사이더가 되어 그들만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북한은 1966년  이탈리아를 꺾고 월드컵 8강에 오른 시기, 일본 사회 내에서는 전공투 데모가 사회적 이슈가 되던 때였다.  서로를 알아 간다는 전제하에 조선인 학교와 일본인 학교의 축구시합시작됐다. 청춘들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 영화에 흐르는 <임진강>의 노래가 물안개처럼 피어나는 아주  만들어진  영화이다.  어쩌면 영화처럼 서로를 이해하면 서로가 그냥 보이는 것이다.

네 번째 소개할 영화는 <피와 뼈>이다. 피와 뼈를  본 누군가는 '보는 것은 힘들고 보고 나면 더 힘들다'라고 말했다. 한번 보면 우리 조선인이 왜 저럴까 이해하기 싫어지고 두 번 보면 재일동포 1세와 2,3세의 고통과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가슴 저린다. 서로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증오를 낳고 그렇게 괴물들은 탄생되는 것이다.


감독은 재일동포가 낳은 일본 최고의 감독 최양일의 작품이고 양석일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주인공 김준평역에 기타노 다케시가 맡았는데  괴물 김준평을  연기하기에 적합한 외모를 가졌다. 다만 그의 우익적 행보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순수하게 영화만 보자. 우리가 개인적인 표현의 자유를 집단적인 사유의 틀에서 공격하는 건 가끔 테러 같다는 개인적 생각도 덧붙인다. <피와 뼈>의 내용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편해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자전적 소설인만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들의 인생이 일본과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펼쳐졌으니 어쩌겠는가! 북한을 이상향의 나라라 생각하고 결국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괴물이었던 김준평이 북한에 모든 재산을 바치고 쓸쓸히 죽어가는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는 <종이달>이다.  미야자와 리에가 은행원으로 등장하는데 우리가 알던 그 여배우라 하기엔 외모가 많이 변한 듯하다. 눈과 코 사이에 점을 보면 미야자와 리에가 확실하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일본 최고의 섹시스타가 어떻게 이런 평범한 은행원을 연기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은행돈을 차곡차곡 횡령하고 조용하게 삶의 일탈을 누리는 일본 은행원으로 너무 잘 어울린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 실제 일어났던 은행돈 횡령사건을 모티브로 가쿠다 미쓰요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은행의 조직체계, 고객을 대하는 방식, 은행 전표까지도 우리나라와 똑같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가 은행 시스템을 일본에서 배워온 듯하다. 서양과는 조직체계가 다르다. 지금이야 스마트 시대이니까 다 바뀌었겠지만 은행원이 어떻게 횡령할 수 있었는지 그 구조를 이해하는 게 우리나라 사람이 보면 알기 쉽다. 횡령의 동기나 과정, 고객의 반응, 주위의 반응까지 우리나라 신문에서 본 기사들과 너무 닮아있다. 심리적 구조가 우리나라 사람과 닮아있고 정서도 비슷하다.


일본은 위의 영화들로 보면 우리가 죽도록 미워할 만큼 행복한 나라는 아니다. 나쁜 국민들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이웃인 우리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진정한 관심을 기울일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을 잘 모른다. 더군다나 우리는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과 한국을 선택받길 강요당했던 재일 조선인들도 잊고 산다. 그들이 경계인으로 일본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모르면서 오직 우리 문제만 남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이제 글로벌 시대이다. 각자 짊어진 각 나라마다의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고 그 고통들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여러 이야기를 던져보자. 모르는 과거, 서로의 입장과 그 스토리들을 가지고 문화, 예술적으로 보여주고  다듬고 만들어서  이웃끼리 공감하는 평화의 장을 펼쳐보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 문화적 콘텐츠로는 우리가 더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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