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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유정 Apr 09. 2023

2. 베이징여행의 끝은 개입양?

-뭉실이를 데리고 오기까지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종종 우리 뭉치를 동네의 작은 애견호텔에 맡겼다.


그 애견호텔은 그 당시(2000년대 초 중반)  다른 곳이 작은 케이지에 가둬두는 곳이 전형적인데 반해, 넓은 울타리 안에 강아지들을 돌봐주고 무엇보다 들어갔을  때 비릿한 냄새나 개의 배변냄새 등 악취가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가게를 운영하는 노부부의 마음씨가 너무 좋아서 간식을 사러 갈 때나 미용을 할 때도 자주 이용하던 곳이었다.


10월이 지날 때쯤 어느 날 귀엽고 하얀 몰티즈 두 마리가 있었다. 한 마리는 이내 입양되어 갔고, 다른 한 마리만 남아있었는데 너무너무 활기차고 귀여운 아이였다. 그 가게의 사모님이 " 아이고, 야는 벌써 배변훈련도 다 돼서 절대 아무 데나 안 싸고 패드 위에서 싸고,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요." 하셨다.

초롱초롱하고 귀여운 암컷 몰티즈에게 나는 '공주'라는 별칭을 지어주면서 사람 손을 많이 타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가끔 들를 때마다 한껏 예뻐해 주었다.


어느 날 뭉치의 사료를 사러 가면서였나? 저녁에 가게를 들렀는데 여전히 귀여운 공주는 나를 반겨주었고,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웬 아빠와, 딸 둘이 가게로 들어왔다. 딱 봐도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이것저것 물어보고 자기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들어봤을 때 집에 있는 엄마가 개를 키우는 것에 반대하고 이 세 부녀도 개에 대한 지식이 많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하필 내가 예뻐라 하는 '공주'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왠지 저 집에 가면 내가 부르는 대로 '공주'에 걸맞은 대접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떠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기보다 그냥 나의 직감과 감각에만 의지한 그 예감.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입양을 말렸다. "엄마가 싫어하면 나중에 힘들어지더라고요."라고 아빠를 괜히 설득하고, 당시 애견샵 사모님에게 귓속말로 "사모님, 저 집 가면 공주 힘들 것 같아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저 귀여운 녀석을 장난감처럼 다루면 어떻게 해요. 무엇보다 가족이 모두 합의된 것도 아니고... 웬만하면 못 데려가게 하세요."라고 다급한 마음에 옆에서 압력까지 넣었다. 마음 여린 사모님도 결국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입양하라는 조언을 하니 그 세 부녀는 의논하고 오겠다며 가게문을 열고 다시 돌아갔다. 


어쩌면 아빠도 입양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는지 모른다. 사모님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바로 수긍하고 돌아섰으니. 어쩌면 그저 아이들의 성화로 잠깐 구경이나 하고 가자고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나에게는 너무 절박하고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이미 감정이 이입되어 버린 귀염둥이 공주가 저 집으로 가면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혼자 일어나지도 않을 상상을 엄청나게 하면서 공주를 지켜낸 것이다.


그 일이 있고 12월 말에 나는 친한 언니와 북경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1년 정도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간 배낭여행을 한 후 한국에 돌아와 잠시 대학에 강의를 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무렵이라 이 마지막  여행이 끝나고 나면 또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7년 동안 뭉치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며 뭉치를 홀로 집에 두고 출근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배낭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와서 몇 달간 소일거리로 대학강의만 하며 뭉치랑 유유자적한 시간을 함께 보낸 시간은 내 인생에서도 기억에 남을 만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다시 치열한 삶의 일터로 돌아가서 출근을 하면 집에 홀로 남을 뭉치가 너무 걱정되고 미안해질 터였다. 


개통령이라 불리는 강형욱 씨가 들으면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단순한 생각으로 내가 없을 때 그저 살아 움직이는 다른 생명체 중 가장 뭉치랑 비슷한 아이가 있으면 그래도 덜 외롭겠지 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북경에서의 마지막 밤에, 같이 간 언니랑 이런 고민거리를 나누다 언니의 응원으로 다음 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주가 있던 가게로 전화를 걸었다. 결정하기 전 까지는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를 키운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보다, 내가 그 두 마리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결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이제 남은 건 과연 공주가 아직 다른 집에 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냐였다. 그때 얼마나 다급했던지, 짐도 찾기 전에 바로 전화를 했다. 


"사모님, 공주 아직 다른데 안 갔죠?" 

"안 갔어요. 아직 있지요."

"제가 데리고 갈 거니까, 다른데 절대 보내지 마세요!"


인천에서 대구까지 오는 길이 그렇게 설레면서 지루하긴 처음이었다. 다른 데 가지 않았다는데도 왜 그리 마음이 조급했던지 모르겠고, 또 강아지를 새로 데리고 오겠다는데 왜 어떠한 고민도 없이 당연히 그 공주가 우리 집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대구에 와서 트렁크를 끌고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애견샵으로 달려갔다. 나를 반가워하는 공주를 품에 안고 여행가방을 들고 집으로 들어섰을 때 같이 살고 있던 동생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일명 공주는 첫날부터 마치 원래 우리 집에 살던 아이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먹고, 자고 싸고 놀았다. 우리는 이 공주의 정식 이름을 정해주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나는 공주라는 이미지에 맞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동생은 뭉치의 동생이니까 절대로 다른 이름은 안된다고 했다. 무조건 '뭉'자 돌림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뭉'으로 시작되는 이름이 예쁜 게 어딨 냐고...


결국 '뭉'자의 틀에 갇혀 가장 수수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이름인 '뭉실'이가 낙점되었다.


이렇게 공주에서 하루아침에 뭉실이가 된 녀석은 2007년 새해를 시작하는 즈음에 나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아기아기한 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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