姐姐
『海内存知己 天涯若比邻.』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있다면,
하늘 저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노라니姐姐(제제; 언니)가 생각난다. 비록 지금은 태평양 너머 멀리에 살고 있어 쉽사리 만나지 못하고 위챗을 통한 보이스톡이지만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또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
북경에 온 지 3개월이 될 무렵이었다. 중국에 발만 닿으면 중국어가 절로 터져 나올 줄로 착각을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학연수를 왔으나 중국어가 생각만큼 늘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게다가 중국에 있지만 온통 한국 유학생들로 가득 찬 학교는 서울인지 북경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주변 한국 친구들을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수업이 끝난 후 학교 정문에서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머리를 식힐 겸 커피를 마시러 스타벅스에 갔다. 가끔 한국 친구들과 가곤 했었는데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혼자 주문도 해보고 낯설지만 혼자서 해보는 모든 것이 설레기까지 했다.
커피숍에 앉아 ‘짧은 여행 한 셈 치고 한시바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고 중국인지 한국인지 모를 언어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도 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엄살 부리지 말고 열심히 중국어 공부하기로 마음을 잡고 학교 교재를 펼쳤다. 한참 책을 보고 있으니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말을 걸었다. 중국어 교재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 외국인임을 알아채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았고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나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던 남자의 일행이었다. 그 남자의 아이는 스타벅스에서 미국인 선생님에게 영어 수업 중이었고, 그녀는 영어 선생님의 부인이었다. 그녀도 합류하여 초면에 오랫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으며, 어디에서 사는지, 북경에 온지는 얼마나 됐는지 등을 물어봤고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북경에 온 이후로 내가 중국인과 가장 많은 중국어를 했던 날이었다. 늘 나보다 중국어를 잘하는 한국 친구들과 함께 다녔기 때문에 친구들 옆에서 입도 뻥긋할 필요가 없었는데 혼자인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 없이 내가 중국어를 해야 하니 실전 중국어 회화 수업 시간이 되었고 조금 전의 언어 환경에 대한 고민이 무색해졌다.
아이의 수업이 끝났고, 유익한 대화를 끝마치고 자리를 뜨려니 그들도 나가야 한다고 일어섰다. 환한 대낮에 커피숍에 들어갔었는데 어느새 사방이 어두워졌다. 저녁시간이 되어 근처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려는 그들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어 했다. 만난 지 겨우 한두 시간밖에 되지 않는 낯선 사람들과 저녁 먹는 것이 어색하여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으니 “아이, 아이 아빠, 아줌마 그리고 나이 더 많은 아저씨 우리 네 사람은 절대 위험하지 않은 조합의 사람들이니 같이 맛있는 저녁이나 먹으면서 중국인의 생활을 경험하렴” 하며 나를 설득했고 무엇에 홀린 것처럼 그녀를 따라나섰다.
허름한 외관과 달리 내부를 온통 빨간색과 황금색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어느 식당에 도착하였다. 화려한 자태의 중국 음식이 끊임없이 나왔고 커피숍에서 갑작스러운 중국어 연습으로 허기가 졌는지 경계심은 던져버리고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저녁 식사에 초대해줘서 정말 고맙고 중국에 머무는 동안 좋은 경험 많이 쌓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인사를 나누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기숙사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누워 오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어리둥절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 일행들과 저녁식사도 같이 하고 한국에서라면 절대 생기지 않을 일들이었다. 새로운 경험에 가슴도 두근거리고, 낯선 나라에서 겁도 없이 아무나 철썩 믿는 내가 너무 순진한 건가 싶었지만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한눈에 좋은 사람들임을 분명 알 수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색다른 경험을 한 이후로 종종 혼자 길을 나서 실전 중국어를 연습했다. 대도시 북경은 비교적 안전하고, 대중교통도 잘 발달되어 있었다. 하루는 혼자 807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도미노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포장해 오기로 했다. 피자 가게에서 주문할 때 필요한 중국어 문장을 연습하며 버스를 탔다. 그런데 버스 안에 스타벅스에서 만났던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 많은 버스 중 807번 버스에서 같은 시간에 그녀를 다시 만나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정말이지 반가웠다.
처음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제대로 통성명도 하지 않았고 연락처는 쿨하게 주고받지도 않았다. 그저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질 줄 알았는데 시내버스 안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두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학교 수업 말고 시간상 제법 여유가 있던 나와 친구를 좋아하는 그녀는 종종 서로를 찾았다.
그녀는 북경 태생으로 미국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녔고 그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다 북경으로 다시 돌아왔다.
중국인과 많이 어울리라고 했던 나에게 해준 조언의 책임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나에게 많은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여러 장소에 나를 데리고 갔다. 어느 날은 한중 무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의류 사업하는 친구의 공장에 데려가고, 국제법이 너무 어렵다고 하면 관세법 교수를 연결해주겠다고 하여 나를 당황스럽게 하고, 언어를 배울 때는 작가를 많이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고 작가들의 모임에 데려가기도 하고, 영어도 해야 한다며 재중 미국인들의 등산모임에 , 이웃 친구의 집에, 대학 후배의 만남에, 그냥 아는 사람의 만남에 내가 바쁘지만 않는다면 그녀의 소소한 일상에 나를 자주 동참시켰고 그녀를 만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나의 중국어 실력도 늘어났다.
누군가 우리의 관계를 물어보면 제제는 길에서 주운 여동생이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소개했다. 그녀는 무심한 듯 덤덤하게 때론 화끈하게 나를 곁에 두고 언니처럼, 친구처럼 잘 챙겨줬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27살이었고, 그녀는 40대 중반의 나이었다. 서로의 나이를 셈하여 보니 이제 나는 그 시절 그녀의 나이가 되었고, 그녀는 60대가 되었다. 그녀를 알고 지내는 동안 한 번도 나와 제제의 나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만큼 그녀에게 세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다방면의 독서와 요가, 운동과 여행을 즐기는 그녀에게는 닮고 싶은 점이 많다. 늘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며, 규칙적이고, 검소하다. 다정다감하지는 않으나 따뜻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동정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실직적인 도움을 준다. 자기 확신이 강하고, 실행력이 빠르며 매사 긍정적이니 남녀노소 주변에 친구가 넘친다.
그녀는 나의 복잡한 고민을 늘 한방에 단순화시켜 버린다. 일상의 고민들을 그녀와 이야기 나누면 복잡한 문제도 간단해지고 사소해진다. 그녀의 단단하고, 넉넉한 성격의 배경이 궁금하여 그녀의 가족에 대하여 물어봤다. 아버지는 문화혁명 시절 지식 분자로 분류되어 감옥살이를 했고, 어머니는 소학교 교사 생활을 하며 어린 세 아이들을 키웠으며 없는 살림살이에도 배곯는 이가 있으면 쌀을 나눠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제일 먼저 나서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친구들이 감옥살이를 하는 아버지를 둔 그녀를 비난하며 여러 명의 남자아이들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겨가며 놀리고 돌멩이를 던져 때려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엄마의 생활이 더 힘드셨을 것을 알았기에 그녀는 엄마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해가며 지금처럼 단단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강직하고 넉넉한 인품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으리라. “나의 엄마는 누구에게나 인품이 훌륭한,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그녀는 어머니를 회상했다. 내 아이들에게 비칠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를 생각해보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비슷한 연배의 우정을 생각하지만 많은 추억을 공유하는 우리에겐 나이 차이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제든지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젊어질 수 있는 빛나는 추억이 있으니 말이다.
오래도록 나와 은은한 인연으로 이어가고 있는 그녀를 떠올리며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고, 나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는 친구가 있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