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역시 기회이다

by 힙스터보살


마흔이 넘으면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느끼게 된다. 미디어에 나오는 밈이나 유행이 나와 동떨어졌다고 느끼게 되고, 내 취향이 뭔가 올드하게 보인다.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속도와 반짝임이 예전만치 못하다. 어쩌다가 몸에 상처가 생길라치면 낫는 속도가 더디다. 예전보다 부지런해진 것도 같은데, 예전보다 쉽게 지친다. 새로운 것보다 뻔한 게 더 많이 보인다.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하여 내가 이제는 어리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는 어떤 도전과제가 생겼을 때 앞 뒤 안 가리고 뛰어드는 게 편했는데. 이제는 이거저거 생각하며 머뭇거리기 십상이다. 아는 게 많아지고 생각이 깊어졌다고 봐도 좋겠으나, 천둥벌거숭이같은 에너지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같다. 약간은 서글프다.




나의 10대 시절을 돌이켜보면... 꽤나 고통스러웠다. 그저 공부하는 걸 좀 좋아했을 뿐인데, 어쩌다보니 경쟁이 심한 학교에 들어가서 쫓기듯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래도 어찌저찌 공부의 재미를 놓지 않은 덕분에 이름을 말하면 남들이 어느 정도 알아주는 대학교에 가는 데에는 성공했다.


나의 대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꽤 고통스러웠다. 선택한 전공과목이 뭔가 나랑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서 과연 내가 여기에 적응은 할 수 있을지 의심을 품었다. 와중에 열심히 공부하는 녀석이 주변에 있어 그 친구를 좀 따라하였다. 동아리 생활도 열심히 하고. 알바를 하면서 스스로 용돈벌이도 하고. 공모전에 도전하기도 하고, 운좋게 싱가폴도 다녀와보고. 무리하다가 결핵에 걸린 건 좀 아쉽지만 그럭저럭 알찬 대학생활을 보냈다.


나의 사회초년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암담하다. 그 때까지의 나는 사회에 뛰어든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사회에 대해 알면 알 수록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들이 실시간으로 휘몰아치는 폭풍지대와 같았다. 그래서 사회생활의 시작을 작은 학원의 강사로 시작했다. 그게 또 하필이면 수학을 메인으로 하는 학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동료 선생이 좀 개차반이었다. 실력도 별로고 동료도 별로인데 실적은 중요한 곳이었다. 그렇게 삼중 압박을 받으며 결국에는 홧병으로 인한 퇴사엔딩을 맞았다.


그렇게 다시금 취준생이 되었다. 마침 대한민국은 불황을 맞이하여 신입직원 채용이 말라가는 형국이었다. 엄청 대단한 스펙도 아닌 게, 졸업 시기를 지난 다음에서야 취업시장에 뛰어든 탓인지 최종까지 합격한 건이 단 하나가 없었다. 나랑 비슷한 학교를 다닌 동기들은 꽤나 잘 나가고 있는 걸 보면, 나만 뒤쳐진 느낌에 가슴이 답답했다. 절치부심하여 개발도 배웠지만 실력이 일천하여 기술지원센터 상담원으로 일을 하였다. 그래도 보람이라면 상담 해오는 대리점 분들에게 인정도 받고, 나중에는 IT부서 기획자로 보직도 변경되었다는 거? 이마저도 결국 과로로 인한 퇴사엔딩이 되긴 했지만.



어찌저찌하여 현재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도 해보고 다시금 사회복귀를 하는 이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니. 과연 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은 없구나 싶었다. 어느 순간 하나 기회이지 않을 때가 없었고, 어느 순간 하나 위기이지 않을 때가 없었다.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심하고 선택하여서 기뻤다 하지만, 그 선택에서 다시금 고통과 시련이 찾아왔다. 살다보니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도,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게 아니다'는 말도 맞다는 것을 알았다.


삶의 영역과 책임의 범위가 커진만큼 더 높은 차원의 기쁨과 더 높은 차원의 고통이 뒤따랐다. 둘이 등가교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따금씩 고통과 상실에 내 마음이 더 집중할 때가 있다. 특히나 나이가 들어 정신력과 체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고 느끼곤 한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내릴 떄 감내해야 할 고통과 그에 뒤따르는 두려움에 더욱 민감해진다.


그래서 이 말이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 '죽음 역시 기회이다' 흔히들 죽음은 삶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악당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비가역적으로 쇠퇴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이만큼이면 수고했다고 끈을 놓아줄 수 있는 기회가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을 한다고 어디 죽으러 나갈 건 아니지만서도, 적당한 때에 적당한 죽음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애궂이 거부하지 않는 것도 지혜로운 것이겠다 싶었다. 존엄사도 그렇고 자발적 치료거부도 그렇고 이런 맥락에서 이해받을만 하겠구나. 그렇게 나의 Well-being은 Well-dying으로 연결어 있었다. 모순적으로 평화롭다.




※ 연재는 매주 수요일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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