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uitvale Station) 훌륭한 영화의 필요조건
가끔 우연히 별 생각없이 본 영화가 나의 하루를 송두리째 집어삼켜버릴 때가 있습니다.
최근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보고 이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왓챠플레이'의 목록을 보다가 보게 된 작품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또 그 이야기가 마음만 먹으면 선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과장이나 위악 없이 담담하게 한 인물의 하루를 묘사하는 방식이 참 좋더군요.
(이런 연출은 지금 한국영화에 꼭 필요함과 동시에 한국영화가 가장 못 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줄거리나 감정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장면들에서조차 감독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저 카메라에 그들을 비추고 관객들에게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이 작품이 보는 이들의 마음에 일으키는 파장은 꽤 깊고, 오래 지속됩니다.
저는 훌륭한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후에 다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물론 이것이 훌륭한 영화의 충분조건은 아니겠지만, 필요조건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가 참 좋았습니다.
(물론 이 점 하나 때문에 좋단건 아니지만요)
배우들의 연기도 하나같이 다 좋은데, 주연을 맡은 '마이클 B. 조던'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그의 차기작 <크리드>를 기다렸었는데 아쉽게 개봉은 못 하고 DVD로 출시됐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을 통해 관람했는데 이 작품 또한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무엇보다 '오스카 그랜트'라는 캐릭터가 참 좋았습니다.
그는 보통의 우리처럼 평범하게 살기 원하지만 항상 과오를 저지르죠.
그렇지만 계속해서 나아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마도 그가 일방적인 선인이나 의인으로 묘사됐다면 이 작품의 미덕은 훨씬 줄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스카의 하루의 끝에서 만나는 절망과 탄식은
그가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사람이라거나 훌륭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그의 모습에서 평범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영화 속에서 오스카는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오프라 윈프리'의 말대로 한 달동안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새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말이죠. 그러나 그 다짐은 실현되지 못합니다.
그는 노력할 기회조차 박탈 당한채, 새 인생을 위한 첫 날에 스러져버리고 맙니다.
스물 두 살, 지금의 저와 같은 나이였던 오스카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아득해지기만 하네요.
그저 그가 영면의 휴식 속에서 편안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부디 그 곳에는 차별과 색안경으로 얼룩진 시선이 그를 쓰러뜨리는 일이 없기를.
추천지수: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