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서울변방연극제 <문병재 유머코드에 관한 사적인...>를 중심으로
필자: 조혜인 (제 20회 서울변방연극제 관객비평단)
관극일시: 2021-07-08 (목) 오후 7시
장소: 여행자극장
본고는 서울변방연극제 블로그를 통해 원고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tfestival/222447647488
문병재 작가는 자신의 사적 유머의 여정을 찾아 여행자극장에 도착했다. 관객은 안내에 따라 극장 입구에서 티켓과 함께 색색깔의 작은 국화꽃을 한 송이씩 받는다. 여행자극장의 삼단 계단에는 문병재의 유머와 관련된 아이패드 동영상, B급 코드적으로 제작된 종이 관(coffin), 영구(Young-goo) 가발, 그가 몽골에서 입었던 두터운 초록색 패딩 등 오브제들이 전시되어있다. 붉은색 두툼한 커튼이 무대 가운데에 달려있어 스탠딩 코미디쇼가 벌어질 소극장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커튼의 오른편에는 모니터가 서있다. 문병재가 등장한다. 모니터에는 문병재의 유아시절 사진이 나타나고, 그는 탯줄과 같은 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린다. 이를 관객이 자르면서 워크룸은 시작된다. 문병재는 말한다. “문병재의 TMI를 들으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문병재는 자기소개를 한다. 등본, 가족관계증명서, 가족사진, 고용보험 내역서 등을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며 현재는 ‘툭치다’에서 연출하고 이야기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지극히 사적인 서류들을 공개하며, 문병재의 유머코드에 관한 이 워크룸이 그의 사적인 자기 이야기가 될 것을 자연스레 암시한다. 본격적으로 “유머코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사유의 출발점은 왜 같은 유머를 구사했는데도 A 그룹과 B 그룹에서의 반응 즉, 유머 코드의 다름에 대한 체험을 하면서, ‘왜 유머코드는 비슷하거나 다를까?’라는 호기심에서 이번 작업의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최초”에 대해 거슬러 올라간다.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웃기겠다고 마음먹고 했던 최초의 유머에 대해 상기하도록 한다. 필자의 경우 평소에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필자가 떠올릴 수 있는 최초의 유머는 무엇이었을까?
필자의 유머코드에 관한 사적인 보고서 몇 줄을 작성해보자면, 최초의 유머 시도의 기억으로는 짱구의 엉덩이춤이었다. 유년시절 동네 골목 담벼락에서 또래의 명령으로 짱구처럼 엉덩이를 보여주었고, 필자는 흥에겨워 엉덩이 두 짝을 손바닥으로 챡- 챡- 치기도 했다. 또래들이 웃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몹시 신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매우 화가 나신 채로 나타나서 필자를 향해 웃고 있던 아이들을 혼내시고, 필자를 집에 데려와 훈육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필자는 그 시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챡- 챡- 치는 행위에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자체를 유머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그 순간에 모여있던 대다수의 또래 아이들과 유머 코드가 통했다고 기억되는 순간이다. 아마 이것도 무수한 유머의 순간 중 하나이기에 100% 최초의 순간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장 강렬하게 유년시절에 남아있는 ‘마음먹고’ 유머를 시도해본 기억 중 하나다. 이처럼 문병재는 그의 사적 기억의 단순한 나열이 아닌,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의 사적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도록 주문을 건다.
“언어유희”에 대한 단상이 이어진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글을 배우며 언어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 문병재는 주변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며 별명 짓기를 시도한다. 이것은 명백히 웃기기 위한 시도였다. 그의 별명으로는 ‘세일러문병아리’가 있었다. 간드러지는 세일러문 음악이 흐른다. 그는 리듬에 몸을 맞춰가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유머에서는 “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살쯤 춤을 추는 게 웃기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게다리춤’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시대를 아우르는 유머코드에 대한 고찰을 이어나간다. 게다리춤은 70년대 故 배삼용 희극인이 선보여서 2021년까지도 남녀노소 누구나 ‘웃긴 춤’으로 인식되어 쉽게 추는 춤이다. 이러한 게다리춤은 90년대 생인 문병재를 거쳐, 문병재의 초등학생 조카들을 거쳐 현재까지 각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유머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남기며, 게다리춤을 즐겨 추는 문병재의 조카들의 인터뷰 영상이 재생된다. 이지안(9세, 여)과 이준서(11세, 남)은 그들의 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내복으로 보이거나 어린이들이 입을만한 홈웨어(home-wear) 차림의 조카들은 문병재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게다리춤을 알고 있나요?” 이준서는 대답대신 장난감 총으로 자신의 동생을 저격하듯이 엉뚱한 장난을 친다. “게다리춤을 누가 알려줬나요?” 그들은 게다리춤이 재미없다고 돌발스런 답변을 한다. 어린이들의 존재만으로도 객석에서는 웃음이 피어났는데, 굳은 얼굴로 솔직한 심정이 담긴 ‘재미없다’는 답변은 더더욱 폭소를 자아내었다. 이어서 “이지안은 자주 친구들 앞에서 게다리춤을 추는데 본인은 많이 웃긴 편이에요?”라는 어린이들에겐 다소 대답하기 난해한 질문과 더불어 “친구들이 자신을 보고 웃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라고 물었을 때 이준서는 “기분나쁘다. 비웃는 것 같다.”라는 예상을 뒤집는 질문에 다시한번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웃음은 이렇게 예상 밖을 빗나갔을 때에도 형성된다. 이어서 마지막 질문이 이어진다. “삼촌(문병재)은 재밌는 사람인가요?” 아이들은 대답한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극히 어린이 다운 대답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다시한번 터져나왔다. 이러한 대답은 어린이에게 진실(truth)이 있다는 묘한 세상의 이치가 투영되는 순간으로 포착된다. 인간은 재밌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존재다. 완전히 재미있는 존재란 없으며, 완전히 재미없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각자의 유머 코드가 다르고, 그것이 소통되는 방식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병재의 조카 인터뷰 장면은 허를 찌르는 어린이들의 대답에 명쾌함과 순수함 그리고 유머러스함이 동시에 창출되는 순간이었다.
문병재는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그는 콧구멍 한쪽에 리코더를 끼워놓고 ‘학교종이 땡땡땡’을 콧바람으로 연주하기 시작한다. 몸과 얼굴근육을 바들바들 떨며 간신히 한 음계씩 정확히 연주를 이어나간다. 그 때, 마지막음계 ‘도’에서 삑사리가 난다. 연주를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음 이탈에 대한 불안함을 형성하는 문병재는 아슬아슬하게 연주를 이어나가다가 성공적 연주의 문턱 앞에서 소위,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순간’이 오자 다시한번 웃음은 형성된다.
문병재의 유머에 대한 원대한 야망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문병재의 아버지(문복식)는 7월 7일 워크샵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트로트를 거침없이 부를정도로 ‘관종’[1]
의 끼와 유머러스함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러한 문병재의 아버지는 술자리에 어린 문병재를 많이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문병재는 술자리에서 아버지가 주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는 모습을 보며 묘한 존경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50년대 생이다. 현재 아버지의 유머는 어떻게 변했을까? 60년대에 재미있는 것 들에는 구슬치기, 잣치기 그리고 요즘은(그리고 과거에도) 해서는 안돼는 지나가는 여성들을 놀리기 등이 있었고 아버지는 그 시절 이러한 전반적인 것들을 유머로 인식하고 있었다. 유머도 변화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성인이 되자 서울 사람들과 어울려야 했는데, 특유의 사투리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는 일화 또한 문병재는 말했다. 7일 진행된 아버지 인터뷰 영상이 재생된다. 아버지는 “동물소리를 잘 합니다.”라고 언급하며, 염소 소리를 구수하게 흉내 낸다. 이어 여행자극장의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이름은 남자의 인생♫” 즉, 문병재의 아버지에게 트로트는 유머다.
문병재의 사적 사유는 개인적 사건에서만 그치지 않고 사회적 사건으로 확장된다. “IMF”가 유머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IMF 당시에 금 모으기 운동이 유행했었다. 그 때 문병재는 금에 대한 가치를 알게되었고, 자신의 집이 망했다는 자기 비하적 유머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기 비하적 유머는 계속적으로 문병재가 사용하게 될 치트키(cheat key)[2]적인 유머가 된다. 그리고 그는 2020년 6월 26일에 종영된 “개그콘서트”를 기억한다. 개그콘서트는 1999년도 KBS에서 첫 방영되어 장장 21년가량 방영된 대한민국 대표 희극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이러한 개그콘서트를 보며 ‘분장’을 통해 망가지는 즐거움을 터득했다. 이때, 무대감독이 커튼을 젖히며 영구 가발을 쓴 채 등장한다. 그는 상당한 존재감을 풍긴 뒤 유유히 사라진다.
이어서 “노잼(재미가 없다)”에 대한 사유가 이어진다. 문병재는 학창시절부터 개그 욕심이 남달랐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해서 맡은 배역을 통해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강했다. 그런만큼 ‘재미없다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그래서 이러한 노잼 극복을 위해 “개인기”를 끊임없이 개발해왔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때도 성인을 웃길 수 있었던 개인기를 개발했다. 그는 영화 <소림축구>(2001)의 포스터를 보여주며, 주성치(周星馳,)를 유머의 롤모델로 삼고 있음을 암시했다. 특히 <소림축구>가 지닌 부조화적 면모가 문병재를 사로잡았다. 영화를 보며 홍콩어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언어의 특징을 잡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문병재의 제 1의 엉터리 외국어가 생긴 것이다. 거기에 한국말을 적절히 섞기 시작해 한국말로 번역(?)이 가능한 홍콩어가 탄생했다. 이 시점에서 문병재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다른 언어로 개인기를 보고싶냐는 질문에 한 관객이 “일본어”를 대답한다. 그러자 문병재는 관객의 요구에 정색을 하고 “1년에 몇 번만 할 수 있는 개인기”라며 단칼에 거절한다. 이 때, 다시한번 기대에 어긋나는 순간이 창출되며 객석에서 웃음이 유발되었다. 이러한 웃음의 요인을 분석해 보았을 때, 첫째로, 요구를 한 관객이 거절당했다는 민망함의 웃음과 둘째, 그 민망함을 함께 느꼈을 주변 관객들에게 웃음이 전이됨(infected) 셋째, 문병재의 모순적인 태도와 뻔뻔함이다. 본 워크룸은 ‘예상 밖의 순간’을 활용하여 유머 코드를 구사하려는 시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문병재는 유머 코드에 대한 공감대를 관객과 함께 공유하기위해 “SNS”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문병재의 고향인 창원에서는 ‘세이클럽’이라는 메신저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세이클럽 안에서는 쪽지를 도배하기도 하면서 ^^ -0- ㅡㅡ +_+ 그리고 ★ ♥와 같은 ‘ㅁ+한자’ 계열의 이모티콘의 사용에 대해서도 추억을 떠올린다. 특히 ‘ㅡㅡ’에 대해서는 가벼운 느낌의 정색으로 받아들였던 시절을 생각하기도 한다. 세이클럽 안에서는 아바타 꾸미기도 한창 유행을 했었는데, ‘엽기’라는 코드와 맞물리면서 멋지게 아바타를 꾸미기보다는 상체는 아주 그럴싸하게 옷을 입혀 놓고 하체는 팬티를 입힌다던지, 상식 밖의 아바타 꾸미기가 유행했던 점도 말해주며 관객에게 그 그림을 상상하게끔 해 웃음을 유발했다.
시간은 다시 거슬러 “2003”년으로 간다. 잔혹한 시절이었던 남중 시절을 회상하며, 그 당시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었던 유머의 종류는 폭력과 죽음을 희화화 하는 것들임을 일러주었다. 특히 인터넷이 도래하던 시절, 포털 사이트에서 흔히 쓰여지는 ‘눈깔을…’, ‘창자를…’ 등 ‘엽기’라는 이름 아래에 수많은 폭력적 표현들이 웃음으로 승화되는 때였다. 기실 ‘엽기’라는 말은 동시대에 와서 그 의미가 순화되었음을 주지시킨다. 그러나 그 진정한 의미를 탐구해볼수록 엽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만큼 잔인하고 충격적인 것들의 총 집합을 포함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엽기(獵奇)는 사전적 의미로, 비정상적이고 괴이한 일이나 사물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다님을 뜻한다. 즉, 금기의 수위를 자행한다거나, 특정 패티쉬(fetish)에 대해 가감없이 공유하면서 쾌의 측면으로서의 웃음이 아닌, 웃음을 배제할 수 있는 불쾌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엽기적인’ 사람들은 엽기적 행위에 양심의 가책이 없으며 서로의 엽기를 통해 웃기도 한다. 이러한 엽기의 부상(raising)과 맞물리며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할 때에는 딥웹(deep web)[3]과 비슷한 사이트들에 대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린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위 이상의 공포사이트도 클릭 한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고,[4] 호기심만으로 들어가보기엔 그 대가(price)가 참혹한 자료들이 ‘엽기’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고 있었다. 문병재는 2003년의 잔혹한 유머를 회상하며, 관객으로하여금 이러한 엽기와 유머는 다름을 깨닫게 한다. 특히 자신이 잘못 유머를 구사했던 부분에 대한 비판 및 성찰적 지점이 드러나는 부분이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교실에서 A 선생님에게 “태운다”라는 농담을 던졌는데 A 선생님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잠시 나갔다 들어오겠다고 했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내 담임선생님이 들어와서 ‘A 선생님은 대구에서 오신 분’이라고 말씀을 전했다. “2003년 대구”는 참혹함 그 이상이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살아남은 대구 사람에게는 자신의 친구나 가족 그 외 소중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으로 남게되었다. 그래서 불로 태운다는 유머는 A 선생님에게 어떠한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다. 문병재는 그 때 깨닫았다. 자신의 유머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유머에 있어서 문병재는 “경쟁”심도 남달랐다. 고향친구와의 인터뷰 영상이 재생된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니며, 지금은 디자인 일을 하는 친구는 문병재와 서로서로 유머를 구사하는 재미에 시절을 보냈다. 특히 둘은 학창시절 때 돼지국밥을 먹으러 많이 다녔는데, 국밥을 먹으며 경상도 아저씨 말투를 흉내내곤 했다. 아저씨가 되서 ‘니 딸이 어떻고, 내 아들이 어떻고’ 말들을 주고받은 것이다. 문병재는 질문한다. “재미없는 유머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친구는 대답한다. “좀만 더 노력했으면 그 정돈 아니었을텐데… 재미없는 거면 하질 말던가…” 그리고 친구는 유머의 장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비즈니스가 오고 갈 때 유머를 던지면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본 장면은 유머의 강력한 힘에 대해서 새삼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1박 2일과 무한도전”은 동시대 예능의 양대 산맥이었다. 특히 문병재는 무한도전을 통해 상황극을 깊게 배울 수 있었다. 그는 한 관객에게 상황극을 시도한다. 그러나 관객은 훈련된 배우가 아니었던 즉흥을 받아치지 못했다. 문병재는 여러 리허설을 거치며 어느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관객들 사이에 썰렁함이 맴도는 순간이었다. 본 워크룸은 ‘꿀잼’과 ‘노잼[5]’ 그 간극을 줄타기하며 ‘과연 노잼에 대한 연출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극적 의문을 던진다. 노잼의 끝에서 문병재는 “유머와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일상 속의 유머와 연극 속 유머는 다른 질감이 있는 것 같다는 통찰을 주며, 연극영화과 시절 <한여름 밤의 꿈> ‘보텀’ 역할을 맡았던 것을 상기한다. 그는 보텀 역을 맡으며 웃겨야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런데 문제점은, 그러한 강박으로인해 정작 보텀으로서의 적절한 액션을 취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때, 지도교수는 “고급스러운 코미디를 찾아라.”라는 코멘트를 주었다. 문병재는 대학교 2학년때 작성했던 레포트를 읽는다. 이것은 희극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담긴 100점짜리 레포트였다.
닫혀 있던 붉은색 커튼이 양쪽으로 열린다. “1막 2장 아테네 퀀스의 집” 초록빛 조명이 극적으로 라이팅(lighting)되며, 문병재는 연극연기를 시작한다. 무대감독이 상대 배역이 되어서 대사를 주고받는다. 그 때, 이 연극의 지도교수였던 배우 “나경민”을 무대 위로 초청한다. 문병재와 나경민은 각본 없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듯 보인다. 그들은 제자와 스승 사이에서 무려 7년이란 세월을 거쳐 같은 작업에 출연하는 동료가 되었다. 문병재는 나경민을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극적인 사건이 없던 본 워크룸에서, 극적인 <한 여름 밤의 꿈>이 삽입되고, 다시 사적인 경험과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고급스러운 코미디”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나경민이 바로 이 자리에 초대되었다. 문병재는 질문한다. “7년이 지났지만 ‘고급 코미디’가 뭔지 설명이 가능한가요?” 나경민은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라며 쑥쓰러워한다. 객석에서는 이 상황 자체가 하나의 고급 코미디로 다가온다. 리얼리티에서 창출되는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웃음이 발생되었기 때문이다. 기실 나경민은 <한여름 밤의 꿈> 당시 문병재가 ‘웃겨야 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고급스러운 코미디”에 대한 언급을 했다. 그런 뒤, 본 워크룸에서 포착되는 고급스러운 코미디 요소에 대해서 숙고하기 시작한다. 나경민이 앉아있던 객석의 각도에서는 커튼 뒤 무대감독이 보이는데, 나경민에게는 그가 무대에 등장하기 위해 진지하게 영구 가발을 쓰고 있던 모습 자체가 고급 코미디였다. 그리고 문병재의 재학시절을 떠올리며 공연 연습기간 때 깁스를 한 채 열심히 연습하던 모습도 고급 코미디였다. 나아가 나경민은 문병재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인상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 재학시절 문병재는 연기를 시작할 때,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관객을 상정하고 웃기려고 하기보다는 같이 있는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노력이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문병재는 태생부터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게 좋은 희극인이었던 것이다. 문병재는 또 질문한다. “나경민의 유머코드에 대한 사적인 보고서는 어떤 것인가요?” 나경민은 대답한다. “문병재의 것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나경민은 평소에 유머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작품을 만들 때 기실 지도교수 입장에서 여러가지 제안을 하는 편인데, 학생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거 너무 교수님 코드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경민은 그들에게 “나에게 그런 코드가 있나?”라고 묻고, 스스로에게도 묻기도 했다. 근데 그 코드라는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남겼다. 자신의 유머코드가 무엇일까 구체적이고 명확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 조차도 모르는 다면적인 취향과 내재되어 있는 코드들이 있기 때문에 그걸 하나로 선택하고, 언어화 하기엔 어렵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타자는 상대의 코드를 ‘느낌적인 느낌’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 ‘느낌적인 느낌’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경민이 퇴장한다. 문병재가 커튼을 닫는다. “천안으로 가는 길”에 대해 카드에 적힌 글을 읽는다. 그는 워크룸을 위해 정신분석학자에게 가서 3회가량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으러 가는길에 주유도 해야하고, 늦어져서 제시간에 도착도 못하고, 설상가상 에어컨도 고장나서 화가 난 상태로 문병재는 천안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는 그 때 평소와 다른 자신의 모습을 감각했다. 평소 같았으면 유머를 구사하며 공격적 감정을 삭혔을텐데 그날은 유머가 나오지 못했다. 이처럼 유머는 문병재에게 일종의 감정의 표출이자 희석이다. 또한 유머는 문병재의 경험으로 어떠한 “사건을 맞이한 나”를 오롯이 마주했을 때, 그 유머가 차별이나 혐오 표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문병재 유머코드에 관한 사적인 보고서>는 “WORK ROOM”으로서, 공연으로 만들어지기 전 가공되지 않은 씨앗 같은 단계다. 이러한 단계에서, 문병재는 유머가 시대와 어떤 관계를 맺었기에 창출 될 수 있었는지를 담담히 고찰한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taking about one’s self’ narration)[1]의 형식을 선택함으로써 많은 책임감이 따른다는 점을 자각하며, 형식이 가진 윤리적 측면까지 고찰을 나아간다. 그리고 고무탯줄을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자르고 세상으로 태어난 문병재는 본 워크룸의 말미에서 삶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을 상상한다. 사랑이[2]가 한 달 전에 하늘나라로 갔음을 고백하며, 그는 자신의 죽음과 연결고리를 짓는다. 죽음 이후 자신이 어떤 사람과 관계 맺고 있을지를 질문해보며, 자신의 장례식장에 대해 그려본다. 장례식마저 미러볼(mirror ball)이 돌아가며 웃겼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는 ‘죽는 연기’를 시작한다. 대개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면, 산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고인의 생전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다. 문병재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올 때에, 그는 산 사람들 사이에서 “문병재는 어떠한 유머스타일이 있었지”라는 이야기가 나눠진다면 즐겁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병재가 지긋이 눈을 감았다. 양 손을 가지런히 모아 가슴 위로 올려놓는다. 이 때, 쌩뚱맞게 무대감독이 버튼장치를 그의 손에 쥐어준다. 관객들이 일어나 하나 둘 씩, 소품으로 받은 국화꽃을 그의 몸과 주위에 둘러준다. 나아가 관객들은 얼굴 위에도 특히 까닭을 모르게 꽃을 일자형(一)으로 올려놓고, 사랑이를 상징하는 소품을 왼팔에 끼워놓기도 하며, 배꼽 가운데에는 가위를 올려놓기도 한다. 이러한 관객의 故 문병재 조문은 예측 불가능한 고급 코미디가 형성되는 본 워크룸의 하이라이트다. 문병재가 손에 쥔 버튼을 누르니 화면에서 “THANK YOU :)”라고 글자가 뜨며 한 사람의 생애와 시대를 관통한 유머에 대한 고찰은 막을 내린다.
이어서 허영균 모더레이터의 진행으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객석에서는 정말로 문병재와 유머코드가 통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특히 피리를 콧구멍으로 부는 장면에서 몸이 주는 원초적인 날것의 유머코드가 잘 맞았다.”(조혜인) 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허영균은 본 워크룸이 사회적인 공감대를 훑을 수 있었던 작업임을 시사했다. 세이클럽과 이모티콘 등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는 추억 소환’이 가능하기에 발생되는 유머가 존재했다. 문병재는 본 워크룸 속의 유머 코드가 ‘문병재 중심’으로 간 면이 있다고 밝혔다. 문병재에게 유머란 곧 삶이다. 그는 도서관에서 ‘유머’를 검색해 100개가 넘는 책을 찾아보기도 했으며, 호시탐탐 함께 하는 사람들을 웃기려는 본능이 갖가지 상황에서 드러나곤 했다. 특히 그는 유머의 유전(inheritance of humor)과 관련된 질문에서 부모님이 어떤 유머를 하느냐에 따라 많이 바뀐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그는 본 워크룸의 출발점이 ‘왜 저 사람(A)과 나와의 코드는 맞고, 저 사람(B)와는 맞지 않을까?’라는 사유를 재고하며, 그 형식으로 자기 이야기의 렉쳐 퍼포먼스(lecture performance)를 선택한 이유로서, ‘기억’과 ‘경험’으로서의 강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작업을 도출해내었다.
문병재는 건강한 유머를 통해 계속해서 웃기고 싶은 희극인이다. 그는 노년이 되어서 누가 그의 지팡이를 빼앗고 도망가도 껄걸 웃을 수 있고, 어린 아이들이 장난을 쳐도 경직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나경민에 증언에 의하면, 문병재는 현실에선 먼 훗날 만나게 될 관객보다는 바로 곁에 있는 존재들에게 충실히 유머코드를 발산했다. 드디어 본 워크룸에 관객이 모였다. 그들이 이제는 ‘바로 곁에 있는 존재’가 되어 조금, 어쩌면 아주 달라도 괜찮을 문병재의 유머 코드를 체감한다. 그리고 웃는다. 웃어본다. 그저 웃는다. 그저 웃어본다. 어느새 웃는 이유도 잊어버린 채 말이다. 웃겨도 웃어보고, 웃기지 않을 때도 웃어보고, 그렇게 문병재와 함께 관객은 저마다의 웃음 코드를 창조해나간다. 결국 웃음은 1:1의 상대성 법칙 밖에서 함께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연극을 보는 관객 저마다의 인생과, 문병재의 인생이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한 웃음들이 그렇게 여행자극장에 스며든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사적인 유머코드를 남기며 본고를 마무리한다. “웃음을 찾아 여행자극장으로 온 나그네들이여! 왔으면 껄껄걸 웃고 떠나시게나! (아주빠르게 발음하며)웃찾껄떠! (feat. 웃음을 찾는 문화. 웃찾컭추ㅕ)”
[1] 관심종자. 관심을 받고싶고, 주목을 받고싶어 안간힘을 쓰고 노력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2] 게임 중 일종의 속임수로 사용되는 명령키. 예를 들어, 유저(user)가 게임 중 거래를 위해 사이버머니 100만원이 필요한데, 가진 사이버머니가 10원이다. 이 때, 특정 치트키를 사용하면 100만원을 만들 수 있다.
[3] 일반 검색엔진에서는 검색되지 않는 검색되지 않는 인터넷 공간으로 특정 브라우저를 사용하여 접속할 수 있다. 보안을 위해 사용되는 목적이 보편적이지만 범죄와 관련된 불법 요소들 즉, 무기 거래, 마약 거래가 일어나기도 한다. 본고에서 심층적으로 다루지는 않겠지만, 필자는 본고를 읽는 독자들에게 건강한 심신을 위해 딥웹 및 기타 관련된 웹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기를 강권한다.
[4] 그 반대로, 쥬니어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공포관련 사이트도 있었다.
[5] ‘꿀잼’은 꿀처럼 달고 즐겁고 재밌음을 의미하며, ‘노잼’은 재미가 없음(NO)을 의미한다.
[6] 나경민,「포스트드라마 시대의 배우의 방향성에 관한 연구 – 포스트드라마 연극(Postdramatic Theatre)에 나타난 ‘자기 이야기하기’ 서사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ABSTRACT 112쪽.
[7] 문병재가 키우던 강아지. 본 워크룸에는 “하늘이와 사랑이”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그가 키우던 두 마리의 강아지다. 하늘이는 엄마 강아지이고, 사랑이는 아기 강아지다. 그런데, 그가 이 강아지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목소리의 ‘리듬과 톤’이 핵심이란 점을 주장한다. 강아지를 부를 때 형성되는 특유의 피치(pitch)가 있는데, 그 우스꽝스러운 피치가 아닌 본래의 목소리론 강아지들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