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 클로드
*Claude Bloom 2차, AB180 남성필 대표와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와 함께*
지난주 클로드 앰버서더와 함께 한 1차 행사 이후, 많은 관심도 모였지만 피드백도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게 요즘 같은 시대에 온라인으로 다 들을 수 있는 내용을 1시간 반 동안 앉혀서 듣는 게 웬말이냐는 거다. 열심히 연사분들과 기획해서 준비했음에도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기에 (그래도 첫 기획 의도는 충분히 담겨서 후회는 없다) 해당 피드백을 곱씹어서 바로 개선을 해보았다.
너무 감사하게도 AB180의 남성필 대표님이 소모임 구조로 커뮤니티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안성맞춤 사무실 공간과 맛있는 케이터링 음식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실 수 있다고 하셨고, 마이리얼트립의 이동건 대표님이 최근에 여러 SNS와 블로그를 통해서 내부의 AX 전환기 스토리를 공유해 주셨는데 조금 더 명확하게 이 현황을 현장에서 공유해 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두 기업과 함께 2차 행사를 준비해 보았다.
우선 현장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1차 피드백을 바탕으로 포맷이 더 개선되었고, 오프라인 모임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많이 느끼신 것 같다. 하지만 가끔 조가 8명이 넘어가면 통성명하고 자기소개하는 데만 15분 이상 소요되고, 그러다 보니 정해진 시간 내 또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가 사전 질문을 받아서 지정한 테이블 말고 어떨 때는 랜덤성 혹은 현장에서 영감을 받고 직접 주제를 받아서 제안을 해서 조가 모이는 방식의 포맷을 취해 보면 어떨까 싶은 의견도 나왔다.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마치 내가 어떤 제품을 온라인에 공개했는데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여러 피드백을 주시는 느낌이라고 할까? 동시에 3차 행사에서는 어떤 차별점과 신선한 점을 줘야 할지 부담도 약간 있지만, 그건 이렇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진행하고 또 종종 들어오는 연사 스피커 기회나 또 그 외 여러 미친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또 기획해 보려고 한다.
또한, Startup Grind라고 우리나라 1세대 스타트업 커뮤니티 모임을 주최한 Joon Oh 님과의 얘기를 나눴을 때 무조건 꾸준하게 계속 진행하는 게 포인트이고, 그렇게 자주 얼굴을 맞주치다 보면 커뮤니티 행사가 더욱 반갑고 또 진정한 pay it forward 문화가 생긴다고 한다.
이어서 나는 영어 전용 (외국인, 교포 및 영어를 쓰는 한국인들을 위한) 밋업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한국에 계신 여러 외국인 분들을 초청해서 진행하고, 또 가까운 일본과 싱가포르에서 비슷한 밋업을 진행해서, 우리도 현지 AI 얼리어답터와 교류하고 또 디스코드로 모셔서 정말 글로벌 AI 얼리어답터 채널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걸 위해서 우선 일본과 싱가포르에 있는 지인들과 주말에 콜을 하면서 기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오늘 2차 행사에서의 키 인사이트를 아래와 같이 남겨본다.
AB180은 국내 최고의 마케팅 데이터 솔루션을 만들고 있는 회사다. 남성필 대표님이 이번 행사의 공간과 케이터링을 흔쾌히 후원해 주셨는데, 무대 위에 올라와서 간단하게 인사말을 해 주셨다.
남성필 대표님은 하루의 약 90%를 AI와 함께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Blue를 느끼던 중이었다고. 그런 와중에 내가 쓴 Claude Blue 글을 보고 행사 취지에 공감하게 됐다고 한다.
인상적이었던 건 영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일을 하려면 의지가 있어야 되고, 그 의지는 영감에서 오는데, 영감의 원천은 결국 사람들과의 인터랙션에서 온다는 것이다. 남성필 대표님 본인도 클로드와 코덱스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계기가 미국에서 만난 선배 창업가 때문이었다고 했다. 커블이라는 앱을 만드는 오태호 대표님인데, 본인이 경영하는 앱의 모든 것을 팀원들과 함께 AI로 자동화하고 바꿔 나가는 모습을 보고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게 거의 세 달 넘게 팀원들과 함께 클로드와 코덱스로 일하는 방식을 바꿔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그걸 써야겠다는 의지는 사람에게서 온다. 남성필 대표님의 짧은 인사말이었지만, 이 행사의 존재 이유를 가장 깔끔하게 요약해 준 순간이었다.
이동건 대표님은 2012년에 마이리얼트립을 창업했다. 당시 27살,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창업한 케이스다. 아이폰을 누구보다 빨리 썼고 모바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큰 실수를 했다고 한다.
여행이라는 서비스의 특성상 기본 소비가 몇백만 원이고, 가족 여행이면 천만 원이 넘어간다. 당시 이동건 대표님은 그 금액의 결제가 모바일에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배달의 민족이나 쿠팡처럼 1만 원, 5만 원짜리를 쓰기에 적합한 서비스가 모바일이라고 판단했고, 여행은 PC에서 엑셀 켜놓고 3박 4일을 짜는 거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 판단으로 4년 넘게 PC에 집중 투자를 했다.
문제는 후발 주자였다. 마이리얼트립이 조금씩 자란다는 소문이 나니까 경쟁자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팀이 너무 작아서 모바일 앱밖에 못 만들었다. 오히려 그게 무기가 됐다. 모바일 앱만으로 서비스를 한 후발 주자가 마이리얼트립을 따라잡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개월이었다. 4년 사업을 한 회사를 10개월 만에 따라온 것이다.
이동건 대표님은 그때의 후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대표로서의 상상력이 비루했다고. 2012년도 스마트폰 성능만 보고 판단한 게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그래서 다음 넥스트 웨이브가 오면 가장 파괴적이고 가장 큰 방식으로 상상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단 하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넥스트 웨이브는 2022년 말에 왔다. GPT 3.5가 나오고 샘 알트만이 발표하는 걸 보면서 이동건 대표님은 확신했다. 이거다. 내가 모바일 이후로 기다리던 넥스트 웨이브다. 그 순간부터 Blue도 Bloom도 아닌, 엄청난 압박감과 초조함이 시작됐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모든 AI 데모에 여행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 3박 4일 일정 짜줘" 하면 줄줄 나오는 걸 보면서, 이건 여행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직접 보여준 거나 다름없다고 느꼈다. 발표를 본 지 48시간 만에, 주말에 모여서 실 서비스를 출시했다. 내부에서 성능이 안 좋다, 보안 검토가 안 됐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모바일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이동건 대표님은 "모르겠고 그냥 나가자"고 밀어붙였다.
그다음 날 9시 뉴스에서 전화가 왔다. 그 다음날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몇 년 전 실수를 만회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3, 4일이 지나자 모든 트래픽이 빠졌다. 여행이라는 건 고관여 의사결정인데, 할루시네이션이 심한 시기에 GPT 말만 듣고 3박 4일 일정을 다 짜기엔 무리가 있었다. 재미로 몇 번 써보고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며칠 지나니까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다 만들었다.
이동건 대표님의 회고는 명확했다. 그때는 "AI로 뭘 만들어야 돼"에 엄청나게 압박감을 받았는데, 소비자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기능을 붙였을 뿐,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회고 이후 이동건 대표님은 방향을 틀었다. 만드는 것 자체보다 실행 구조와 조직 구조를 바꾸는 데 집중했다. 무려 4년에 걸친 변화였다.
2024년에는 AI 랩이라는 교육 조직을 신설했다. 모든 구성원이 AI를 잘 다루게 만들겠다는 미션이었다. 동시에 고객센터 자회사 MRTCX의 사명을 AICX로 바꾸고, 마이리얼트립의 고객센터뿐 아니라 타사의 고객센터도 AI로 혁신하겠다는 미션으로 전환했다. 실제로 AWS처럼 자체 용도로 만든 회사가 외부 일감도 수주해서 돌아가고 있다.
2025년에는 AI 챔피언 제도를 도입했다. AI 랩에 직접 가서 물어보는 것보다 옆 동료에게 물어보는 게 자연스럽다는 걸 발견하고, 각 팀마다 한 명씩 챔피언을 두어 영향력이 팀 내부에서 퍼지도록 했다. 같은 해에 엔지니어 직군 전체를 통합하는 변화도 있었다. iOS, Android, 백엔드, 프론트엔드로 나뉘어 있던 직군이 하나로 합쳐졌고, 디자인과 PM도 사라졌다. 전부 "프로덕트 엔지니어"라는 단일 타이틀로 통합된 것이다.
2026년,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이리얼트립은 선언했다. 작년까지는 AI 리터러시를 높이는 시대였고, 이제는 AI 네이티브로 일하는 회사로 변모했다고.
이동건 대표님이 정의하는 AI 네이티브 조직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AI 없이는 업무가 돌아가지 않는 조직. 소수정예로 더 큰 임팩트를 만드는 조직. 그리고 AWS 장애가 아니라 Claude 장애가 나면 멈추는 조직.
마지막 조건이 특히 인상 깊었다. 링크드인에서 본 얘기라고 하셨는데, AWS 장애가 나면 대부분의 서비스가 멈춘다. 그런데 클로드 장애가 나면 멈추는 서비스가 있을까? 그게 진짜 AI 네이티브의 측정 지표라는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은 실제로 그렇게 일하고 있다고 했다.
평가 체계도 인상적이었다. 마이리얼트립은 토큰 사용량, 접속 빈도, AI 사이드 프로젝트 개수를 보지 않는다. 작년까지는 그런 지표를 평가에 반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대신 CM(공헌이익), 확정률, 전환율처럼 AI 이전에도 중요하던 핵심 지표를 AI로 어떻게 개선했는지를 본다. 리터러시 단계를 넘어서면 결국 원래 중요하던 것들, 공헌이익이든 확정률이든 전환율이든, 그걸 AI로 끌어올리는 게 진짜라는 판단이다.
발표에서 가장 눈이 번쩍 뜨인 건 실제 사례 7개였다. 7개 팀에서 나온 7개 사례 전부가 실제 제품과 운영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LuckyGlide라는 서비스는 조건을 입력하면 AI가 가격, 기간, 경유 조합을 탐색해서 최저가 항공권을 추천해 주는 기능이다. 스카이스캐너나 네이버 항공 같은 메타 검색 엔진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직접 유입을 늘리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이걸 만든 건 마케팅 실장이다. 문과 출신, 코딩 경험 없는 분이 처음부터 만들었다.
MRT Biz는 슬랙에서 대화하듯이 기업 출장을 예약하는 B2B 서비스다. 이동건 대표님이 몇 년 전부터 기업 출장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번번이 백엔드는 있는데 프론트가 없고, 이건 있는데 저건 없어서 늦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었다. 슬랙에서 대화하듯 출장을 예약하고 ERP랑 연동돼서 상신까지 올라가는 서비스를 CEO가 직접 만든 것이다.
Korean Foodies도 이동건 대표님이 직접 만들었다. 마이리얼트립 커뮤니티에 쌓인 맛집 글들을 AI가 큐레이션, 번역, 태깅해서 240개 도시, 2,081개 리뷰를 검색할 수 있게 만든 서비스다. Mywork라는 근태 솔루션은 피플팀이 만들었다. 채용 담당자들이 기존 근태 솔루션의 아쉬운 점을 직접 해결한 것이다. 동행매칭 캘린더는 몽골 사업 개발 매니저가, 여행 컬렉션은 마케팅 팀이, FlightPricingLab은 항공사업팀이 각각 만들었다. 전통적인 개념의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이 자기 업무의 문제를 직접 풀고 있었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과 문제를 푸는 사람이 분리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동건 대표님이 들려준 AI 랩의 실패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처음에 AI 랩은 AI를 잘 쓰는 개발자들의 집단이었다. 다른 팀에서 뭔가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면 만들어주는 구조였는데, 결국 외주 납품이랑 똑같은 구조가 돼버렸다고 한다. HR 팀에서 근태 솔루션을 고쳐달라고 하면, AI 랩은 먼저 근태 관리라는 걸 이해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간신히 이해해서 만들어줘도, 정책이 바뀌면 또 AI 랩에 가져가서 고쳐야 한다. 그럴 수가 없으니까 HR팀은 기껏 만든 걸 버리고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걸 보면서 이동건 대표님이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인식한 사람이 직접 푼다. 그런데 인식한 사람이 못 푸는 이유가 뭔가? 개발을 몰라서. AI를 몰라서. 토큰 값이 비싸서. 그러면 그 장벽을 해결해 주는 게 조직의 역할이다. 그렇게 AI 랩은 "대신 만들어주는 팀"에서 "직접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 팀"으로 바뀌었다.
Q&A 시간에 나온 질문들도 현장의 깊이를 보여줬다. AX 전환의 블로커(병목)가 뭐였냐는 질문에 이동건 대표님의 대답은 의외로 솔직했다. 대표가 블로커인 경우가 되게 많다고. 거꾸로 말하면, 대표가 제일 열심히 하고 솔선수범하면 별로 어려운 게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많은 구성원들의 실질적 어려움은 상위 의사결정권자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라고 했다.
인프라 구축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기존 백엔드 엔지니어가 프론트를 하게 되면서 "옛날이랑 똑같다, 결국 내 코드 못 믿고 처음부터 리뷰하고 검수가 더 걸린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이동건 대표님은 플랫폼 실의 미션을 바꿨다. 잘못된 코드가 나가는 걸 막는 게 아니라, 코드가 잘못 나갔을 때 1초 만에 복구할 수 있는 데 집중하자는 방향이다. 사전에 차단하려 하지 말고 사후에 빠르게 메이크업하는 쪽으로 투자를 돌린 것이다.
리터러시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겠냐는 질문에는, AI 랩 초기에 대신 만들어주는 구조가 아니라 처음부터 교육 조직으로 갔으면 더 빨랐을 거라고 답했다. 결국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이 투자의 중요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키노트와 Q&A가 끝나고 두 차례의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됐다. 1차는 직군별, 2차는 사전 질문지를 바탕으로 고민별로 그룹을 재편성했다. 마지막에 각 테이블의 조장이 한 명씩 나와서 1분간 인사이트를 공유했는데, 이 시간이 오히려 행사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보여줬다.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하네스"였다. 카이스트에서 물리학을 연구하는 분은 "AI 하네스에 우리 생각 자체가 하네스 되는 건 아닌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생각에서 실행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어떤 베이스 레벨이 있고, 그 레벨에서 우리가 어디까지 점유할 수 있는가가 결국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든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이든 하네스 엔지니어링이든 같은 출발점이라는 이야기였다.
LG 생활건강에서 온 분의 발표는 현장에서 가장 큰 반응을 얻었다. AI로 산출물(Output)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그것이 비즈니스 성과나 고객의 행동 변화(Outcome)까지 이어지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QA 부하가 커졌고, 본인이 "빨간 펜 선생님"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서 핵심 역량은 더 많이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왜 만드는지 정의하고 산출물이 실제 아웃컴으로 이어지도록 정렬하는 능력이라고 정리했다. 이동건 대표님이 키노트에서 말한 "임팩트에 집중한다"와 정확히 맞닿는 지점이었다.
전사 AX를 고민하는 테이블에서는 세일즈포스에서 온 분이 네 가지 꼭지를 정리해 줬다. 도구만 쥐어주면 되는 건가 아니면 문화 형성이 필요한 건가. AX TF 자체가 병목이 되는 건 아닌가, 결국 상대방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니까. 사소한 것까지 전부 자동화할 게 아니라 매출로 이어지는 유효한 부분에 집중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자동화 이후 남은 리소스로 뭘 할 건가, 결국 직무의 벽을 깨고 빌더만 남겨야 하는 건가. 이동건 대표님의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이 직접 푼다"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토론이었다.
시니어의 재정의를 주제로 잡은 테이블에서는 당근의 개발자가 인사이트를 줬다고 한다. 최근에는 직무가 정확히 분류되지 않고 개발, 기획, PM, 분석, 전략까지 통합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디자인 툴이 아무리 발전해도 개발자가 어디까지의 디자인 퀄리티를 낼 수 있을까, 마케팅팀이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해도 어느 선까지 엔드 프로덕트 수준의 퀄리티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결론은 통합의 시대는 계속 올 것이고, 그 안에서 각자의 숙제는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과 창의적인 솔루션이라는 것이었다.
놀 유니버스에서 온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대기업의 현실을 짚었다. 마이리얼트립처럼 대표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작은 조직도 있지만, 현대오토에버나 놀리디머스 같은 큰 조직에서는 어떻게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지가 고민이라고. 다만 엔지니어의 본질적 영역은 AI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메인이지, 코딩 자체가 메인 잡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덕트 디자이너 테이블에서는 세일즈 리더의 사례가 화제가 됐다. 본인의 영업 경험을 에이전트에 학습시켜서, "나 30분밖에 없는데 오늘 타겟팅해야 할 클라이언트 순위 정해줘"라고 하면 순위를 뽑아주고 콜 스크립트까지 자동화하는 플로우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결국 하네스 엔지니어링에도 본인의 경험적 스킬이 녹아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리벨리온에서 온 분은 AI 시대의 수익화를 주제로 나눈 이야기를 공유했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진입 장벽은 낮아졌지만, 만든 이후 수익화하는 과정은 각자의 전문성에 대한 밸류업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지금 토큰이 제일 싸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이 AI 리터러시를 쌓고 밸류업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시기라는 뜻이었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온 분은 "시니어든 주니어든 AI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토요일 아침에 여기까지 온 우리가 상위 10%"라고 정리했고, AB180의 PM은 "팀 내에서 Blue와 Bloom 사이의 에너지를 조절해 줄 수 있는 매니저가 중요하다"고 했다. 보안과 거버넌스를 다루는 테이블에서는 폐쇄망 환경에서 AI 도입을 검토하는 과정과 책임 범위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나눴다.
16개 테이블에서 나온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도구의 성능 자체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의 본질이 뭔가"라는 질문에 수렴한다는 것이었다. 직군도 다르고 조직 규모도 다르고 Blue의 색깔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오프닝에서 공유한 에피소드 하나를 여기에도 남겨둔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잠깐 서울에 오셔서 간담회를 했는데, 한국 기업들이 미국 진출할 때 어떻게 해야 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대규모 컨퍼런스 가지 마라. 이미 뒤떨어지고 약발 떨어진 내용들이 정제되고 정제돼서 컨퍼런스에 올라가고 있고, 거기서 네트워킹은 깊이 있는 내용을 나눌 수 없다고. 차라리 샌프란시스코 커피숍에 가서 아무나 붙잡고 얘기하는 게 훨씬 인사이트풀하다고 하셨다. 컨퍼런스를 엄청 많이 주최하시는 분이 그런 말을 한 게 아이러니하면서도 진심으로 다가왔다.
비슷한 얘기를 미국인 친구 테디에게서도 들었다. 일본, 한국, 중국을 오가며 지내는 친구인데, 오랜만에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테크 컨퍼런스에 갔더니 다 쓸잔데기 없더라고 했다. 거기서 듣는 인사이트는 인터넷에 있고, 30초 동안 얘기하고 링크드인 주고받는 네트워킹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대신 커피숍에 앉아서 "당신 무슨 일 하세요?"부터 시작해서 그 사람 집에 가서 같이 밥 먹으면서 부엌에서 요리하면서 나누는 내용들이 훨씬 밀도가 있었다고 한다.
AI가 온라인의 모든 정보를 너무 쉽게 소화하는 시대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온라인에 없는 것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나누고, 정제하고, 같이 디벨롭하는 건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하다. 토요일 오전에 100명이 모인 이유도, 결국 그런 밀도 있는 연결을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