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12명 단체 예약을 문의하셨다. 나는 당연히 자리를 편하게 준비해 놓겠다고 약속을 해드렸다. 그런데 전화를 끊기 전에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다.
"요양원에서 가는 거예요. 방문할 손님들 중에 약간 정신지체가 있으신 분들이 계세요."
"아, 그러세요? 제가 뭘 도와드려야 할까요?"
나는 물었다. 혹시 더 준비해야 할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니요, 심하지 않으세요. 특별히 준비하실 필요는 없어요."
넓은 북카페 홀 중앙에 12분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로 자리를 마련했다. 정원 꽃밭에 흐드러지게 활짝 핀 프렌치 메리골드를 노랑과 진빨강, 흰색을 섞어서 꺾어와 꽃병에 담았다. 커다란 테이블 중앙에 꽃을 꽃아 분위기를 한결 포근하고 부드럽게 만들어보았다. 배경음악을 어떤 걸로 고를지 고민하다가 밝으면서도 달콤하고 차분한 '옥상달빛'의 노래를 틀었다. 사실 요즘 내가 자주 듣는 곡들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프렌치 메리골드
12명이 동시에 주문을 하시면 분주해질 것을 대비해 음료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쟁반과 냅킨, 컵받침도 미리 세팅을 해두었다. 기대와 긴장감이 서로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일부러 정원에 나가 잘 자라고 있는 채소들과 꽃들에게 수돗가 분무기의 샤워기로 더위를 식혀주었다. 장마가 오기 전의 가뭄에 갈증이 고조에 이르는 오후였다.
풍성한 텃밭의 채소들
그 순간 나의 특별한 손님이자, 절친이 된 창* 엄마가 정원에 있는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함께 아기 참외와 호박, 토마토와 오이를 구경하며 활짝 피어난 여름 꽃들에게 칭찬 한가득 더해주었다. 늘 그렇듯 그녀는 우리의 삼 강아지 꽃순이, 로즈, 퍼지를 넘치도록 사랑해 준다. 북카페에 들어서는 그녀의 손에는 항상 무언가가 들려져 있다. 매번 강아지들의 간식을 준비해 와서 직접 우리 삼 강아지들의 입을 즐겁게 해 준다. 강아지들이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종종 우리 부부를 위해서도 간식과 김밥, 유부초밥까지 직접 만들어서 가져오곤 한다.
북카페의 삼 강아지들
내게는 둘 도 없는 천사 같은 특별한 손님이다. 사실 손님이 아니라 친구라 불러야 마땅하다. 나는 북카페에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린다. 아이스 카페라테를 좋아하는 그녀다. 개구리 우는소리를 좋아하고, 나처럼 시골 전원에서의 삶을 누리는 그러면서도 꽤 도회적이고 세련된 여인이다.
뜨거운 땡볕 아래서 에어컨이 시원하게 켜진 북카페 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내려 마시려는 순간, 승합차가 도착했다. 단체 손님이 들어섰다. 아저씨들이었다. 무심코 보기에도 조금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분들이셨다. 준비해 놓은 자리에 앉으시더니 메뉴판을 살피며 주문할 음료를 정하고 계셨다.
"이런 곳에 와 보신 적 있어요? 여기는 북카페예요. 책도 있고, 커피도 마시는 곳이에요."
"자, 이제 여러분이 다른 곳에 가서 직접 혼자 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할 거예요."
"메뉴를 정했죠? 한 사람씩 본인 카드를 가지고 와서 직접 마시고 싶은 것을 주문해 보세요."
"오늘 하신 것처럼 다른 곳에서 할 수 있을 거예요."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메뉴를 정한 순서대로 한 분씩 계산대 앞 내게로 오셨다.
"케이크와 아메리카노 세뜨 하나 주세요."
"네, 세트 하나에 8000원이에요. 카드를 넣어주세요."
"네."
"영수증 드릴까요?"
"네."
그렇게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씩 순서대로 음료를 주문했다. 함께 오신 인솔자가 한 분 한 분 주문하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흠, 내 얼굴은 나오지 않으면 좋겠는데....'
모두 다 성공적으로 주문을 직접 하시고는 만족해하셨다. 각자의 취향대로 주문하신 음료를 후다닥 만들어서 본인들이 직접 가져다가 마시게 해 드렸다. 서비스로 쿠키를 드렸더니 마냥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내 얼굴에도 웃음꽃이 가득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며 음료를 드시더니, 인솔자가 내게 물어오셨다.
"혹시 담배를 피울 곳이 있을까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셔서요."
순간 머리가 띵해왔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어떡하지? 아직 우리 집, 우리 북카페에서 흡연을 허용한 적인 없는데...'
그래도 그분들의 필요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정원 마당 한편에 모닥불용 화로가 생각났다. 마침 그 옆에는 여럿이 앉을 수 있는 벤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아, 저쪽 화로 쪽에서 피우시면 될 거 같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됩니다."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아저씨들이 따라나섰다. 잠시 후 모두 다시 북카페 안으로 들어오셨다. 마당이 넓으니 다행이고, 넓게 탁 트여있어서 담배 연기가 어디론가 사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감사했다.
"앞으로 이런 곳에 와서 책도 한 권씩 사보시고, 커피도 드시고 하세요."
인상 좋아 보인 인솔자가 모시고 오신 손님들을 위해 몇 가지 미니 교육을 시키고 계셨다. 그리고 마침내 물으셨다.
"이런 곳에 가본 적 있어요?"
"아니요."
"여기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또 오고 싶어요?"
"네, 마음에 들어요."
다행히 모든 분들이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감사했다. 그분들이 다시 혼자 북카페를 방문하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오셔서 책도 고르시고, 마시고 싶은 음료도 골라서 주문하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담소도 나누고 가신다면 참 좋겠다.
우리 북카페를 어떻게 아시게 되었는지, 왜 이곳을 선택하셨는지 묻지 않았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이곳을 좋아하고, 찾아와 주신 그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기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본다. 내게 오셔서 특별한 손님들이 되어 주신 세* 정신 요양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